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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군대의 몰락, 장티푸스 탓이었다

홍아름 기자(조선비즈) 2025.10.25. 14:16

독일 화가 아돌프 노르텐이 1851년 그린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퇴각'. 

1812년10월부터 12월까지 최소 30만명의 프랑스 병사가 굶주림, 추위,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추정된다.

/위키미디어

1812년 여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러시아 정복을 위해 약 50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 살아 돌아온 병사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역사적으로 이 비극의 원인은 굶주림과 혹한, 발진티푸스로 여겨져 왔으나, 

이를 뒤집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연구진은 

2002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인근 집단매장지에서 발굴된 나폴레옹 병사들의 치아에서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 ‘Current Biology’에 25일 발표했다.

발진티푸스는 Rickettsia prowazekii라는 세균이 일으키는 감염병으로, 주로 몸니를 통해 퍼진다. 

심한 두통과 발열·오한·발진 등을 일으킨다. 

그동안 나폴레옹 군이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는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당시 의사들의 기록뿐 아니라, 병사 유해에서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주요 매개체인 몸니가 발견되면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발진티푸스를 유발하는 세균의 DNA도 검출됐다.

하지만 이번 연구진은 최신 DNA 분석기술을 이용해 이전과는 다른 결론을 도출했다. 

병사 13명의 치아에 남은 DNA를 분석한 결과, 발진티푸스 균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대신 오염된 물이나 음식으로 퍼지는 Salmonella enterica와 

몸니가 옮기는 Borrelia recurrentis라는 두 종류의 세균이 확인됐다. 

각각 장티푸스와 재귀열을 일으키는 병원체다.

즉 나폴레옹의 군대는 

발진티푸스가 아니라 장티푸스나 재귀열 같은 다른 전염병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장티푸스는 고열과 복통·탈수를 일으키며 붉은 반점도 생긴다. 

재귀열은 고열과 오한·두통·근육통·관절통·발진을 부른다. 

당시 러시아 혹한 속에서 식량과 위생이 극도로 열악했던 점을 고려하면, 

병사들의 대규모 사망은 이런 감염병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구진은 재귀열을 일으킨 보렐리아균이 

약 2000년 전 영국 철기시대에도 존재했던 계통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균이 수천년 동안 유럽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으로, 감염병의 진화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단서가 된다.

연구를 이끈 Nicolás Rascovan 파스퇴르연구소 연구원은 

“200년 전에 묻힌 병의 흔적을 오늘날의 기술로 찾아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며 

“고대 DNA 분석은 전염병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발견된 수천구의 시신에 비해 분석된 샘플 수가 적어, 

발견된 병원균이 사망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1812년10월부터 12월까지 나폴레옹 군대가 후퇴할 당시 

러시아 원정군 중 최소 30만명이 굶주림, 추위,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는 3천구 이상의 시신이 발견됐으며, 연구진은 이 중 13구를 분석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표본 수가 적고 DNA가 파편화됐으며, 

게놈 해독량이 작고 환경오염 DNA 검증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한계로 남는다”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역사학이 데이터 과학화되는 큰 흐름 속의 작은 이정표적 연구라는 점을 꼽을수 있고, 

앞으로 수십년간 전 세계적으로 이런 역사를 과학화하는 트렌드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