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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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왜 우유만 뺐을까
2023년 1월 1일부터 유통기한이 사라진다.
유통할 수 있는 기한을 표시하는 유통기한 대신, 소비자가 먹어도 괜찮다고 판단되는 최종 기한인 ‘소비기한’이 전격 도입된다.
다만, 우유를 포함한 일부 품목에서는 최대 2031년까지 유통기한으로 표시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우유도 잘 보관하기만 하면 유통기한부터 50일이 지날 시점까지는 마셔도 되는데 말이다.
우유는 왜 빠진 걸까?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제를 전격 도입하겠다는 식약처의 결정은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통기한으로 버려지거나 반품되는 식품으로
연간 최대 무려 1조54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부과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마다 다르겠지만 현재 추정된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꽤 길다.
식약처와 한국소비자원이 소비기한에 대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잘 보관했을 때
액상 커피와 같은 유음료는 유통기한보다 30일, 슬라이스 치즈는 70일, 달걀은 25일,
두부는 90일, 식빵은 20일, 생면은 50일, 냉동만두는 25일, 우유는 50일은 더 소비해도 된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2023년부터 식품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우유만 빼고서다. 보건복지위(복지위)는 앞서 우유의 소비기한 표시제를 2026년 도입하기로 했다가,
전체회의에서 시행 시기를 최장 203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법안을 수정해 통과시켰다.
우유는 다른 식품보다도 더 철저한 냉장 유통이 필요하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최승훈 연구원은 “우유는 살균처리 방법에 따라 소비기한과 보관 방법이 다른데,
우리나라에서 많이 소비하는 살균 우유는 멸균 우유와 달리 유익균을 포함한 일정 균이 살아있다”며
“실험을 통해 제시된 명확한 소비기한과 철저한 냉장 보관이 기반 돼야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냉장유통라인이 소비기한을 도입하기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적 유제품 냉장 온도는 0~10℃로 0~5℃인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윤성식 교수는 “5~10℃에서 자랄 수 있는 미생물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소비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식품이 변질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게다가 지난해 소비자연맹 조사 자료를 봤을 때 국내 유통매장의 0~10℃ 법적 냉장 온도 준수율이 70~80%밖에 되지 않았는데,
0~5℃로 내렸을 땐 더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우유에 소비기한을 도입하려면 변질된 제품의 유통을 차단할 수 있는 법적 냉장 온도 관리방안과
감시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식약처 관계자는 “유예된 시한 동안 기준 냉장 온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유 제품 특성상 폐기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윤성식 교수는 “젖소는 매일 30kg씩 무조건 젖을 짜내야 하므로 우유 원유 자체는 줄지 않는다”며
“소비기한 도입으로 시장 순환이 줄면 원유 재고 문제는 물론, 국내 낙농업에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우유는 소비기한 도입 10년 유예가 아닌 아예 예외 품목으로 두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신선도가 강점인 국내산 우유 대신 가격이 저렴한 외국산 우유가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커진다.
안정성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유통기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유 중 국내 낙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76%지만,
소비기한 제도로 변환하게 되면 국외에서 더 많은 시유가 들어올 수 있다.
시유는 원유를 살균해 적당한 분량으로 포장한 우유를 말한다.
국외에서 들어오게 되면 유통 과정이 길고 많아져 변질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시유 자체가 변질될 경우 시유를 이용한 다른 제품을 통해서도 소비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어 그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안전한 섭취를 위해 상했는지 판단하는 방법과 보관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잘못 유통·보관된 우유는 유산균, 유산간균, 저온 세균, 대장균, 용혈성연쇄구균, 황색포도상구균 등이 검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개봉됐다면 유통기한 이내여도 변질됐을 가능성이 크다.
개봉과 동시에 대기 중 세균이 제품으로 유입돼 변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침이 섞였다면 더 빨리 변질된다.
개봉하지 않았는데 부풀었거나, 개봉했을 때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 섭취하지 않아야 한다.
덩어리가 생긴 경우에도 변질된 것이기에 먹어서는 안 된다.
유통기한이 아닌 소비기한으로 표기됐을 때 소비기한이 지났다면 변질과 부패가 진행됐다는 의미이므로 바로 식품을 폐기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 소비기한을 제대로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통기한을 조금 넘어 먹었을 땐 문제가 없었지만,
소비기한으로 바뀐지 모르고 기한이 만료됐을 때 식품을 섭취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승훈 연구원은 “연구원에서 외식업계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을 때,
유통기한은 24%가 잘못인지하고 있었던 반면, 소비기한은 44%가 잘 모르고 있었다”며
“시행 전 정부 차원에서 소비기한에 대한 정의와 냉장 보관 방법 등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꼭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소비기한 관련 궁금증에 답하는 Q&A 집을 배포할 계획이며,
소비자 대상으로 충분한 인식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며 “유통온도 취약 식품에 대한 관리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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