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grad와 올리가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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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제 경제 일반 [글로벌 노마드]
러시아 재벌들은 왜 런던에 몰려가 호화생활을 할까
손진석 기자 2022.08.28 11:05
세상에는 문화·인종·국적의 원천이 다양한 ‘하이브리드 인재’가 많습니다.
정치·종교의 핍박을 피한 이주민이나 후손이 국가의 명운을 가르기도 합니다.
국경을 초월해 족적을 남기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 봅니다.
지난 3월14일 런던에서
19세기 스타일의 우아한 건축물이 모여 있는 벨그레이브 광장에 시위대가 몰려들었습니다.
그중 4명의 젊은이가
러시아 재벌로서 세계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루살의 총수인 데리파스카(54)가 사는 저택에 들어가
이 집을 점령했습니다.
시위대는 발코니에 “이 집은 해방됐다”고 쓴 플래카드를 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기도 내걸었습니다.
당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죠.
영국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데리파스카의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하자 그가 표적이 됐습니다.
러시아 재벌이 런던에서 보유한 집을 점령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는 시설로 쓰자는 주장을 내놓은 겁니다.
자신들을 ‘재산해방전선’이라는 단체 소속이라고 소개한 4명의 젊은이는
가택 무단침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지난번에 ‘런던에 사는 프랑스인’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오늘은 ‘런던에 몰려든 러시아 재벌’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데리파스카뿐 아니라 많은 러시아 재벌들이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런던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왜 런던에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현대사의 조각을 맞춰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푸틴의 비호를 받는 ‘올리가르히’ 런던 점령
데리파스카의 저택이 있는 벨그레이브 광장은 서부 런던에 있는 부촌입니다.
각국 부호들이 부동산을 대거 사들이는 곳인데, 러시아 출신 부자들이 특히 많은 편입니다.
벨그레이브 광장 5번지에 있는 데리파스카의 집의 경우
당시 시위대가 집을 점령한 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내를 보여줬습니다.
집 안에 영화관이 있었습니다. 값비싼 예술품이 다수 나왔죠.
8만파운드(약1억2600만원)짜리 고급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데리파스카와 같은 부류를 ‘올리가르히’라고 부릅니다.
짧게는 우리말로 ‘러시아 신흥재벌’이라고 하는데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떠받치는 친위대 노릇을 하면서 푸틴의 비호를 받아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러시아 재벌을 지칭합니다.
대체로 초대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 통치 시기에
헐값에 민간에 매각한 옛 소련의 국영기업을 인수해 떼돈을 벌어들인 이들이 많습니다.
데리파스카의 경우 석유와 금속 분야에서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번 사나이입니다.
이외에도 19년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인기구단 첼시의 구단주였던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비롯해
많은 올리가르히들이 런던에서 살고 있죠.
1990년대에 올리가르히들을 키운 보리스 옐친은 이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옐친은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초래하며 경제에 약한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당시 옐친은 고령에 건강이 나빴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자신들의 돈을 지키기 위해 올리가르히들은
옐친의 후계자 중에서 젊고 야심만만한 푸틴을 권좌로 밀어올렸습니다.
이후 푸틴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올리가르히에게만 각종 이권을 밀어줘 공생관계가 됐습니다.
배신자에게는 철퇴를 가했습니다.
◇'올리가르히들의 놀이터’로 불리며 ‘런던그라드’라는 용어까지 생겨
런던에 하도 러시아 부자들이 몰려들어서 ‘Londongrad’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런던과 러시아어로 도시를 뜻하는 ‘그라드’를 합친 말입니다.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내 자산을 가져와 빼돌리는 데 런던을 주로 이용하는 점을 비꼰 용어죠.
월스트리트저널은 런던을 가리켜 ‘올리가르히들의 놀이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부호들이 런던의 비싼 사립학교에서 영어교육에 열성을 보이는 걸 가리켜
‘템즈강의 모스크바’라는 말도 있습니다.
근년에는 올리가르히들이 런던의 부동산을 지나치게 많이 사들인다는 거부감이 커졌습니다.
국제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가 올해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20억$(약2조6800억원)에 상당하는 영국 자산을
크렘린궁과 연줄이 있거나 부패 혐의를 받는 러시아인이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리가르히들이 조세 회피처에서 자금 세탁을 한 다음
런던의 금융시장으로 가져온다는 건 암묵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영국 안보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에서 금융범죄·보안연구센터의 센터장을 맡은 톰 키틴지는
“1991년 소련 붕괴와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로 부를 가진 자들이
자산을 국외로 이전했고 특히 런던으로 재산 이전을 선호했다”고 분석합니다.
