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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종족주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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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21-07-04 20:00 View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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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인들의 드높은 '반일 종족주의'가 권위주의 정치 탄생시켜
 이영훈 이승만학당교장 2021.06.25 14:17:32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영훈입니다. 
2년 전 이승만학당을 중심으로 저와 김용삼 선생, 주익종 선생, 그리고 동료연구자 몇분이 협조하여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제 만 2년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반일 종족주의』와 그 후속편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책의 출간, 
특히 첫번째 작품 출간 2주년에 즈음하여 느끼는 바가 있어 그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시절에 
오늘날의 세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세계는 공의의 시대다, 
이전 전통 시대와 달리 公義, 공정한 의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진단했습니다. 

인간이 자유독립적 개인으로 자립하고, 그들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자유통상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와 같은 것이 공의라면 
그러한 공의에 입각하여 세워진 최초의 나라 미국의 리드하에 앞으로 세계가 그렇게 발전해 갈 것이고,
우리 대한의 독립도 이 공의의 세계, 그 주류적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가능하고 
또 그렇게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독립의 길은 
우리가 일본을 쪽발이니 왜놈이니 망국의 한이니 야욕을 규탄하고 애통해하는 
그와 같은 입으로만 하는 독립운동으로는 전혀 이루어질 바는 아니고, 
또 수십명이, 수백명이 성급하게 무장활동을 하든가 
한두 사람의 혈기 넘치는 테러 행위 같은 것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고, 
한국인 하나하나가 정신적으로 세계시민으로 성숙하는 길이다, 세계의 교양인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그렇게 하면 세계의 자유사회로부터 한국의 독립에 대한 당위성이 이해되고 지지될 때 
언젠가 독립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이승만 대통령의 기본적인 독립 정신입니다.

1930년대 이후 전쟁의 시대에 들어가면서 
그는 격렬한 어조로 제국주의의 침략야욕을 비판하고 끊임없이 그에 대한 경계를 하고, 
동시에 대한의 독립이야말로 
아시아 평화 내지 세계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쐐기가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설득함으로써, 
드디어 미국으로 하여금 전쟁 이후에 한반도에 개입하게 만드는 길을 열었다.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통상에 입각한 국제주의자
이와 같은 독립운동 정신으로 대한민국이 세워졌다면 
이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은 1965년의 일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와 자유통상에 입각한 세계발전을 신뢰한 국제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어떤 현실정치에 구애되어 신생독립국의 국격과 독립의지를 재확인하고 양성하고, 
그렇게 국민을 통합하고 
나아가 이 땅에 놓고 간 약 20억$의 재산에 대한 
일본의 재침 가능성과 야욕을 봉쇄하기 위해 강렬한 반일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건국초창기에 불가피했던 역사적 제약이라고 한다면, 
그 제약을 돌파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면서 
한국을 공의의 세계의 주류에 참여시키는 역사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4년이나 끌었던 지루한 협상끝에 우선 역사를 청산했습니다. 
1910년도의 합방조약은 이미 무효이며, 
양국이 쌍방의 입장을 고수한 채 훌륭한 타협을 이루었고, 
동시에 일본은 한국에 남겨둔 재산을 포기하고, 
또 한국이 일본국이나 일본정부에 대해서 보유한 각종 청구권은 
3억$의 무상원조와 2억$의 공공차관으로 영구히 청산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 이후에 양국간의 국교가 정상화됨으로써 
한국·일본·미국을 잇는 태평양을 무대로 한 정치경제동맹이 성립하여 
일본의 기술과 자본, 미국의 자본과 시장, 그리고 한국의 유능한 노동력이 결합한 
고도성장의 메카니즘이 성립하여 
이후 30년간 세계자본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던 고도성장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리 건국 초창기의 아주 볼만한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사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사람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으니, 
바로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시위였습니다. 
야당과 지식인, 비판적인 대학교수 등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은 
국제자본을 앞세운 제국주의 내지 일본에 종속되거나 식민지가 될 위험성이 있다.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보상이나 제대로 된 청구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3억$이 뭐냐, 적어도 100억$은 받아야 된다, 이런 식으로 학생을 선동했습니다.

