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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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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21-06-25 13:09 View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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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돈이 더 무서워” 할머니는 오늘도 탑골공원에
[최원우의 아무튼 인터뷰]
조선일보 최원우 기자 2021.06.24 14:07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줄게, 안 비싸.”
아카데미가 인정한 배우 윤여정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연기한 매춘부 할머니가 날린 대사다. 
이들은 종로 일대에서 주로 노인을 상대로 건강드링크 한병 권하면서 성매매를 권한다. 
영화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노인들이 그녀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지금도 속칭 ‘박카스 할머니'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활동하고 있을까.

◇생각보다 공공연히 활동하던 ‘매춘부 할머니’들
지난 20일 이른 점심때쯤. 매춘부 할머니들의 주활동 무대로 알려진 종로구 탑골공원으로 무턱대고 나가봤다. 
공원은 코로나 때문에 문이 닫혀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 곳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인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장기를 두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그저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매춘부 할머니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인상착의만으로도 의심 가는 분들이 몇몇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저 바람 쐬러 나온 할머니일 수도 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혹시 돈받고 연애해 주시나요”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전에 노숙자를 취재했을 때보다는 훨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었는데, 대놓고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바로 그 할머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한 노인과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혼자 가는가 싶었는데, 대화를 나눴던 할아버지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할머니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불륜 현장이라도 적발한 것 같은 기분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둘은 횡단보도를 건너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따라가면서, 관광객인 척 사진도 몰래 찍었다. 
둘은 한참을 걷더니 구석진 골목의 한 외딴 건물로 들어가버렸다. 
여관은 아니었지만, 더 따라가기가 애매했다. 
“실제로 그런 할머니들이 있기는 한 것 같다”는 생각과 
“그냥 박카스 좋아하는 노부부를 오해한 걸까”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조금 더 확실한 대상을 찾아야 했다. 
탑골공원 근처에 있는 종로3가역 쪽 거리로 넘어가 봤다. 
이곳에도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일단은 어느 카페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 하면서 주변을 잠자코 지켜봤다. 
그렇게 20여분쯤 지났을까. 한쪽에서 예사롭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꽃무늬 셔츠에 등산복 바지를 입고, 등산화를 신은 아주머니였다. 
어색하게 몇차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분이 갑자기 내게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괜히 긴장이 돼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는 코앞까지 다가와 속삭이듯 “잘해줄게, 가자”라고 했다. 
정말 영화 속 대사 그대로였다. 드디어 찾던 대상을 만난 것이다.

간신히 인연이 닿은 김꽃님(60·가명)씨와 꼭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노인들만 상대하는 줄 알았는데, 
겨우 35살밖에 안 된 데다 나름 또래 중에선 동안인 나를 잠재적 고객으로 봤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다. 
그래도 모르는 척 따라가기엔 왠지 김씨를 속이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하려고 나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김씨는 버럭 “기자라고? 어디 카메라 숨겨둔 것 아니냐”라며 화를 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굉장히 당황스럽긴 했지만, 애써 사정을 잘 설명했다.

김씨는 한참 듣더니, 대뜸 “내가 얘기해 주면 돈 줄 거냐”고 물었다. 
잠깐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건가 고민했지만, 
이분들의 ‘영업시간’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장사 한번 하는 정도의 사례비는 드리겠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커피 한잔하면서 잠깐 얘기만 나누고 돈도 받으시면 남는 장사 아니냐”고 했다. 
김씨의 눈이 잠깐 번쩍 뜨이는 듯싶더니, 
다시 “안돼 안돼. 이 바닥에선 쪽이 팔리면 장사 못해”라면서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왠지 숨길 수 없는 김씨의 미련을 엿본 것 같았다. 
짐짓 여유 있는 척 가만히 있었더니, 잠시 뒤 김씨가 내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이거 진짜 문제없는 것 맞느냐. 익명 맞느냐”며 “보통 시세가 6만원이니까 6만원 달라”고 했다. 
마침 수중에 현금이 5만원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럼 그냥 그거라도 달라”고 했다. 
김씨는 한참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먼저 길 건너가 있으면 따라가겠다”고 했다.

◇매춘부 할머니 찾아가는 20·30대, 도대체 왜? “싸니까”
김씨는 어느 건물 주차장 구석진 곳으로 데려가더니, 종이박스로 간이 의자를 만들고 “여기서 얘기하자”고 했다.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게 어떻겠냐. 커피는 제가 사겠다”고 했더니 
“커피 사줄 돈 있으면 그냥 돈으로 더 달라”고 했다. 
김씨는 돈에 대한 집착을 숨기지 않았다. 
김씨는 “사진은 절대 안 된다. 시간은 10분만 하자”고 했다. 
이때가 오후 2시쯤이었는데, 이쪽 업계에선 지금이 피크타임이라고 했다. 
오후 4시쯤 되면 대부분 노인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예순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김씨에게 “동안이시다”라고 했더니 “그런 얘기를 좀 듣는 편”이라면서 웃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김씨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궁금한 내용들을 돌직구로 던져댔다. 
김씨는 자주 머뭇머뭇하긴 했지만, 대부분 질문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실제 성매매 시세가 얼마냐고 다시 물었더니 
“사실 3만원도 받고, 4만원도 받아. 그래도 돈은 못 돌려줘”라고 했다.

