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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아까징끼'에서 40년 만에 바이오 강국으로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2025.09.28 07:00
예전엔 선배들이 몸에 수첩을 지니고 다니는 게 잘 이해가 안됐다.
메모해야만 기억난다는 감각이 너무 낯설어서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그걸 몸으로 직접 체감하는 시기가 됐다.
지시하는 대상이 뭔지는 너무도 뚜렷하게 기억나는데,
그걸 일컫는 말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는 일이 늘어서다.
약국에 들러 ‘소독약’ 대신 ‘빨간약’을 달라는 어르신들의 심정도 이럴 게다.
빨간 약엔 한 가지 사연이 더 있다.
흔히 색깔로 지칭되는 약의 정체가 ‘아까징끼(赤チンキ)’라는 일본 약이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산업의 토대가 부실하던 시대에 쓰던 일본 제약업계의 잔흔이 입말로 남은 건데,
바이오 강국이 된 현재의 국내 제약산업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일본산 ‘빨간약’을 사용하다 바이오의약품을 선진국에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 제약산업은 어떤 변화의 길을 걸어왔을까.
‘빨간약’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국내 제약산업의 거대한 구조변환이 발생하던 시점은 공교롭게도 모두 1980년대 후반이다.
첫 국산 B형간염 백신의 등장
1980년대 우리나라의 B형간염 보균율은 7.3%로 확인된다.
같은 시기 이웃 나라인 일본의 B형간염 보균율이 1~2%, 미국은 0.3% 수준에 그치는 걸 고려하면
지나치게 높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일차적으론 B형간염이 출산 시 엄마에서 아이에게로 전염되고,
모유를 통해서도 옮아가는 병이라는 게 가장 주된 원인이다.
자녀 네댓 명은 낳던 시기에 출산이 곧 감염인 질병은 보균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얻은 B형간염이 진행되어 병의 말기에 도달하면, 간경화와 간암으로 이어지기 쉽다.
국내에서 간 이식이 유독 많은 이유다.
지금이야 B형간염 예방접종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세계 첫 B형간염 백신이 개발된 게 1981년이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주사 한대에 50달러라는 거금을 내야 하는 외산(外産) 백신을 들여와
전 국민에게 접종한다는 건 외화관리 차원에서 우리나라에 너무 벅찬 일이었다.
약은 개발이 되었어도, 들여와서 우리 국민이 쓰는 게 까다로웠던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게 국내 제약기업 녹십자다.
녹십자에서는 연구개발 끝에 3년여 만에 B형간염 백신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보건사회부에선 1983년부터 B형간염 예방접종 사업을 시작했다.
백신 국산화라는 성과를 이룬 덕분이다.
우리 제약기업이 이미 그즈음부터 강한 역량을 갖추고 있던 셈이다.
올림픽과 함께 찾아온 ‘의약품 특허’
다시 ‘빨간약’ 아까징끼 얘기로 돌아가 보자.
버젓이 일본에서 개발되어 팔리는 약이 우리나라에서 자체생산되어 팔리는 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성분이래야 소독효과를 내는 머큐로크롬이 전부니 만들기는 쉽더라도,
의약품에 대한 특허가 살아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1987년 이전엔 그런 일이 변칙적으로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선 의약품 그 자체에 대해 부여되는 특허인 물질특허가 아니라,
의약품을 만드는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인 제법(製法)특허만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예시로 쉽게 설명해보자.
우리가 쓰는 ‘엿 먹어라’는 욕설의 어원은 60여년 전 중학교 입시문제 출제오류다.
엿을 만드는 방법은 수십가지인데, 그중 ‘무즙’으로는 엿을 만들 수 없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분개한 학부모들이 무즙을 고아 엿을 만들었고,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방문해 이 엿을 먹어보라며 시위를 벌였다.
결국 당시 서울교육감과 문교부 차관이 소위 ‘엿을 먹고’ 사퇴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는데,
과거 의약품 특허방식도 이와 유사했다.
