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기류와 기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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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괴물이 풀려났다' 동남아가 된 한국, 아프리카가 된 유럽
중앙일보 이정봉 기자 정수경 PD 이가진 PD 2022.08.20 11:00
이번 여름은 기상재해가 일상화한 시대의 서막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엔 시간당 최고 136.5㎜의 비가 내려
1942년 기록한 시간당 118.6㎜를 80년 만에 경신했습니다.
지구 반대편, 영국 런던은 지난달 18일 기온 40.2도를 기록해 역대 최고 기온을 찍었습니다.
영국 언론에선 “영국 날씨 기록이 남아 있는 165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고 보도했죠.
즉 이런 날씨는 초유의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서울은 아열대 기후가 아닙니다. 또한 런던은 북유럽에 가까운 기후를 띤 지역입니다.
서울에 동남아의 squall같은 비가 잦아지고,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대만큼 추운 지역과 같은 위도대인 런던이 폭염에 시달리는 건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배출권센터장은
“이번 여름 한국날씨를 보면 햇빛이 쨍쨍 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습도도 굉장히 높아졌다.
한국은 사실상 동남아와 같은 아열대기후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더 이상 과거 기상데이터를 토대로 기후대를 나누는 게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폭우와 런던 폭염, 정반대 현상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근원은 동일합니다. 기후변화죠.
지구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 대가로 우리는 어떤 시대를 맞이하게 될까요.
인류 번영의 숨은 조력자, 북극 찬 공기를 가둬온 ‘제트기류’
그동안 지구는 북극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가둬놨습니다.
북극공기는 얼음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거대한 공기 장벽에 둘러싸여 있죠.
이 장벽이 바로 제트기류입니다.
제트기류는 상공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공기의 흐름입니다.
특히 극지방의 제트기류는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불면서
에어커튼처럼 북쪽과 남쪽의 공기를 서로 차단하죠.
제트기류는 북쪽 고위도 차가운 공기와 적도·저위도 뜨거운 공기의 온도차 때문에 생깁니다.
전혀 다른 성질의 두 공기의 온도차와 기압차로 인해
남에서 북으로 강한 바람이 대기권 상층에 형성됩니다.
이 바람은 지구 자전의 힘 때문에 서에서 동으로 흐르게 되죠.
북반구와 남반구에 각각 2개의 제트기류가 흐르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기후에 특히 영향을 크게 미치는 건
가장 북쪽에 있는 북극 지역 제트기류입니다.
제트기류는 상공을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빠른 바람이다.
이 기류는 11~14㎞ 높이인 성층권 부근에 형성된다.
비행기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할 때 제트기류를 만나면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빠른 제트기류는 북극지방의 찬 공기라는 ‘괴물’을 가둬놓을 수 있다.
하지만 제트기류가 약해져 찬 공기가 중위도 지방으로 풀려나면 기후의 큰 혼란이 발생한다.
이 그래픽은 지구에 존재하는 4개의 제트기류 중에서도 북반구 고위도 제트기류를 표현한 것이다.
이 제트기류가 강하면 중위도 지역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기후를 누립니다.
계절의 변화는 있지만, 날씨의 변동이 크지 않습니다.
여름엔 폭우와 폭염이 많지 않고, 겨울에도 혹한과 폭설이 드뭅니다.
제트기류가 북쪽 찬 공기의 개입이라는 돌발변수를 막기 때문이죠.
인류가 중위도 지방에서 온화한 기후를 누리며 문명을 발전시킨 것도 제트기류 덕분입니다.
이 제트기류가 강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북극의 추위와 남쪽의 더위, 그 격차가 커야 합니다.
롤러코스터의 높이 차이가 클수록 빨라지듯, 온도의 차이가 클수록 바람은 더 세지니까요.
