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거국적인 교육운동의 결과 1959년까지 전국 적령아동의 95%가 취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 국가에 돈이 생겼다 하면 국비유학생 파견
고등교육기관은 해방 당시 대학과 전문학교를 합쳐 19개교, 학생 8천여명에 불과했으나
1960년에는 총 68개교, 학생 수 약 1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국가예산이 모자라 고등교육기관 지을 형편이 못되자
이 대통령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세워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결과 재력가들이 대거 사립학교를 설립합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 중에 사립학교 비율이 대단히 높은 이유는
부족한 국가예산을 보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지금이야 자녀 유학자금은 부모가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만,
그 시절 자녀를 해외유학 보낼 만큼 여유 있는 가정이 드물었습니다.
유일한 유학기회는 국비유학생이었어요.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에 여유가 생겼다 하면
국비유학생을 선발하여 해외유학을 보내 고급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정규 유학생 자격으로 해외에 나가 공부한 학생은 4,884명,
단기연수 목적의 기술훈련 유학생이 2,309명,
미국무부의 교육교환계획(6개월 이내의 단기시찰계획)에 의해 각계 지도자 940명이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게다가 1950년대에 선진군사제도와 각종 무기체계 운영을 위해
국군 장교와 하사관이 미국의 각종 병과학교에 파견되어 전문교육을 받고 귀국합니다.
그 숫자가 9,886명이었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육성된 군장교단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국가근대화를 추진하는 핵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죠.
이승만 정부 시절 교육시설이 모자라 곳곳에 천막을 치고 교육을 했다.
그러한 교육혁명 덕분에 문맹이 퇴치되었고,
국민들의 지력을 향상시켜 민주주의 정치가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승만 정부가 도입한 6년제 의무교육과 문맹퇴치운동은
우리 국민들에게 민주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 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정치가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 이승만 정부의 교육은 전통시대의 신분주의 내지 차별주의 교육과는 달리,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국민 모두에게 평등한 신분상승 기회를 열어주어
한국사회의 평등화와 경제발전에 근원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유영익,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유영익 편,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연세대학교출판부, 2007, 555~556쪽).
제가 앞서 소개한 나라들처럼
특수계층의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위한 고급교육이 아니라,
일반국민들의 지력을 높이기 위한 격렬한 교육투자는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 대폭발을 일으켜 고도성장의 결정적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이승만의 교육투자 결과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 “교육에 배고픈 한국”
브루스 커밍스는 자신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휴전 직후의 한국을 '희망없는 나라'라며 이렇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1953년,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남쪽의 부산에서 북쪽의 신의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은 죽은 자들을 묻고 잃은 것들을 슬퍼하면서, 그들 생애의 남은 것들을 주워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도 서울에서는 콘크리트와 파편이 뒤범벅이 된 길가에, 텅 빈 건물들이 마치 해골처럼 서 있었다.
수도 주변의 미군 兵舍에는 수많은 거지들이 외국군인들이 내버리는 찌꺼기를 줍고자 모여들었다..
마을들은 텅 비었으며 거대한 댐들은 더 이상 물을 저장할 수 없게 되었다.
동굴과 터널 속의 두더지 같은 생활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은 밝은 햇살 속에서 악몽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 저·김자동 역,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1986, 11쪽)
그랬던 대한민국이 1950년대 후반에는 완연하게 분위기가 바뀝니다.
한미경제협의회의 미국 측 경제조정관으로 근무했던 윌리엄 윈은
UN경제사회이사회에 참석하여 ‘교육에 배고픈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연설합니다.
“아침 7시를 전후해서 중앙청이 보이는 광화문 네거리에 서 보라.
7~8세의 어린이로부터 성년이 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제복을 입고 손가방을 들고 혹은 메고 가는 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씩씩하고 명랑하고 혈색이 좋다.
그들에게는 신생공화국의 앞날을 책임질 막중한 의무가 주어져 있다.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사명을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고 본다.”
(송인상, 『재계회고 8』, 한국일보사, 1981, 88쪽)
#. 농지개혁의 결과는 ‘캔 두 스피릿’의 탄생
농지개혁은 또 어떻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시행법령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농민들에게 농지분배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대통령의 이런 결단이 없었다면 농지개혁은 6·25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일부 철없는 학자들은
북한식 무상몰수-무상분배 방식이 아닌,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의 농지개혁은 실패작이라고 지껄입니다만,
그건 자신의 무식을 증명하는 징표일 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을 연구한 전문학자들은
세계 여러나라 중 경제가 고속성장하면서도 소득분배가 한국처럼 공평하게 이루어진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평가합니다.