국민의 다수는 국교정상화에 찬성했습니다만, 
야당과 재야정치인, 지식인들의 반발을 맞아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거대한 민중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야당은 대중경제를 내세웠죠.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은 대중경제론을 공식적인 자당의 경제정책으로 내세웠습니다. 
이것은 외국과의 관계를 불가피한 범위 내에서 최소화하고 
국내시장, 중소공업, 농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 전략입니다.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고 비판세력들의 대안 제시, 
그 밑바닥에 저는 반일종족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족주의는 제가 여러차례 책에서도 제기했습니다만, 
이웃 집단에 대한 불변의 적대감정을 특징으로 합니다. 
사실에 반하는 비과학적인 역사적 인식에 기초하고, 
일체의 이성적 토론과 조정을 거부하는 불변의 적대감정이죠. 
합리적인 토론과 비판을 통해서 결론을 유도할만한 知的능력을 결여한 
집단지성의 저열한 수준의 소치라고 할 수 있죠.

1965년 당시 한국의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들은 
세계사의 주류로서 공의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고, 
이 공의의 세계에 대한민국이 참여하는 길로서 대한민국이 독립했고, 
앞으로 그 길로 나아가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루고, 
이 민족을 다시 통일할 것이라는 역사에 대한 비전이라든가 인간성에 대한 이해 같은, 
일찍이 이승만 대통령이 민족의 갈 길로 제시한 비전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반일종족주의』를 ‘구역질나는 책’이라고 모욕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그들은 영미가 주도한 근대세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민족·민중·계급, 이와 같은 집단주의적 정체성과 
그에 기초한 참으로 강렬한 반일적대감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가 1970년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었어요. 
저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이 대학, 저 대학 유명한 교수님들 연구실을 찾아가면 
그들은 양국의 국교정상화로 이미 한국경제는 일본에 종속되고 있다는 비장한, 
“젊은이는 각성하라”는 식의 설교를 저희들한테 했던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가치관이 반일종족주의의 출발이고 성립입니다. 
이른바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이러한 반일종족주의에 기초하여 
그들의 정치적 역량을 배양해 왔고 성장시켜 왔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공의의 세계의 주류적 흐름에 동참함으로써 성립했다는 
정당한 건국사, 그것을 인도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일체 거부하면서 
반민족, 대외종속, 부패, 장기집권, 독재의 부당한 권력이 성립했다는 식으로 
우리 역사를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반일종족주의가 치성을 부리고 강력한 저항선을 형성할 때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무력적으로 진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일종족주의가 권위주의 정치를 잉태하다
그게 1964년 6·3 사태죠.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의 시위를 진압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권위주의 정치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리적인 토론과 설득과 타협으로 정당한 길을 갈 수 없을 때 권위주의 정치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어요.
그것이 정당한 방향이었기에 권위주의 정치는 이후 한국사회의 큰 발전을 리드했습니다.

다시 말해 1987년까지 지속된 군인 출신 정치가들에 의한 권위주의 정치의 중대한 책임은 
반일종족주의 집단 정서에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한국정치사 책을 쓰게 되면 그 점을 지적하지 앉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후 30년간, 크게 보아 1996년까지 
한국경제는 일본과의 협력을 전제로 고도성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들의 드높은 반일 종족주의가 권위주의 정치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모두가 걱정했던 종속의 길이 아니라 상호 신뢰와 협조와 의존의, 협동의 길이었습니다. 
역사는 이웃 집단과 이웃 나라가 서로 신뢰하고 협동할 때 
커다란 성취를 이루는가에 대해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시대의 한국이 바로 그러했다는 것을 우리는 재확인하게 됩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을 국빈방문해서 일본의회에서 외쳤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행한 과거에 더이상 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국민 여러분, 한일간에 협동의 길을 엽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미래의 젊은이들이 손을 잡고 
동경에서 출발해서 열차를 타고 한일 해저터널을 지나 시베리아 철도를 건너 파리와 런던에 도착하는 
그 날을 열어갑시다.”