영국 위정자들도 러시아 자본을 둘러싼 비판적인 시각을 알고는 있지만
자유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고, 현실적으로 올리가르히들이 몰고 온 돈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도 고려해
오랫동안 내버려뒀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냉전시대부터 워낙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기류가 강하지만
영국은 미국만큼 러시아를 경계하지는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
◇조세회피처에서 돈세탁 후 런던 금융시장으로 송금
그렇다면 왜 런던에는 러시아 재벌들이 많을까요.
지난번 뉴스레터에서 말씀드린대로
영국은 외국인 부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1799년부터 ‘송금주의 과세제’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런던에 장기간 체류하는 외국인이
매년 일정한 액수의 소득세를 내면 해외에서 번 돈을 영국으로 들여오지 않는 한
세금을 더 이상 물리지 않는 제도죠.
러시아 재벌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 ‘큰손’들을 런던에 끌여당겨 세계적인 금융도시로 키운 비결이죠.
영국은 금융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9%(2020년)에 달하는 나라입니다.
또한 런던은 영어를 쓰는 국제화된 도시죠.
교육시스템도 훌륭한 편이고, 이주민들에게 비교적 장벽이 낮은 편이라 매력적이죠.
선진국 중에서도 자본의 흐름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러시아 재벌들이 사업을 벌이거나 금융투자를 하기에도 편합니다.
올리가르히들은 언제 푸틴으로부터 숙청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재산을 해외에 빼돌려놓기를 원합니다.
그게 용이한 곳이자 망명했을 때 살기 좋은 곳이 영국이라는 인식도 있죠.
영국은 러시아 출신 망명자에 대한 러시아측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거의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영국과 EU는 올리가르히들을 제재대상에 올려 강경대응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상징적으로 그들이 보유한 스포츠구단과 호화요트를 겨냥했습니다.
대중들을 상대로 러시아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스 영국 문화장관은 의회에서
“영국축구가 러시아 도적집단의 투자를 너무 오랫동안 참아 왔다”고 했습니다.
첼시를 비롯해 해외자본이 EPL을 지배하고 있다는 대중들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택한 겁니다.
◇EPL 최고 구단 첼시를 19년간 소유한 아브라모비치
그렇다면 대표적으로 런던을 중심으로 러시아 밖에서 활동하는 올리가르히는 어떤 이들이 있을까요.
BBC를 비롯해 영국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봅니다.
먼저 로만 아브라모비치(56)가 오랫동안 첼시 구단주였던 관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습니다.
아브라모비치의 재산은 124억$(약16조6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1990년대 옐친 대통령 재임 때 이름을 알린 초기 올리가르히입니다.
석유회사 시브네프티를 헐값에 사들인 것이 결정적인 기회가 돼 큰 돈을 벌었습니다.
세계에서 셋째로 긴 요트로 알려져 있는 이클립스호가 그의 소유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크렘린궁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강조하죠.
실제로 호사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단순히 푸틴이 용인해주는 정도의 재벌이라는 시각이 있고, 아주 가까운 측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하튼 다른 올리가르히들에 비해서는 푸틴과의 관련성이 덜하다는 이유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첫번째 제재 대상에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바로 영국과 서방에 굽히고 나왔습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첼시를 매각한다고 발표해 지난 5월 실제로 매각을 했고요.
런던 시내 1억5천만파운드(약2360억원)짜리 자택도 매물로 내놨습니다.
BBC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별개로
근년에 아브라모비치가 영국에서 슬슬 발을 빼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첼시를 매각한 돈의 일부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가디언은
“첼시 매각대금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 군인과 가족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머니 이름 딴 초호화 요트 소유자 우스마노프, 에버턴 실소유주로 의심
푸틴의 최측근 올리가르히로 꼽히는 알리셰 우스마노프(69)는 옛 우즈베키스탄 태생입니다.
세계 최대 요트 소유자입니다.
EU가 그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제재 대상에 올리자
독일 정부는 올해 3월 딜바호라는 그의 요트를 압수했죠.
길이가 156m에 달하는 이 요트는 6억$(약8천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6년에 건조된 이 요트는 우스마노프 어머니의 이름을 딴 것인데요.
우스마노프는 독일 함부르크항에서 이 요트를 개조하다가 압류됐죠.
독특하게 우스마노프는 펜싱 선수였다가 사업가로 변신했죠.
그가 경영하는 USM홀딩스라는 지주사는
러시아 2위 이동통신사인 메가폰을 중심으로 광업, 통신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른 올리가르히처럼 우스마노프도 영국에서 부동산 투자 성과가 좋습니다.