그 공로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지주계급은 대대손손 토지를 세습하며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으로 농지개혁에 성공한 덕에 하루아침에 지주계급이 소멸합니다.
그 결과 수백년 뿌리 깊게 이어져 오던 지주-소작인, 즉 부자와 貧者간의 계급갈등이 일거에 불식되었습니다.
이승만 덕분에
한국은 근대화 출범 초기부터 첨예한 계급갈등의 소지를 해소하고 균질사회로 출발할 수 있었죠.
또, 6·25남침 전에 이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농민들이 ‘내 소유의 땅’을 갖게 된 덕에 남한에서 인민혁명을 기대했던 공산주의자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6·25 전에 농지개혁이 시행되지 못했다면
공산군 점령치하에서 대다수 남한농민들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한반도가 적화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농지개혁에 성공한 일본·한국·대만은
중산층이 두텁게 자리잡아 경제성장의 초석과 사회균형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면, 농지개혁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서남아, 필리핀, 중남미 국가들은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신분계급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혁명과 농지개혁 덕분에
조선조 500년 동안 뿌리 깊게 이어왔던 양반-상놈의 계급질서가 붕괴되었고,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사라졌습니다.
전 국민이 계급 없고, 빈부격차가 사라진 ‘차별 없는 시대’가 열림으로써
누구나 스스로 노력만 하면 당대에 신분상승이 가능한 ‘기회의 나라’가 실현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풍토가 ‘Can do spirit'이라는 의욕과 참여 동기의 근원입니다.
미국에 ‘American dream’이 있다면, 한국에는 ‘Korean dream’이 있었던 셈이죠.
#. ‘무수저’도 당대에 신분상승이 가능한 나라
이재명 지사는 대선출마 선언 직후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물고 뜯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부수립 단계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親日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美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네요.
2017년1월에는 대선경선 예비후보에 등록한 후 국립현충원을 찾아가 김영삼·김대중 묘역만 참배했습니다.
기자들이 근처에 있는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지나친 이유를 묻자
“이승만은 친일매국세력의 아버지,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라고 망언을 했습니다.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나왔고,
이재명 지사도 어린 시절 뭐가 째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단소년공으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결과 “나는 흙수저가 아니라 무수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처럼 무수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면
당대에 대선후보가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당선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사실을 알고나 계십니까?
그런 ‘코리안 드림’의 초석을 다진 분이 이승만 대통령인데
그런 분을 친일파, 민족반역자, 미국의 앞잡이라고 물고 뜯는 사람을 정상상태의 멘탈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더러운 나라, 친일세력과 미점령군의 나라라면
귀하는 뭣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겠다고 출마하신 겁니까?
당신이 양식 있는 정상인이라면
오염되고 더러운 나라의 대통령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으로 민족정기가 이슬처럼 영롱하고, 민족사적 정통성이 태양처럼 빛난다고 믿고 계신
이념의 고향, 사상의 성지로 가셔서 ‘최고존엄’에 도전하는 것이 정상 아니겠습니까.
제발 부탁인데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 화나게 하지 마시고 이지사님 이념과 사상의 본향으로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것이 당신이 시급히 해야 할 제1의 과제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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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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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말이나 글의 '목적'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목적' => 명사, 명사에 '은/는/이/가'의 후치사가 붙어면 주어가 된다
문장의 기본은 주어(길면 주절) + 목적어/꾸밈말 + 서술어이다
글이 6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어떻해)을 포함하면 완성문이 된다
여기서, 한 문장이 너무 길 경우, 적당한 길이로 나누어 주면(줄 바꾸기 해주면)
읽어 내려가는 호흡 조절을 이용해,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고 빠르게 전달된다
아울러, 글의 길이가 비슷하면, 정리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고 성의가 있어 보인다
물론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경우엔 의도적으로 돋우는 의미로 길이가 다르게 나누기도 한다
하기 싫은 말을 강요/규정에 의해 억지로 하는 듯 보이면, 한 집단/소속으로 보기 어렵다
일/표현에 자발적 성의 없는 이를 누군들 함께 가는/일하는 가족으로 동반자로 보겠는가!
줄 바꾸는 기준점은
전치사나 연결조사 등을 이용하여, 문맥을 살리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합을 위한 회식에서 건배제의를 자주하면 건배사도 늘듯이, 글 올리기도 자주하면 는다.
웅비4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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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0클럽'은 GDP 3만$이면서 인구 5천만명 이상인 나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전세계에서 6개국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