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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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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성21-07-29 17:16 View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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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과 할머니

70년대초 아카시아꽃이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핀 어느해 5월 하순이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한 가정주부로부터 청와대 육영수 여사님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그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다.

그녀의 남편이 서울역 앞에서 행상을 해서 다섯 식구의 입에 겨우 풀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얼마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굶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 자신과 어린 자식들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견딜수 있지만 

80세가 넘은 시어머니가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굶고 있으니 도와 달라는 애절한 사연이었다.

그때만 해도 육영수 여사는 이런 편지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았었고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 주셨다.

그 편지를 받은 바로 그날 저녁 나는 영부인의 지시로 쌀 한가마와 얼마간의 돈을 들고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성남은 지금은 모든 게 몰라보게 달라진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때는 철거민들이 정착해가는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도로는 물론 번짓수도 정리가 안 되어서 집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어물어 그집을 찾아갔을 때는 마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상을 받아놓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청와대에서 찾아왔노라고 말하고 어두컴컴한 그 집 방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쓰러지다 만 조그만 초막 같은집에는 전기도 없이 희미한 촛불 하나가 조그만 방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방 아랫목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누가 찾아 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밥만 먹고 있었다. 

밥상 위에는 그릇에 수북한 흰 쌀밥 한 그릇과 멀건 국 한 그릇, 그리고 간장 한 종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갑자기 매우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쌀이 없어 끼니를 굶고 있다고 하더니 돈이 생겼으면 감자나 잡곡을 사서 식량을 늘려 먹을 생각은 

않고 흰 쌀밥이 웬 말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참 앉아 있으려니까 희미한 방안의 물체가 하나 둘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과 아팠던 마음을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노파가 열심히 먹고 있던 흰 쌀밥은 쌀밥이 아니라 산자락에서 따 온 흰 아카시아꽃이었다.
그 순간 가슴이 꽉 막혀오고 표현할 수 없는 설움 같은 것이 목이 아프게 밀고 올라왔다.

나에게도 저런 할머니가 계셨는데,
아무 말도 더 못하고 나는 그 집을 나왔다.
그 며칠 후 나는 박 대통령 내외분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이야기를 말씀 드렸다. 영부인의 눈가에 눈물이 보였다. 

박 대통령께서도 처연한 표정에 아무런 말씀이 없이 천정을 쳐다보시면서 애꿎은 담배만 피우셨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당시에는 미쳐 생각을 못했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나라에서 가난만은 반드시..... 이런 매서운 결심을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절하게 가슴을 친다.

60년대초 서독에 가 있던 우리나라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현지에서 만난
박 대통령…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과 가난한 나라에서 돈벌기 위해 이국만리 타국에 와 있는 광부와 간호사…
서로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붙들고 울기만 했던 그때, 

박 대통령은 귀국하면서 야멸차리 만큼 무서운 결심을 하시지 않았을까.
‘가난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이런 결심을....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훈장증서에는 이런 뜻의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물질로 도와라. 물질이 없으면 몸으로 도와라.

물질과 몸으로도 도울 수 없으면 눈물로 돕고 위로하라.”
광부들과 간호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가난뱅이 나라 대통령이
그들을 눈물아닌 그 무엇으로 위로하고 격려할수 있었을까?

나는 매년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5월이 되면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뛰어 놀다 배가 고프면 간식 삼아서 아카시아꽃을 따먹던 

쓸쓸한 추억과 함께 70년대초 성남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의 모습이 꽃이 질때까지 

내 눈앞에 겹쳐서 아른거리곤 한다.


-김 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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