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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24-07-27 23:58 View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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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책방X톱클래스 #27] 

2024년 08월호 최재천 《숙론》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책방을 운영하는 나는 많이 팔리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고급 교양서에 늘 목이 마른데, 

이런 필요를 충족해 주는 대표적인 분이 최재천 교수다. 

그는 자신의 연구분야인 개미나 곤충에 대한 책은 물론 

오랜 시간 연구하고 가르치고 발언하고 참여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책으로 써냈다. 

이제까지 줄잡아 100권쯤의 책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직 써야 할 책, 쓰고 싶은 책이 남아 있었을까? 

그는 《숙론》이라는 책을 초여름에 내놓았다. 

우리 책방 북클럽은 6월의 책으로 냉큼 이 책을 골랐다. 


우리 사회는 이념, 지역, 계층, 빈부, 남녀, 세대, 다문화 등 끝없이 갈라져 갈등 중이다.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최재천 교수는 평생 동물사회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 왔다. 

개미와 벌부터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성동물 연구가 그의 전문분야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타자와 사회를 이뤄 함께 살아간다는 건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회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하는 개미는 역시 소통도 잘한다고 한다. 

최재천 교수가 인간사회의 소통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그는 이 문제를 오래 들여다본 끝에 ‘숙론’에서 길을 찾았다. 

문제가 있고 갈등이 생길수록 서로 마주 앉아 생각을 꺼내놓고 이야기하자는 것. 

이럴 경우 우리는 토론을 떠올리지만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끝장토론’이란 표현에서 보듯 너무 공격적인 것 같다며 숙론을 주창한다.  


그는 숙론을 이렇게 정의한다. 

숙론이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찾는 과정이라고.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 않으면서 문제의 해법을 향해 충분히 계속 얘기하는 거라고. 

그런데 ‘충분하다’라는 말엔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눈치 챘을까. 

무엇이든 대뜸, 바로, 충분해지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숙론 자체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인 셈이다. 


내가 40년간 생각을 말하거나 글로 쓰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개념, 새로운 언어에 담긴다는 것. 

숙론이야말로 그런 개념어다. 

갈등 해결은 

물론 다양성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제안이기도 하다.


책을 읽은 북클럽 회원들이 최재천 교수와 마주 앉아 그야말로 숙론을 했다. 

무더운 여름 주말에 거의 두시간 동안 뜨거운 이야기가 오갔다. 

먼저 최재천 교수의 짤막한 강연으로 문을 열었다. 

 

숙론이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찾는 과정이다.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 않으면서 문제의 해법을 향해 계속 충분히 얘기하는 과정이다.


‘충분하다’라는 말엔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 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숙론’ 자체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인 셈이다.


최인아 대표(이하 최인아) 

지금까지는 최재천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를 같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맞춤 시간입니다. 

교수님에게 물어보면 1대1 맞춤 답변을 듣는 거예요. 어느 분부터 시작할까요? 


질문 1_ 

저는 중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이 토론에 익숙해지도록 애를 쓰는데 쉽지 않습니다. 

수업을 토론 위주로 해도 평가는 객관식이기 때문에 수업과 평가, 성적이 연결되지 않아요. 

진도에 쫓기다 보니 시간도 마땅치 않고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가능할까요?


“지금의 입시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생이 줄어드는 등 모든 상황이 이 교육제도를 계속 밀고 나가기 어려운 한계에 온 것 같아요. 

바뀔 때를 대비해 제도를 새로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면서도 고등학교 교실에서 정치토론은 막아놨습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토론은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뜨거운데, 

만약 우리나라 고3 교실에서 그 내용을 주제로 토론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학생들이 전부 변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행자를 교육시키면 그런 날이 좀 더 빨리 오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흥미가 있으면 참여할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 입시는 입시대로 변하기를 기대하면서, 

그때까지 학교에서는 약간의 시간을 활용해 토론, 숙론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질문 2_ 

교수님은 더 개선되고 더 멋진 일상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일상에서 지키는 루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웬만하면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주말엔 외부활동을 안 하려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해선 살아남기 힘듭니다. 

특히 이 나라 남성들은 ‘밤무대’를 뛰지 않으면 출세에 지장이 있어요. 

그럼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또 지구를 위해 가능하면 차를 안 몰고 다닙니다.” 


질문 3_ 

세 아이 엄마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토론문화를 만들고 싶은데 경험도 없고, 

바쁘다 보니 차분하게 얘기할 시간도 마땅치 않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저와 아내는 늦게 아들을 낳아 키웠어요. 

우리는 전통적인 한국식 교육을 거부했습니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 수 있게 했어요. 

그랬더니 이젠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건방이 하늘을 찌르지만 우리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우리나라 가정은 위아래가 분명해요.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자기 의견을 강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어요.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렵지만 노력해야죠. 

토론문화를 만들려면 아이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다짜고짜 토론하자고 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문책당하는 기분이 들 수 있어요. 

부담 없는 주제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을 엄마, 아빠가 살짝 읽어본 후 

아이와 자연스럽게 책 얘기를 나눠보는 식으로요.”


최인아_ 

우리는 대체로 학교 갔다 온 아이에게 “오늘 뭐 배웠어?”라고 물어보는데 

이스라엘 부모들은 “오늘 뭐 질문했어?”라고 물어본대요. 

질문을 받으면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질문 4_ 

저도 중학교 교사입니다. 

학기 말에 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이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면, 

선생님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보다 본인들이 참여해 생각을 말하고 문제를 해결했을 때를 꼽습니다. 

저 역시 그런 수업방식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진도 나가고 평가해야 해서 주저하게 됩니다. 