강한 제트기류가 북쪽 냉기를 단단히 통제하면,
그 아랫마을 중위도의 인류는 평온한 기후 아래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약해진 제트기류가 만드는 공기 엔진
하지만 인간이 온실가스를 뿜어대자 팽팽했던 제트기류에 위기가 닥칩니다.
지구가 따뜻해졌는데, 특히 북극기온이 크게 오른 겁니다.
산업혁명 이후 북극기온은 지구 전체의 평균온도 상승 폭에 비해 4배 정도 올랐다고 합니다.
북극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특히 더 많이 오르는 건 얼음이 녹았기 때문입니다.
얼음의 흰색은 햇빛을 반사해서 온도가 오르는 걸 막아주죠.
하지만 이 얼음이 녹아 검푸른 바닷물이 되면 빛을 흡수하기 쉬워집니다.
지구 온난화는 하얗던 북극을 검게 칠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줍니다.
빙하가 녹고 북극곰이 살 곳을 잃은 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제트기류의 변동은 중위도 지역에 사는 인류에겐 기후재난을 의미합니다.
북극의 찬 공기라는 ‘괴물’이 풀려나 날뛰기 때문이죠.
북극과 저위도의 온도차가 줄면 제트기류는 약해집니다.
팽팽하게 흐르던 제트 기류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하죠.
빠르게 돌릴 땐 쌩쌩하던 돌팔매가 속도를 늦추면 땅으로 처지는 것과 같죠.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방까지 딸려 내려오죠.
힘을 잃은 제트기류 중 일부는 너무 심하게 늘어지면서 아예 따로 떨어져 나옵니다.
이 흐름은 분리된 저기압을 형성합니다.
약해진 제트기류는 지구 여기저기 형성된 강력한 고기압을 뚫고 나가지도 못하게 됩니다.
제트기류가 약해져 남쪽으로 늘어지다보면 뚝 떨어져 나온 저기압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 저기압을 분리저기압 혹은 절리저기압이라고 부른다.
이 저기압은 양쪽 키큰 고기압에 막혀 한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이를 고기압 블로킹 현상이라고 한다.
정체된 고기압과 저기압은 하나의 공기 펌프처럼 작용한다.
끊임없이 다른 지역의 공기를 불러들이면서
그 지역에는 흔히 나타나지 않는 이상기상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떨어져 나온 저기압과 그 옆을 가로막는 고기압을 제트기류가 헤쳐나가지 못하면서 공기흐름이 정체됩니다.
일부 지역에선 분리된 저기압과 가로막는 고기압이 2주 넘게 머물기도 하죠.
이렇게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저기압과 고기압은 하나의 세트가 돼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뿜는 강력한 엔진이 됩니다.
북극의 찬 기운이 풀려나 중위도 지방에 자리 잡으면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공기엔진을 가동합니다.
이 엔진이 벌인 일이 바로 서울의 폭우와 런던의 폭염입니다.
포르투갈 서쪽의 저기압과 유럽 대륙의 고기압이 아프리카의 날씨를 유럽으로 불러들였다.
유럽에선 포르투갈 서쪽에서 제트기류가 떨어져 나가 저기압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동쪽에 버티고 선 고기압과 맞물려
에어펌프처럼 끝도 없이 아프리카의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를 북쪽 유럽으로 끌어올렸죠.
이 공기 엔진은 강력한 흡입력으로 아프리카 공기를 런던까지 퍼다 올렸습니다.
몇주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제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다 보니 유럽전역이 불타는 듯한 폭염에 시달렸죠.
지금은 혹독한 가뭄까지 닥쳤습니다.
만주 쪽 저기압과 티베트의 고기압은 북쪽의 찬 공기를 끌어내렸다.
수증기를 듬뿍 품은 북태평양 고기압과 만나 수도권에 강력한 정체전선을 형성했고,
그 결과 엄청난 집중 호우가 발생했다.
우리나라 바로 위에도 이런 공기엔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를 지나 우리나라 북쪽에 떨어져 나온 저기압은
서쪽 티베트 고원의 고기압과 동쪽 오호츠크해의 고기압 사이에 눌러앉았습니다.
