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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없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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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21-04-27 12:34 View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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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커피를 마시는 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 한은형 소설가  2021.04.27 03:00

바흐 ‘커피 칸타타’ 속 딸, ‘결혼 안시켜준다’ 아빠 엄포에 커피 끊는데
“커피, 커피!” 환호에 가까운 노래엔 오히려 커피 권하는 화사한 흥분이…
맛으로, 분위기로, 하루 견디려… 커피 없었다면 밤은 얼마나 길었을까

바흐가 만든 음악 중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이 음악을 듣는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커피를 찬양하는 이 음악은 이렇게 시작한다. 
“조용히, 잡담을 멈추세요. 떠들지 마시고요. 지금 일어나는 일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며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바람을 잡는 화자가 먼저 나오고, 
곧이어 아버지와 딸이 등장한다. 

아버지에게는 고민이 있다. 
딸이 커피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 
아무리 커피를 그만 마시라고 말려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며 속상해한다. 
“네가 커피를 그만 마시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말이다.

딸은 자기 주장이 분명한 계열인데 유머도 있어서 미워할 수가 없다. 
“세번, 하루에 세번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저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말라비틀어진 염소 고기처럼 되고 말 거예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네가 계속 그러면 나도 생각이 있다는 아버지. 
유행하는 옷도 안 사주겠다, 창밖도 내다보지 못하게 하겠다며 협박을 하는데 
딸의 커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는 최후통첩을 한다. 
네가 계속 그런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며, 계속 커피를 마신다면 결혼을 시켜주지 않겠다고 말이다. 
딸은 마지못해 그럼 알겠다고, 아버지의 뜻대로 커피 대신 결혼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어떤 걸로 협박해도 꿈쩍도 않던 커피에 대한 열렬한 마음이 이렇게 단번에 접히는 게 이상한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지 말라며 치졸하게 구는 아버지와 한집에 살 수 없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이러니 이 노래는 커피를 부를 수밖에 없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고, 
나는 말리는 아버지보다 반항하는 딸에 더 이입되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 반항심도 든다. 
아니, 왜 대체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걸까?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마시지 말라고 하니 더 마시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 것이다. 
의심할 수밖에 없다. 
커피를 마시게 하려고 만든 노래일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커피의 맛을 모르는 사람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바흐가 쓴 건 아니다. 
‘마태 수난곡’의 대본 작가인 피칸더가 썼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바흐는 커피를 얼마나 좋아했을지 궁금하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처럼 커피를 들이부으면서 그 많은 곡들을 작곡한 걸까? 
이 노래의 가장 유명한 부분인 “커피, 커피!” 하며 딸이 환호하다시피 부르는 구절에는 
화사한 흥분이 묻어 있어서 더 그렇다. 
그리고 이 노래는 라이프치히에 있던 커피하우스, 그러니까 카페에서 공연되었다. 
카페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카페 사장과 바흐와 피칸더는 커피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합심한 거다. 
어쩌면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최초의 커피 CM Song이었을 수 있다. 
그것도 라이브로 연주하는 커피 전도송.

다시 아버지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나는 아버지가 왜 딸이 커피 마시는 걸 금지했을지 궁금하다. 
하루에 세번 마신다고 했으니 중독이라서? 
아버지는 커피보다는 차를 좋아해서? 
커피가 너무 비싸서? 
과한 건 그게 무엇이든 좋지 않으니까? 
카페에 드나들다 호된 연애에 빠질까 봐? 
건강이 안 좋아질까 봐? 
커피를 마시고 딸이 잠을 안 자서? 

1732년의 일이니 카페인의 해악이 알려졌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자니 커피의 여러 얼굴이 보인다. 
누군가는 커피를 맛으로 먹지만 
누군가는 분위기로 먹고, 
또 누군가는 잠을 깨기 위해서도 먹고, 
무엇보다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도 먹는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에서도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났다. 
시인 김광균의 커피 이야기. 
영상 속에서 시인의 차녀가 조용조용 회고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셔서 밤에 영어를 혼자 공부하셨는데, 
잠을 쫓으려고 계속 커피를 마셨고, 그래서 위가 나빠졌다는 이야기였다. 
시인이 쓴 커피에 대한 산문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했다. 

나는 “커피, 커피!”가 나오는 아리아를 들으며 
김광균이 한밤에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커피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밤은 얼마나 더 길고 무료했을지도.

댓글목록

웅비4해님의 댓글

웅비4해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그리고
나는 독백한다
그대의 낮은 나의 밤보다 화려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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