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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화 혁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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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의 현대사 추적] 대한민국 광복74주년, 건국71주년의 역사적 의미
김용삼 대기자 2019.08.15 12:03:40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이승만,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루다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의 탄생을 세계에 알리는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필자 주]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은 
학문적 정의에 의한 용어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성으로 사용한 용어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즉 대륙문명은 
한민족이 오랜 기간 젖어 있던 유교적 세계관과 중국편향의 사대주의, 폐쇄적이며 쇄국, 
세습왕조적 세계관에 대한 상징으로, 
해양문명은 
근대적 세계관과 기독교문명, 개방과 교류와 통상, 그리고 민주적 세계관의 상징으로 차용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반도국가다. 
반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태를 묻고 살아야 했던 한민족은 늘 바다를 끼고 살면서도 
한 눈으로는 대륙을 바라보아야 하는 중간지대적 속성을 숙명처럼 떠안고 살아왔다. 
로마가 발흥한 이탈리아가 그랬고, 유럽에 수많은 도시국가를 창조한 그리스가 그랬다.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국가로 출범한 로마는 유럽의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로마가도를 건설했고, 
해적을 퇴치하고 해상로의 안전을 확보하여 지중해를 自國의 내해로 만들었다. 
육로와 해로를 통해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상호교류할 수 있는 길을 연 결과 
로마는 인류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한민족은 오랜 기간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반도국가적 속성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문화를 일구어 왔다. 
신라와 백제, 고구려는 일본, 중국은 물론 멀리 이슬람 문명권과 교류한 사실이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통해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장보고는 한민족 해양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장보고는 군사력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에 나섰다. 
또 저장성(浙江省) 월주요(越州窯)의 도공들을 초빙하여 청자제조 비법을 배워 
강진과 해남 일대에서 국산청자를 제작하여 일본과 당에 수출했다. 
이것이 후에 세계 명품이 된 고려청자의 출발이다.

장보고는 중국에 진출한 이슬람 상인들과 접촉하여 
아랍에서 중국으로 이어진 해상 실크로드를 한반도와 일본까지 연결함으로써 
동서양 문물교류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해외거주 신라인들을 기반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대외진출과 세계경영을 실현했다. 
한민족의 활동공간을 바다로 확대시킨 글로벌 CEO 장보고는 
우리 역사보다는 중국과 일본에서 더 큰 비중과 명성을 차지하고 있다.

한민족의 해양화 전통
고려의 창업자 왕건은 신흥 해상무역 세력의 대표였다. 
덕분에 고려는 초기부터 해상무역이 번성하여 
개성과 인접한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무역항으로 각광을 받았다. 
개성상인의 뿌리는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해상국제무역 붐을 타고 벽란도에 아라비아와 유럽 상인들이 대거 진출했고, 
그들을 통해 고려의 영문 이름인 ‘KOREA’가 중동과 유럽까지 퍼졌다. 
고려인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금속활자와 고려 인삼이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보급되었고, 
장보고에 의해 도입된 청자 제조기술은 고려시대에 독창적인 기법이 가미되어 
중국에서 천하의 명품 대접을 받게 된다.

개성과 예성강 하류의 벽란도 일대에는 최소 4만명에서 7만명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모여 살았는데, 
대부분이 무슬림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개성에 ‘예궁’이라는 모스크를 지어 기도를 하고 코란을 낭송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소개된 고려가요 ‘쌍화점’에 무슬림 상인이 등장한다.

쌍화란 투르크계 만두의 일종인데 
쌍화점의 내용은 
“쌍화점(만두 가게)에 쌍화(만두)를 사러 갔더니 
무슬림 주인아비가 고려 여인의 손목을 잡으면서 은밀하게 유혹하는” 내용이다. 
‘쌍화점’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이 이역만리 고려에까지 와서 만두 가게를 열고 살아갈 정도로 
우리 민족의 개방성과 대외지향성을 보여주는 내용증명이다.

조선 초기에도 무슬림 기술자들이 한반도에 진출하여 보석 채취와 광산업에 종사했다. 
세종 임금의 즉위식 때 이슬람교 지도자가 참석하여 코란을 낭송한 기록이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이슬람 문화가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있었다.

서양이 종교적 근본주의로 인해 중세 암흑기를 헤매고 있을 때 
무슬림들은 그리스, 로마의 천문학과 과학기술 문명을 흡수하여 이슬람이 과학기술을 선도했다. 
원나라 시절에 구축된 세계교역망 덕분에 손쉬워진 동서교류로 이슬람의 과학기술이 중국에 유입되었고, 
무슬림 학자들이 대거 중국에 초빙되어 천문대, 의약원 등을 설립했다.