그렇게 연설했어요. 많은 일본국민들이 그 연설을 듣고 감동해서 박수를 쳤습니다. 
이것이 세계자유시민이 갈 길이죠. 
만약 우리가 그 길에 충실했던 지난 30년이었다면 한국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역사는 달라져 있었을 겁니다. 
통일을 했을지도 모르죠. 세계일류국가로서 한국이 당당하게 일본과 함께 자리를 잡았을 겁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쉽게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리석고 간사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치기 어린 막말의 결과 결국 1997년 말에 IMF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IMF외환위기가 그 때문에 초래된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일본과의 갈등이 외부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독도문제 폭발시킨 김영삼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오랫동안 양국의 침묵협약으로 맺어온, 독도분쟁을 쌍방간에 제기하지 않는다는 비밀협약을 깼습니다. 
1995년에 독도에 접안시설을 착공함으로써 
커튼 뒤에 숨겨져 있던 독도분쟁을 국민적 아젠다로 현실화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반일종족주의 감정이 더욱더 치오르는 가운데 
드디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공공연히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역사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1992년 이래 위안부문제, 태평양전쟁희생자 보상과 같은 역사 문제들이 
첨예하게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을 하여 한일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악화시킨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시대를 건너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 접안시설을 확충하고 민간여행을 장려했습니다. 
독도야말로 양보할 수 없는 주권사항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드디어 분쟁이 공식화됐습니다. 
일본도 그동안 소극적인 수준에서 대응하다가 
드디어 교과서에 일본 다케시마를 한국이 불법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씀으로써 
분쟁이 양국의 국가적 과제로 공식화했습니다.

반일종족주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연장선상에 있다가 현 정부 초기 3년간 반일종족주의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렵사리 성취한 위안부문제에 관한 양국의 협정, 
“이로서 영원히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쌍방간에 맺었던 협정을 파괴했습니다. 
그 협정에 따라 설립된 재단을 해체하고 기금을 일본에 반환하겠다고 했습니다.

2018년에는 오랫동안 일본 등지에서 소송을 제기하다 패소를 거듭한 여운택 등 4명, 
이 사람들은 일제치하에서 일본제철에 취업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제철이 노무자를 모집할 때 
그에 응모하여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서 일본에 가서 훈련을 받고 노무를 했고, 
청진 어떤 일본제철 공장에 전근을 와서 노동노무를 하다가 해방을 맞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강제로 연행되었다, 학대되었다, 그리고 아주 빈약한 임금으로 혹사당했다는 역사적 인식을 전제한 위에, 
이들이 위로보상받을 권리는 1965년 양국간의 협정에도 불구하고 
시효에 구애되지 않고 유효하게 살아있다는 법리에 근거해서 
신일철주금은 이들에 대해 1억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편결합니다.

한국정부가, 법원이 한국주재 신일철주금의 재산을 압류하고 처벌하는 절차를 개시함으로써 
이전에 없던 긴장상태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반일종족주의』를 출간한 것은 이러한 위기적 상황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더이상 이런 현상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종족주의라는 불변의 적대감정, 그 기초를 이루는 천박하고 저열한 역사인식, 인간관, 
이것을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 독립정신, 자유와 독립의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 국민정신을 계몽함으로써 높은 수준으로 이끌고 가자는, 학당을 설립한 본의에도 맞지 않고, 
그래서 무언가 발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일주의자 아니냐, 
왜 일본과 반일한 대통령의 정신을 기리는 이승만학당이 한국을 비판하는 책을 쓰느냐. 
그건 좀 오해입니다. 
그런 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극히 일부만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큰 모습은 국제적 자유주의자입니다. 
매우 순수하고 급진적인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자유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자유통상을 신뢰하고, 
자유통상에 입각한 국제적 협력을 중시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기본주의입니다. 
그가 국회의장에 취임하면서 한 연설의 끝부분을 봐도 자유통상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자유통상을 실현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죠.

사실(fact)이 승리한다
이것이 우리의 건국정신이고 우리 이승만학당이 추구하는 정신입니다. 
그래서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소위 말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에 근본적 위협이 되고 있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에는 저희 학당의 김용삼, 주익종 두 선생뿐만 아니라 
동국대학교의 김낙년 교수, 그리고 낙성대연구소의 이우연 박사, 당시 서울대경제연구소의 정안기 박사 
이런 분들이 기꺼이 동참해주셔서 한권의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편집자 입장에서 절반 가까이를 집필한 저의 입장은 
이번 기회에 어떠한 터부를 두지 않고,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하지 않고 
해야 될 모든 이야기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부작용이 클 것이다. 다소간의 사회적 정치적 압박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만,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혜택받은 기회를 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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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연님의 댓글

저기연 아이피 119.♡.33.114 작성일

단순 복사-붙여넣기 하신 기사는 저작권 침해일 수도 있는 점 아시나요?
걱정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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