책에서 교수님은 한(어떤) 교수님에게 워크숍을 부탁하고, 

그분에게 평생 활용할 수 있는 숙론 기술을 배웠다고 하셨어요. 

어떤 걸 배우셨는지요. 

제가 학생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을까요.


“그분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님입니다. 

경영학의 그루로 불리는 하버드대학교 경영대 교수님이에요. 

전 세계 경영대 수업에서 쓰는 ‘케이스 스터디’를 고안해 낸 분이고요. 

제가 하버드대학을 다니던 시절, 기숙사에서 다리를 건너면 경영대였는데 

어느 날 귀가 중에 불현듯 그분을 찾아갔어요. 

노크했더니 마음 좋게 생긴 분이 문을 열더라고요. 

그분과 약속을 잡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인데 그냥 쳐들어갔더니 된 겁니다. 

조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일이 학생들 토론수업을 이끄는 건데, 우리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교수님에게 청했어요. 

교수님의 케이스 스터디를 워크숍으로 해주면 안 되냐, 하지만 돈은 없다고 했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세상에! 대가께서 세번이나 워크숍을 해주셨어요. 

그때 참 귀한 걸 배웠는데 하나만 말씀드리면 ‘쪼개라!’입니다. 

얘기가 겉돌고 토론이 잘 안되면 무조건 쪼개래요. 

서너 명씩 소그룹을 만들어 각기 다른 방에 보내 30분 얘기하고 다시 모이게 하면 놀랍게도 토론이 돼요. 

세명이 둘러앉으면 소심하고 수줍은 아이도 얘기하게 되잖아요. 

제가 교수가 된 후 늘 토론수업을 진행했는데, 안되면 쪼개서 흩었다가 다시 모이게 했어요. 

그러면 신기할 정도로 토론이 잘됩니다.”

 

질문 5_ 

코로나 이후 일상이 돼가고 있는 비대면 소통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처음엔 비대면 소통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이화여대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교양강의를 했는데, 

첫 시간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을 국회의원으로 뽑겠다, 그런데 보좌관을 붙여줄 돈은 없다, 직접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라’. 

국회에 위원회가 많잖아요. 

그렇듯 학생들도 자전거도로개설위원회, 국립자연사박물관건립위원회 등을 만듭니다. 

문제를 발굴하고 해법도 모색하게 하죠. 

학기 말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하는데 코로나 때는 모일 수가 없잖아요. 

비대면으로 해야 해서 걱정했는데 더 잘됐어요. 

그 학기에 학생들 호응이 제일 높았어요. 

참여도도 높고, 비대면이니까 오히려 더 편하게 의견을 얘기하더라고요. 

인터넷상에서 표도 팔고 사업진행도 했죠. 

정말 놀라웠어요. 이 세대는 비대면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세대임에 틀림없어요.” 


질문 6_ 

경영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내 소통 활성화에 관해 고민 중인데, 교수님의 국립생태원장 시절 소통 일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최 교수는 국립생태원장 시절 ‘원격바’, 즉 원장이 격주로 구워주는 바비큐 파티를 진행했다. 

서로 다른 부서의 구성원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포인트였다. 

평소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고, 

나중에 부서 간 업무협조가 훨씬 원활해졌다고 한다) 

사내 소통 활성화는 시스템이 중요한지, 아니면 직원 간의 친밀감이 중요한지 궁금합니다. 

또 다른 방법도 추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둘 다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느 것이 덜 중요할 것 같은 생각이 진짜 안 드네요.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저도 참 많은 시도를 해봤어요. 

그중 원격바가 효과 있었던 것은 이전의 모든 노력이 쌓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에 효과가 확 나지 않더라도 여러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묘수는 따로 없을 겁니다. 

사내 동아리도 많이 만들게 하고 저도 참여했습니다. 

어떤 건 실패하고 어떤 건 조금 성공했는데, 

이런 것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효과가 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 7_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삶의 동반자와 숙론을 잘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이 있을지요.


최인아_ 교수님, 

대답 잘하셔야겠어요(웃음). 저쪽에서 사모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이날 책방엔 최재천 교수의 부인이 동행했다. 2층에 앉아 최 교수의 북토크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다 가끔 영어를 쓸 때가 있어요. 

얘기가 격해질 것 같으면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영어를 쓰게 돼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상처를 덜 남기는 것 같거든요.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남과는 얘기를 잘하면서 부부간에 잘 안되는 이유는 너무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예의를 갖추면서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최재천 교수의 책 《숙론》은 ‘소통’과도 맥이 닿아 있다 보니 소통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우리는 개별자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동물이다. 

단독자인 개인이 사회적 존재가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고 숙론이 아닐까?

나는 북토크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책방에 와서 최 교수님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듣고 나누니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박수를 치시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레와 같은 뜨거운 박수가 책방을 가득 메웠다. 


글쓴이 최인아는 강남 한복판인 선릉역과 역삼역 부근에서 ‘최인아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삼성그룹 최초 여성 부사장을 지냈으며 

일과 삶의 인사이트를 담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펴냈다. 

책방을 통해 사색과 모색이 무르익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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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04.♡.203.145 작성일

제목에서 "숙론" 하면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한줄 문구를 읽으면 어렴붓이 짐작이 간다
만약 제목이 '숙론(熟論)'으로 한자였다면
한두 개 중 하나일 것으로 짐자부터 하고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한자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숙론의 熟자에는 익을, 깊을, 꽉 찬 등의 의미가 있다, 숙면(깊은 잠)
소통을 위한 토론에는 참가자의 소양 수준이 중요하다
각자의 소양 수준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지
순간 도통하듯 비약은 불가하다. 방향을 짐작할 뿐..
무슨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보다 "왜?", 어쩌다가?"의 원인과 경로가 중요하다
뒷처리와 불행한 사건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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