이러한 이슬람 과학기술의 조류가 한반도까지 흘러와 
100~200여년 숙성과정을 거친 후 조선 초기에 꽃을 피우게 된다. 
조선에서 서양보다 200년 이상 앞선 측우기, 천문시계인 혼천의 등이 발명된 것은 
당시 국왕이었던 세종의 뛰어난 리더십과 함께 
고려시대부터 흘러온 이슬람의 과학, 수학, 천문학이 토착화되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력의 뿌리는 이슬람 회회력(回回曆)이다. 
일부 학자들은 한글창제도 세종의 독창적 작품이라기보다는 원나라 음운학이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원나라는 제국 공용어를 만들기 위해 중국은 물론 중앙아시아 지역의 음운학자를 동원하여 
표음문자인 파스파 문자를 제정했다.

원나라가 붕괴한 후 등장한 명나라는 파스파 문자제정에 협조한 음운학자들을 요동으로 귀양을 보냈다. 
한글창제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이 
요동으로 찾아가 파스파 문자에 담겼던 음운학의 핵심을 전수받아 한글 창제에 활용했다. 
그 결과 중국과 중앙아시아 음운학의 과학적 엑기스가 한글에 접목되어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평을 듣게 된다.

대륙문명으로 회귀하며 쇠퇴
이러한 반도국가적 속성, 그 중에서도 해양화 전통과 정서는 
유교와 성리학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조선조의 출범으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특히 성리학이 교조화 되는 조선중기 이후가 되면 해양화와는 담을 쌓고 철저하게 대륙문명으로 회귀하게 된다.

명나라는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 때 
鄭和의 대함대를 일곱차례나 아라비아, 아프리카까지 파견하는 등 해양대국의 위용을 보였지만, 
영락제 死後, 함대를 해체하고 해상교역을 차단하는 海禁정책으로 쇄국의 길을 걸었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 교수는 
“중국의 해금정책이 중국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이 쇠락한 가장 큰 이유”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이때부터 제해권을 상실하여 19세기 서구열강에 유린당하고 말았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사대교린(事大交隣) 정책에 의해 국제무역을 상당 부분 통제했다. 
또 외침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空島정책, 海禁정책을 펼쳐 바다를 향한 도전과 패기의 기상을 잃었고,
개방과 교류라는 해양문명의 핵심 유전자마저 쇠퇴하게 된다.

그나마 조선 500년 동안 해양문명의 유전인자가 빛을 발한 것은 이순신 제독이다. 
이순신 제독의 거북선을 이용한 돌격전법과 원거리 화포를 활용한 함대운용 전술은 
동시대를 풍미했던 육박전투 방식의 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진화되고 독창적인 전략이었다.

쇄국으로 매진한 조선의 양반지배층은 돈을 천한 것으로 여기고 청빈을 고귀한 가치로 칭송했다. 
황금천시는 상공업천시로 이어져 상공업은 사회의 밑바닥 천민계층이 담당하는 더러운 직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기술이 뛰어난 匠人들은 사회적 예우는커녕 더 많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 되었기에 
훌륭한 기술이 후대에 전수되지 못하고 대가 끊기곤 했다.

농업 이외의 산업이라고는 극소수 보부상들의 물물교환 정도였으니 
20세기 중반까지 조선은 
전국범위에서 통용되는 변변한 화폐조차 없었고, 보릿고개, 초근목피에 이골이 나고, 
쌀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국가와 국민 모두 빈곤상태에 놓였다.

19세기 말 청나라 궁정의 연간예산이 은화 1억냥, 일본도 중국과 비슷한 1억냥 정도였다. 
같은 시기 조선은 중국, 일본의 300분의 1에 불과한 30만냥에 불과했다. 
거듭된 海禁과 쇄국정책, 대륙 일변도의 尊明事大 정신으로 인해 
조선은 근대화라는 세계사의 본류에서 밀려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조선도공들, 일본 근대화의 불 지펴
조선 중기인 인조 4년(1626)과 효종 4년(1653)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 등장한다. 
인조 때 표류해 온 벨테브레와 헤이스베르츠, 페르베스트 등 세명의 네덜란드 사람은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대포제작과 포술을 지도했다. 
효종 때는 하멜 일행 36명이 제주도로 표류해 왔다. 
하멜은 조선에서 13년 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동료 6명과 함께 나가사키로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출간했다.

조선역사에서 이들의 등장은 일본-유럽 간의 도자기 교역망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들이 타고 있던 선박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국제무역선이었다. 
네덜란드 무역선은 유럽과 나가사키를 왕래하며 
매년 일본 도자기를 수백만점 씩 구입 해다가 비싼 값을 받고 유럽에 판매했다. 
지금도 유럽의 왕실과 궁전에는 
당시 유럽에 수입된 일본의 아리타(有田) 야끼와 사쓰마(薩摩) 야끼가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일본은 200여년 간 엄청난 양의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일본 도자기를 싣기 위해 나가사키에 오는 네덜란드 무역선은 
총포와 서적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문물을 가득 실어다 일본에 전해주었다. 
이러한 동서양 도자기 무역을 통해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개화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된다. 
말하자면 도자기가 일본의 근대화를 촉발시킨 셈이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점은 
유럽 귀족사회를 열광시킨 일본도자기는 임진왜란 시절 조선에서 끌려간 조선도공(陶工)과 그 후예들의 작품이었다. 
이삼평이 빚어낸 아리타(有田) 야끼, 심당길(심수관의 선조)과 그 후손들이 일으킨 사쓰마(薩摩) 야끼는 
심오한 미적 감각과 찬연한 색채감으로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을 열광시켜 일본을 대표하는 수출상품으로 등극하게 된다.