김씨는 요즘도 하루에 많게는 3~4명과 성매매를 한다. 
코로나 전에는 하루 5~6명까지 했는데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이 많지만, 아내가 있어도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김씨는 “그냥 아내가 안 해주니까 풀러 오는 거지”라고 했다. 
‘일’을 한번 치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노인들은 보통 기력이 쇠했거나 술에 취해 오는 경우가 많아서 30분도 채 안 걸린다. 
기운이 약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각종 약과 기구도 있다고 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일을 할 때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그냥 풀러 오는 거지. 외로움 달래 달라고 괜히 말 시켜봤자 내가 받아주지도 않아”라고 했다.
김씨가 “노인들 말고도 고객 10명 중 1~2명은 20~30대 청년”이라고 했을 때는 솔직히 놀라웠다. 
나를 잠재적 고객으로 본 것도 그래서였나 싶었다.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나는데도 성매매하러 종로까지 오는 청년들이 있다니 믿기 힘들었다. 
보통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다 멀쩡한 사람들이지, 내가 속사정은 어찌 알아. 가끔가다 대학생 같은 애들도 찾아 오더라”고 했다. 
김씨는 “결국엔 돈 때문이지. 훨씬 싸니까”라고 했다.

김씨도 돈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 
김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처음엔 식당 보조업무 등을 했지만, 3년 전부터 이 업계로 넘어왔다. 
초반에는 텃세 때문에 고생도 하고, 돈도 뜯겼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코로나 전에는 한달에 40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지금은 200만원 정도를 번다. 
그래도 식당에서 일할 때보다는 수입이 괜찮고,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들도 있다. 
김씨는 “언젠가는 그만둬야 하는 걸 알지만, 돈을 좀 더 모아야 장사라도 하지”라고 했다.

◇ “코로나 걸리는 것보다 손님 줄어든 게 뼈아프다”
코로나 상황에서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게 무섭진 않을까. 
아무리 봐도 방역수칙 지켜가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작년에 탑골공원 일대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김씨는 “코로나 걸릴까 봐 걱정이 되긴 한다”면서도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코로나보다 돈이 더 무서워. 손님이 줄어든 게 더 뼈아프지”라고 했다.
성매매 특성 상 운이 나빠 코로나 감염자가 고객이 되는 날엔, 김씨도 100% 감염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태 감염이 안 된 게 더 신기할 정도였지만, 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경찰단속도 일주일에 몇 번씩 뜬다고 했다. 
김씨도 몇번 붙잡힌 적이 있다. 
김씨는 “단속 걸려도 처벌이 그렇게 세지는 않다. 벌금은 좀 내도 감옥에는 안 간다. 
그러니까 다시 돈 벌러 나오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완전히 없어져도 안 된다. 
그러면 성범죄가 확 늘어날 게 뻔한데”라고 했다.

김씨는 종로 일대에 자신처럼 일하는 매춘부 할머니가 50명 정도 있다고 했다. 
종로는 관악산 일대와 더불어 업계 양대산맥으로 통한다. 
김씨는 최근 조선족 여성들까지 장사를 시작해서 밥그릇을 위협한다며 혀를 찼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아주 돈독이 올라서 여기를 완전히 장악해 버릴 생각으로 오는 것 같아. 
요즘은 3명 중 1명이 조선족일 정도로 많이 늘어났어”라고 했다. 
문득 호칭이 궁금해져서 “서로 부를 때는 뭐라고 부르나요. 
‘박카스 아주머니'(차마 할머니라고 할 수 없었다)라는 표현도 쓰나요” 물어봤다. 
김씨는 “그런 말이 있는 건 아는데 우리끼리는 그런 말 안 쓴다. 요즘은 드링크 주지도 않아”라고 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30분이 훌쩍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김씨에게 “그래도 사는 게 행복하시냐”고 물었다. 
김씨는 “불행하다고 봐야지. 이렇게 사는 데 행복하겠어”라고 했다. 
김씨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김씨는 “그래도 그냥 자식 바라보고 사는 거야.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지만, 
그래도 자식밖에 없지. 그래도 자식이 행복이야”라고 했다.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자녀들도 어머님이 이렇게 자기들 생각하는 걸 아느냐”고 했더니 
“내가 이렇게 돈 버는 것조차 꿈에도 모를 텐데”라고 했다. 
김씨는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다고 했다. 
그는 “취업난이 심해서 그런가, 
둘 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결국 다시 돈 문제였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버는 그녀를 응원할 수는 없었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돈”이라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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