최종 산물인 ‘엿’이라는 물질에는 특허권이 없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지의 제조법만 특허의 대상이 되니,
신약 개발사가 엿기름을 써서 엿을 만들었다면, 무즙으로 만든 엿은 특허를 회피할 수 있었다.
특허를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정을 만드는 게 핵심 역량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주로 유럽과 미국에 본사를 둔 신약 개발사 입장에선 속이 쓰렸다.
기껏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신약으로 승인을 받았는데,
같은 물질을 합성하는 우회로만 찾으면 특허가 무효화되니 돈벌이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영미식 특허법을 국내에도 그대로 적용해,
이런 우회 자체가 불가능하게 하라는 통상압력이 꾸준히 이어졌다.
신약을 개발할 역량을 갖추지도 못했고,
신약을 쉽게 사 올 정도의 외화도 모자라던 시절엔 이런 요구를 계속 뭉갰으나,
1988서울올림픽 유치를 기점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올림픽 유치를 통해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벌충하려던 新군부가
올림픽 유치를 위한 미국의 지원을 대가로 영미식 특허법을 들여오기로 합의해서다.
결국 1987년 특허법이 개정되며,
제조법을 달리해 특허를 회피하는 식으로 연구개발을 하던 국내 제약업계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때부터 국내 제약업계는 세가지 방향으로 대응에 나섰다.
첫째, 일부 회사는 아예 신약개발에 나섰다.
과거 LG생명과학 같은 기업이 대표적인데,
LG생명과학은 국내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신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03년 허가받은 팩티브라는 항생제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사실상 최초의 신약이다.
안타까운 건 팩티브가 사업성이 낮은 항생제였단 점이다.
‘아로나민골드’와 ‘박카스’의 성공
의약품 특허권 강화로 인해 해외에서 개발된 신약을 우회생산하는 게 어려워지니,
일부 제약사들은 전통적인 의약품 시장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소위 ‘부캐’를 찾아나선 건데,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 두가지가 영양제와 자양강장음료 시장에서 나왔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로나민골드’와 ‘박카스’가 주인공이다.
지금으로선 이들 제품은 물론 후속 출시된 다양한 건강기능제품과 영양제가 많아
이들의 성취가 빛바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당시 상황은 녹록잖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건강증진제 시장을 지배하던 건,
요즈음 친숙한 비타민이 아닌 한방(韓方) 처방에 따른 보약이었다.
몸이 허하면 보약 한첩을 지어 먹는 게 훨씬 익숙하던 시대다.
이런 상황을 바꾼 게 어린이 영양제로 시작된 원기소(元氣素)다.
그럼에도 ‘어린아이’나 먹는 것으로 여겨지던 영양제가 급격히 성장하게 된 건
아로나민골드의 성공이 기점이었다.
1980년대 후반은 소위 ‘넥타이 부대’라 불리는 사무직 노동자가 급증하던 시기다.
육체노동의 고됨이 기진맥진한 피로라면,
사무직 노동의 고됨은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앉아있어 생기는 온갖 곳의 결림과 뻐근함, 장시간 야근으로 인한 피곤함이다.
1987년 의약품 특허법 개정을 통한 제약업의 변화와 동시에
영양제 시장에 집중투자한 일동제약은
1988년 국내 최초로 정제(알약) 의약품 기준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듬해에는 다시 2배가 오른 연매출 200억원을 넘었으니, 부캐가 본캐를 뛰어넘은 성장을 보인 셈이다.
비슷한 경로를 걸은 게 동아제약의 박카스다.
흔히들 박카스의 효능을 타우린이라는 피로회복 물질 때문이라 오해하지만,
실제로 박카스 특유의 쨍한 각성효과는 카페인 때문이다.
일반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과 달리
박카스에는 체내흡수가 훨씬 빠른 無水 카페인이란 독특한 형태의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어
커피보다 효과가 빠르다.