조선도공들은 본국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구조의 최하층민으로서 
모진 박해와 각종 노역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지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 인생역전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일본사회에서 장인(匠人)으로서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자신들의 재주를 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에서 끌려간 포로 10만명 중 단지 9천명만 고향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조선도공들은 포로교환 때 고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대부분 일본에 정착하여 세계사에 길이 남을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조선도공들 덕분에 일본은 국부(國富) 창출은 물론 근대화의 결정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같은 시기, 조선의 도공들은 사농공상의 신분구조에 찌들려 
양반들의 애완용 도자기를 빚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은 뛰어난 도공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착화 된 신분구조 덕분에 국가발전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그들의 천재적 재능을 사장(死藏)시킨 것이다.

이승만, 대륙문명과 탯줄을 가르다
문화사적 측면에서 볼 때 
땅(대륙)은 농사(정주, 정착)를 장려하지만 바다(해양)는 장사(무역, 개방, 이동)를 권장한다. 
대륙이 광물자원, 중앙집권, 자급자족, 집단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국가주의를 상징한다면 
바다는 변화, 다양성, 개방, 교류, 인권, 자유, 코스모폴리탄의 원천이다.

한국은 지난 70년 동안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문맹률은 78%에서 0%로 낮아졌고, 평균수명은 45세에서 82세로 연장됐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자연자원 덕에 성장한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식민지를 착취하여 산업화를 이룬 결과도 아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 중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채택한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구한말 이승만이란 존재와 만나게 된다.

이승만이 자유, 민주, 개방, 통상, 인권의 세례를 받은 것은 
20세 때인 1895년4월,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이승만은 10여차례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결혼하여 아들까지 둔 청년 선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승만은 성리학적 질서 하에서 입신양명을 꿈꾸던 수구꼴통 청년선비였다.

배재학당에 첫 등교를 하던 날 
이승만은 큰 갓을 쓰고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학당장(교장) 헨리 아펜젤러를 만났다. 
당시 배재학당에는 아펜젤러뿐만 아니라 달젤 벙커, 프랭클린 올링거, 
한국문화 전문가이자 독립운동의 은인 호머 헐버트, 윌리엄 노블, 조지 존스, 윌리엄 스크랜턴, 
그리고 엘라 아펜젤러 부인, 베르타 올링거 부인, 매티 노블 부인 등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승만은 서양 선교사들과 교우하며 영어를 배웠고, 기독교적 가치관과 한국을 연결하는 일에 앞장선다. 
특히 이승만은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와 민주주의, 근대문화, 자유주의, 계몽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미국에서 고급교육을 받고 돌아온 서재필과 윤치호를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이승만은 미국을 시장경제가 발전한 나라, 기독교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 기회균등의 나라로 보았고, 
한국을 미국과 닮은 모습으로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다. 
그것은 조선이란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던 대륙문명과 탯줄을 가르고, 
미국으로 상징되는 해양문명으로의 역사적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독립정신』에 담긴 의미 : 개방, 통상, 민주주의, 기독교
그가 한성감옥에 수감되어 힘들고 고통스런 수감생활을 하는 와중에 
서양 선교사들이 넣어주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전 지구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몰래 집필한 『독립정신』을 통해 다음 세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1890년 이후 질풍노도의 조선을 둘러싼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분석해 내면서 
애국심을 강조하고, 근대적 국가의식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둘째, 전제군주 시대에 대역죄에 해당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민주헌법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문명부강한 나라는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반면, 가난하고 뒤떨어진 나라는 전제군주국가였기 때문이다. 
문명부강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청년 이승만의 확고부동한 사상체계가 형성되었다.

셋째, 서양문물을 하루 속히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지식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다른 나라들과 통상을 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조선의 혼을 지배해 왔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가치관이 아니라 
그 정 반대로 工商우선주의적 사고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상업과 무역(통상)을 권장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재물과 금은보화를 벌어들이고, 
공업과 농업을 진흥시켜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사람의 가치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무엇보다 먼저 국제법, 통상조약, 우리나라 사와 지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또한 천문학, 지리학, 물리학, 철학, 화학, 신학, 법학, 의학, 농학, 상학, 경제학, 정치학 등 전문서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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