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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물상
[만물상] 울분 사회
김민철 기자 논설위원 2024.08.28. 23:32
화병은 화를 잘 해소하지 못하고 참아서 생기는 우리 고유의 병명이다.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보았던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정신질환 분류책자에 한때 ‘Hwa-Byung’이란 영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예전에는 중년 여성에게 많이 나타났지만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나이도 낮아지고
남성들도 화병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통독 이후 큰 환경변화로 많은 동독주민들이 혼란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고향을 떠나 이주해야 했다.
사회적 차별까지 겪으며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중 일부는 신체적인 증상까지 나타났다.
베를린 샤리테 대학의 미하엘 린덴 교수는 이 증상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울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 증상이 큰 정치·사회적 급변만 아니라
직장갈등, 이혼, 해고, 지인의 사망 등 일상생활에서 부정적 경험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독일판 화병’인 셈이다.
▶'울분’이 나오는 기사를 검색해 보면 공통점이 있다.
‘내 노력과 기여가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공정’ 문제와 닿아 있다.
2020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취업준비생들이 울분에 찬 것도 이런 이유였다.
2018년 평창올릭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구성할 때
일부 한국선수가 탈락하자 2030세대는 “불공정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통독 과정에서 나타난 울분증상도 바뀐 세상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의 절반(49%)이 장기적인 울분상태에 놓여 있다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결과가 나왔다.
젊은 층에서 비율이 더 높았다.
놀랍게도 이 비율은 울분이 많다는 독일인을 대상으로 비슷하게 조사한 결과치(16%)의 3배에 달했다.
다만 이번이 네번째 조사인데, 과거 세차례 조사(2018년 55% 등)보다는 약간 수치가 낮아졌다.
연구진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울분감정이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는 ‘울분사회’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은 분명 성공한 선진국인데 왜 그런지 궁금하다.
한국은 타인과 비교가 일상화되고, 경쟁이 심한 사회인 탓일까.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자살사망자수가 38명에 이르는 것도 이와 관련 있을 듯하다.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공정한 경쟁에 사회가 더 관심을 쏟아야 할 것 같다.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04.♡.235.143 작성일
울분은 답답하고 분한 마음상태인데 화가 맺혔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화는 남에게 요구한 사항이 충족되지 않을 때 생기기도 한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 남과 얽히지 않을 수 없으니 생긴다
상대의 실수 실패 착오 등 보다 배신같은 것에서 생길 수도 있고
관계부조화에서 자타에 대한 실망이나 절망에서 올 수도 있다
자신의 눈 높이나 손 크기를 바꾸면 그 화가 덜 생길 수도 있겠다
마음이 구겨지면 신체조직도 구겨지니 신체건강으로 확장도 된다
문제는 그 화가 잠시가 아니고 장기적으로 풀리지 않음에 있고
그 결과, 이성을 잃고 자제가 되지 않아 자타에게 물심신의 상처를 준다
심지어, 심하면 자신이나 가족의 미래에 방향이나 길이 달라지기도 한다
세상사/인간관계가 뜻대로 계산데로는 다 안 된다는 걸 모름이 원인이다
깨는 건 순간인데, 만들거나 복구에는 시간, 돈과 노력이 비교불가 정도다
민생고를 해결했음에도 더 큰 욕심이 스스로 불화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ressentiment(르상띠망)라는 프랑스 말이 있는데
약점있는 사람이 강자에 갖는 원한 또는 복수심,
약자의 강자에 대한 (근거/이유 없는) 증오심, 열등감
못 가진 자의 가진 자에 대한 시기심 등 '남과의 비교'에서 발생하는 심리가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란 걸 모르고 과시라는 '허세'에서 생기기도 한다
이 르상티망이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온 나라에 팽배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친지 잘/쉽게 만나는 게 그리 쉬운 세상, 시대가 아닌가보다
너만 그런 게 아니고 나도 그러니, '그렇커니'가 답이나 약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