사무직 노동자의 가파른 증가와 더불어 잦은 야근이 이어지자,
이를 버틸 각성효과를 누리기 위해 박카스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동아제약 역시 제약업계의 변화에 대응코자 박카스에 힘을 주며 1980년대 후반 급성장해
1991년엔 730억원이란 경이적인 매출을 올리기까지 했다.
주 52시간 시대엔 생경한 옛 풍경이다.
원천기술 개발, 비만약 시대의 승자
신약개발도 아니고, 건강증진 시장도 아니라면 남은 길은 뭘까.
한미약품으로 대표되는 일부 제약기업들은 우직하게 기술개발의 길로 나아갔다.
특허법 개정으로 인해 특허 우회가 불가능해졌다는 이유로
그간 누적된 역량을 포기하는 대신 이들 기업은 원천기술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약효가 있는 특정물질을 발굴하고, 임상시험을 통해
약으로서 승인을 받는 게 아니라 여러 의약품에 두루 쓰일 수 있는 보편적 원천기술을 개발하자는 논리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성과도 냈다.
1989년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항생제 제조기술을
스위스 거대 제약기업인 로슈에 600만$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해서다.
단순히 특허 우회를 위해 샛길을 찾는 수준이 아니라,
다국적 제약회사가 매입해 갈 정도로 수준 높은 의약품 제조기술이 확보되었다는 방증이다.
해당 거래는 국내 제약기업이 최초로 글로벌 제약기업에 기술 이전을 한 사례로 남았다.
한미약품은 연구개발을 꾸준히 진행한 덕분에 ‘랩스커버리’라는 독자기술을 개발하는 데까지 이른다.
체내에 들어온 의약품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원천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쓰이는 곳이 바로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근래 유행하는 주사형 비만약이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약은 단백질로 구성돼 있어, 입으로 삼키면 소화가 될 뿐이다.
그러니 필히 주사의 형태로 투여해야만 하는데,
原形 그대로 몸에 넣으면 순식간에 분해되어 약효를 보기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니 원형에 적절한 가공을 거쳐 장기간 지속되게끔 처리하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가 랩스커버리인 셈이다.
비만약은 물론이고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선 두루 쓰임새가 큰 기술이라 그만큼 가치도 크다.
덕분에 해당 기술은
2015년에 총액 5조원 규모로 프랑스계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에 기술이전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파트너사의 계약해지를 통보받아 일부 금액만 회수하고 기술을 되돌려받는 데 그쳤다.
그런데 그렇게 수령한 금액만 따져도 2억유로, 우리 돈으로 2600억원 수준이다.
특허법 강화로 인해 위기에 처했던 국내 제약업계가 각자의 길에서 모두 나름대로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찬란한 현재를 떠받친 굳센 과거를 기억해야
오늘날 K-바이오라 불리며 세계시장을 넘보는 한국제약산업의 찬란한 현재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았다.
1987년 물질특허 제도 도입이라는 거대한 충격에 의해 나뉜 세 갈래의 대응책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낸 단단한 지층(地層) 덕분에 가능해진 기적이다.
신약개발의 높은 위험을 감당할 벤처 생태계의 인적기반,
꾸준한 연구개발을 뒷받침할 안정적 수익 모델,
그리고 세계적 기업과 협상할 독자적 기술력.
이 세 축이 조화롭게 맞물리면서 2020년대 한국 제약산업은
비로소 ‘빨간약’의 시대를 완전히 졸업하고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한국 제약산업의 역사는 단순히 하나의 산업이 성장한 기록을 넘어,
1980년대라는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낸 우리 선배 세대의 치열한 분투를 담은
압축된 서사(敍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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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아까 징끼(red 알콜올 추출물)는 수은이 포함되었기에 사라졌다,
요도 징끼(Iodine, 옥도정기) -> 포비돈 요오드는 광범위 상처 소독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