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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24-09-02 05:31 View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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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특파원 칼럼

[특파원 리포트] 중국인이여, '찐빵점심'에 만족하라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09.02. 00:04


서울만큼 물가가 비싼 베이징 도심에서 점심식사를 아주 저렴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번화가 궈마오에서 고급식당 오피어에 가면 

68위안(약1만3천원)에 고층 빌딩 뷰를 누리며 샐러드와 고기요리 세트를 즐길 수 있다. 

원래 1인당 420위안(약8만원)은 써야 하는 곳이니 파격적인 가격이다.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미슐랭 ‘별’을 받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페라 밤바나가 

지난 4월 경영난으로 11년 만에 문을 닫았는데, 

이후 충격을 받은 베이징의 고급식당들이 앞다퉈 메뉴 값을 내리며 손님 유치에 나섰다.


그러나 1만원대는 여전히 비싼 가격이다. 

궈마오의 4성급 호텔인 젠궈호텔의 커피숍을 가보길 추천한다. 

점심이면 정장차림의 고소득 직장인들이 줄을 선다. 

스타벅스 커피 값의 절반 수준인 20위안(약3700원)으로 무한 리필 면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궈마오의 한 아파트에서 월세살이 하는 상하이 출신 직장인은 

“베이징의 금융맨들은 연봉이 3년째 깎이자 마침내 점심값을 줄였다”고 했다.


더 싼 점심식사도 가능하다. 

취업난 속에 고전하는 대학생과 저소득 직장인들은 마트로 향한다. 

요식업계의 ‘저가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베이징의 대형마트체인 우메이의 지하식당에서는 13위안(약2500원)짜리 뷔페가 등장했다. 

맥도널드·KFC·버거킹은 월·목·금요일에 2천원대 반값 세트를 판매한다.


베이징 번화가에서 2천원 미만의 식사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노란 옷을 입은 이들을 따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싼위안차오의 한 고급오피스텔 지하1층 푸드코트에 가면 

구석에 커튼으로 구분된 ‘배달전문점’ 구역이 있다. 

이곳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이블에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메이퇀(중국판 배달의 민족) 배달원들이 모여 앉아 

단돈 9위안(약1700원)에 국수나 덮밥 한그릇을 먹는다. 

회전율이 워낙 좋아 다들 금방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테이블과 식기도 누군가에겐 사치다. 

오피스텔 앞 벤치에서는 

만터우(중국식 찐빵) 2개를 비닐 봉지째로 뜯어먹는 타지노동자(농민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위안(약380원)짜리 점심식사다. 

만터우를 반으로 갈라 소스를 바를 여유도 없는 이들이다.


베이징에선 다들 밥을 굶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두 원하는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경제가 작년 코로나 방역해제 이후에도 

부동산침체, 지방정부부채, 취업난 등으로 오랫동안 휘청이면서 

‘더 나은 식사’를 할 엄두를 못 내거나 쓸 돈이 없는 것이다. 

값싼 점심식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위해 

식당들은 부자에게 중산층의 가격표를, 중산층에게 저소득층의 가격표를 내민다. 

‘공동부유(다 같이 잘 살자)’가 아니라, ‘적게 먹어도 만족하라’가 중국의 새 구호인 것 같다. 

소비위축의 악순환 속에 중국인들의 삶은 더 초라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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