이 저기압과 동쪽 티베트 고원의 고기압이 맞물려 북쪽 차가운 공기를 한반도로 끌어내렸죠.
이 찬 공기가
북태평양의 거대한 수증기와 하필 서울과 수도권 부근에서 만나 엄청난 비구름을 형성한 겁니다.
더운 여름날 차가운 음료수병을 내놓으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듯,
따뜻하고 습한 공기에 찬 공기가 훅 들어오면 물방울이 끝없이 맺힙니다.
그 결과가 바로 8일 전무후무한 폭우였습니다.
폭우가 가신 뒤 가을의 첫머리처럼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선선한 바람이 분 게 바로 북쪽 공기가 가파르게 유입된 증거죠.
8일 수도권에 형성된 비구름.
한반도에서도 수도권에만 집중 호우가 퍼부었고, 남쪽지방엔 폭염이 찾아왔다.
인공지능과 수치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기상전문회사 위즈아이의 노준우 부사장은
“지구 기온이 상승하고 특히 북극기온 상승이 가파르다는 데는 학계의 이견이 없다”며
“극지방과 저위도의 온도차가 줄면서 제트기류가 약해져 남북으로 갈지자로 흘렀고,
이런 흐름이 폭염이나 집중호우의 세기와 빈도를 강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빈번해질 기후 재해 물론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제트 기류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제트기류의 약화가 극단적 기후의 가능성을 현저히 높였다는 겁니다.
이번 폭우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인간활동의 결과로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너무 많이 떠돌고 있고,
이게 모두 해소되려면 수백년은 지나야 하기 때문이죠.
이미 기후변화로 지구엔 산업혁명 시기보다 수증기가 6.7% 증가해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15년 뒤 수증기량은 1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립기상과학원이 예측한 2021~2040년 수도권 1일 최대 강수량은
최악의 경우 159㎜로 현재 기록(130㎜)보다 23%나 많습니다. 21세기 후반으로 가면 38% 증가하죠.
이충국 센터장은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 따르면
강우량은 향후 20% 이상 증가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10% 이상 감소한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는가. 지금보다 더한 폭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입장에서 볼 때는 극단적 기후지만, 사실 지구입장에서는 에너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율작업입니다.
북극의 한기가 풀려나면서 생긴 지역적 에너지의 불균형을
일거에 해소하기 위한 작업을 여기저기서 벌이고 있는 거죠.
인류가 기울인 자연의 균형을 지구가 애써 맞추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노준우 부사장은
“기후변화는 폭염이나 폭우의 강도와 빈도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가 있는 동안 남부지역은 폭염과 가뭄에 시달렸다”며
“지구가 너무 가파르게 데워지고 있어
이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대기흐름이 인간에게는 경고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최근 영국의 저명한 기후학자 빌 매과이어는 최근 펴낸 책에서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온실 지구: 생존 가이드』에서 기후변화는 이미 피할 수 없으니
극심한 혼란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주장했죠.
그는 과학자들이 대중의 혼란을 막기 위해 언론에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축소해서 인터뷰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충국 센터장은
“지구 온도상승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이 속도를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상승속도를 최대한 억제하고, 발생할 수밖에 없는 피해에는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기후변화는 완만한 상승 곡선이 아니라 가속화되는 곡선이다.
침수를 막기 위해 서울 배수관 크기를 결정하는 문제도
과거 데이터를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미래예측을 기반으로 해서 최대치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분석이 행정에 직접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댓글목록
웅비4해님의 댓글
웅비4해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기후변화로 15년 후엔 공기중의 습도가 두배 많아진다 한다
습도가 높으면 밀도가 높아져 같은 풍속에서 더 강풍이 된다
즉, 약간의 해풍에도 거친 바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Gentle breeze(3급)가 Fresh/Strong Breeze(5/6급)로 쉽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