런던 중심부에 정원이 넓은 6500만파운드(약1030억원)짜리 ‘비치우드 하우스’라는 집을 갖고 있습니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갖고 있다면 우스마노프는 EPL 에버튼의 실소유주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스마노프의 사업파트너인 이란 출신 거부 파르하드 모시리가 에버턴 구단주인데요.
실질적으로 우스마노프가 에버턴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우스마노프의 USM홀딩스와 주요 산하 기업들은 오랫동안 에버턴의 스폰서였습니다.
BBC는 우스마노프의 재산을 176억$(약23조6300억원)로 추정합니다.
EU·미국·영국으로부터 3중 제재를 당한 우스마노프는
“제재가 부당하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혐의는 거짓”이라며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 설립자 “푸틴에게 전쟁 반대한다고 말 못한다”
미하일 프리드만이라는 올리가르히도 유럽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푸틴의 측근입니다.
그는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은행을 설립한 사람입니다.
BBC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26억달$(약16조9200억원)에 달하죠.
금융업과 에너지 업계에서 막대한 돈을 모았습니다.
프리드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EU와 영국으로부터 맨 먼저 제재를 당한 올리가르히 중 하나입니다.
영국 내 은행계좌가 동결됐습니다.
그는 제재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나 같은 올리가르히가 제재를 당한다고 해서
푸틴에게 ‘전쟁을 멈춰 달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며
“푸틴에게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누구든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프리드만은 “푸틴과 다른 사람들 간 권력상 거리는 지구와 우주만큼 멀다”며
“EU지도자들이 러시아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리드만은 지난 3월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해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카드를 넣어도 돈을 찾을 수 없다”며
“도대체 러시아에서 사업했다는 것 말고 우리가 잘못한 것이 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첼시 매각을 비롯해 “일단 런던에서 철수”
어찌됐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런던에서 활동하는 올리가르히들의 운신의 폭을 좁혔습니다.
시위대만 올리가르히들을 반대한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막나가는 러시아 견제를 위해
올리가르히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마이클 고브 영국 주택장관은 BBC에 나와
“올리가르히의 재산과 부동산을 제재가 유지되는 기간이라도
인도주의적인 목적 등에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차기 영국총리가 코 앞에 와 있는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은
‘올리가르히 태스크포스’를 꾸려 범정부 차원의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죠.
영국정부의 압박이 통했는지 올리가르히들은 런던에서 조금씩 철수하는 분위기입니다.
제재 수위가 높아질까봐 불안해서 자산을 매각하는 흐름이 나왔습니다.
지난 3월 아브라모비치가 2003년 이후 19년간 소유해온 첼시를 매각한다고 발표한 지 두달만인
지난 5월 미국인 투자자들에게 실제로 매각했습니다.
서방에서 돈 벌이를 계속하려면 푸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는 압박이 가해지면서
올리가르히들이 곤란한 처지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도 러시아 부호들이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등의 자택·별장을 비롯해 부동산을 매각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스페인에서도 올리가르히의 호화요트가 압류됐습니다.
◇전쟁 일으킨 푸틴에 불만 쌓인 올리가르히들
올리가르히들의 이해관계가 푸틴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런던을 비롯해 서방에서 사치를 하면서 재미난 생활을 합니다.
런던은 특히 쇼핑하기 좋다는 점에서 올리가르히들이 좋아하는데요.
이들이 제재가 길어지는 바람에
런던에 비해 훨씬 재미없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얼마나 불만이 클까요.
일부 서방의 전략전문가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공에 불만이 큰 올리가르히들이 모스크바에 집결하면
내부 다툼으로 격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올리가르히 입장에서는 푸틴이 전쟁을 일으켜 재산을 보전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일부 올리가르히는 푸틴을 비판하면서 서방쪽 눈치를 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은행을 설립한 미하일 프리드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데리파스카도 평화회담을 시작하라고 촉구했죠.
◇푸틴을 대통령 만들어준 대표 올리가르히, 런던에서 시체로 발견
그렇다고 해서 푸틴을 대놓고 배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까딱하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프리드만이 “푸틴에게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누구든 자살행위와 다름없다”고 말한 것처럼
살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푸틴을 권력자로 만들어주는 데 앞장선 올리가르히인 베레조프스키가
런던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유명합니다.
베레조프스키는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할 때
부시장 대행이던 푸틴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해 돈독한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함께 휴가를 가기도 할 정도였죠.
베레조프스키는
옛 소련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거대 에너지 회사였던 시브네프트를 차지해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이후 올리가르히 중에서 옐친의 후계자로 푸틴을 옹립하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죠.
권력을 잡은 이후 푸틴은 거물인 베레조프스키를 제거하는 쪽으로 스탠스를 바꿉니다.
당시 러시아 언론은 체첸전쟁과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등을 놓고 푸틴을 비판했는데,
푸틴은 비판적인 미디어를 보유한 베레조프스키를 탈세 등의 혐의로 투옥시켰습니다.
결국 베레조프스키는 재산의 상당부분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이주해서 反푸틴 운동을 전개했는데요.
2012년 런던의 아파트에서 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영국경찰은 자살로 결론내렸지만, 푸틴이 ‘전문가’를 보냈다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브라모비치 독극물 공격 의혹 제기돼
올해 들어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올리가르히를 응징하며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선 아브라모비치가 독극물 공격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지난 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에 중재자 역할로 참석한 이후 독극물중독 의심증상을 호소했습니다.
안구가 충혈되고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눈물이 흘러내리는가 하면,
피부가 갑자기 거칠어졌다는 겁니다.
푸틴과 맞선다는 건 보통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대표적 인터넷은행인 틴코프은행을 설립한 올레그 틴코프라는
올리가르히도 수십조원 규모의 재산을 강탈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5월 틴코프는 틴코프은행의 지분 35%를 헐값에 매각하고 완전히 손을 뗐다고 발표했는데요.
푸틴측의 강압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살해협박을 받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틴코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전쟁은 미친 짓이다. 이 미친 전쟁의 수혜자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고 인스타그램에 썼던 사람입니다.
◇올리가르히 중 최고 자산가는 2천억$ 가진 푸틴?
올리가르히들의 재산은 모두 푸틴의 재산이며, 푸틴이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러시아 투자에 정통한 허미티지 캐피탈의 최고경영자 빌 브라우더는
2017년 미국의회에 출석해 푸틴의 총자산이 2천억$(약268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벤 주다는
“푸틴은 올리가르히들의 재산을 자신의 돈으로 간주한다”며
“서구에 널려 있는 올리가르히들의 재산 네트워크를 해체하는 것이
푸틴의 이익추구 기반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푸틴의 재산과 관련해 재미있는 한 가지가
작년초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측에 의해 폭로됐습니다.
푸틴 소유의 거대한 호화저택을 샅샅이 공개한 겁니다.
나발니측은 흑해연안에 있는 푸틴의 저택을 자세히 보여주는 2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띄웠습니다.
나발니팀은 이 저택과 부지의 값어치가 11억유로(약1조4700억원)에 이른다고 했죠.
부지가 7800헥타르(2359만평)에 달해 모나코 국토의 39배라네요.
저택 내부에는 아이스링크, 원형극장, 와이너리, 헬기착륙장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바깥으로는 높은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자체 항구가 딸려 있죠.
인근은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돼 있어 접근이 어렵죠.
나발니팀은 “하나의 거대한 왕국이며, 이곳에는 한명의 차르(옛 러시아 황제)가 산다”고 했습니다.
나발니측은 “푸틴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자금을 대서 만든 저택”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뇌물”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70세인 푸틴이 언제까지 권좌를 지킬까
앞으로 올리가르히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미국 블룸버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서방의 제재가 ‘올리가르히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리가르히들은 서방에서 재산동결을 비롯해 강력한 제재를 받았고,
직간접적으로 푸틴에게 타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올리가르히들의 은행계좌가 동결되면서 회사채 이자지급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올리가르히들이 영국을 비롯해 해외에 재산을 꿍쳐놓을 때
차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재를 가한다고 해도 서방측이 얼마나 그들의 재산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찾아내도 과연 압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일부 러시아 재벌이 제재 직전에 제3국이나 제3자 명의 은행계좌로 미리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실제 제재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상사는 돌고 돕니다.
다시 슬금슬금 올리가르히들이
영국을 비롯해 서방국가의 기업과 부동산을 사들이며 얼굴을 내밀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해외자본에 개방적인 나라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젠가는 종료가 되겠죠.
전쟁이 끝날 시기와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주요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둔화가 나타날 시기가
적당히 비슷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영국측이 다시 러시아 자본을 물밑에서 환영하는 기류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올해 만 70세인 푸틴이 언제까지 권좌를 지킬지도
서방 지도자들의 관심거리이자, 올리가르히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푸틴에 대해서는 꾸준히 건강이상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러시아 재벌들은 왜 런던으로 몰려드는지’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제부 손진석 기자입니다.
한국은행, 금융시장, 국제경제를 맡고 있습니다.
2017년말부터 2021년말까지 유럽특파원으로 파리에서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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