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시작
페이지 정보
관련링크
본문
사회 사회 일반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 CGV 127개관 개봉...이건 기적이죠”
[월간조선] 이승만 영화 ‘기적의 시작’ 만든 권순도 감독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2024.03.31. 17:04
“주제와 소재는 같은데 스타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건국전쟁>은 자료화면이 많이 나옵니다.
(이승만에 대해) 연구한 사람들이 설명을 하죠.
그런데 저희(<기적의 시작>)는
이승만 대통령을 직접 만나봤거나, 함께 생활해 봤거나, (함께) 큰일을 해봤거나 등
이승만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재조명한 영화 <기적의 시작>이 지난 2월22일 CGV에서 개봉했다.
이보다 앞서 대형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건국전쟁>은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두 영화는 이승만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권순도(權純道·46) 감독은 <기적의 시작>이 <건국전쟁>과 무엇이 다르냐는 물음에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를 해 본 사람들까지 나온다”며 사실감(事實感)과 현장감(現場感)을 강조했다.
실제로 <기적의 시작>엔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고(故) 이인수 박사, 고(故) 백선엽 장군 등이 출연한다.
이인수 박사는 작년에, 백선엽 장군은 2020년 세상을 떠났다.
권 감독은 그들의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생전 인터뷰를 확보했다.
여기에 원로 배우 임동진(79)씨가 이승만 대역으로 출연해 생동감을 더했다.
권 감독이 20여년 전 부친의 권유로 만들기 시작한 <기적의 시작>은
그간 ‘독재자’ ‘친일파’로 매도돼 온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묘사한 영화다.
영화는 이승만의 독립운동, 건국,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2월19일 서대문역 인근에서 만난 권 감독은 <기적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인데요,
우리나라가 어떠한 역경을 딛고 건국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영화이고,
또 우리가 왜 우리나라를 지켜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번 시도한 이인수 박사 인터뷰
― 이인수 박사 인터뷰는 어떻게 담을 수 있었나요.
“(이인수 박사가) 인터뷰에 응한다고 했는데, 건강이 받쳐주질 않아서 두세 번 실패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약속도 잡지 않고 임동진 선생님과 함께 이화장에 찾아갔어요.
그날 우연히 이인수 박사의 건강상태가 일시적으로 살아나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때 마침 장비들도 있었기 때문에 운이 잘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배우 임동진씨는 이승만의 연설, 속마음을 독백(獨白)하는 장면,
하와이에서 외롭게 말년을 보내는 모습 등을 재연(再演)했다.
― 임동진씨가 처음엔 이승만 대역을 맡길 거절했다면서요.
“거절했다기보다는 난색을 표했어요.
본인의 생김새가 이승만 대통령과 닮지 않아서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죠.
그리고 저도 임동진 선생님을 극(劇)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의 재연 역할로 모시는 데 대해
결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임동진 선생님이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겸손하시더라고요.
그 부분은 전혀 개의치 않으셔서 밀어붙였죠.
그렇게 ‘생김새보다 연기력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해 영화의 생동감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권순도 감독은 정신없이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인터뷰 도중 연신 “죄송합니다, 잠시만요”라고 했다.
권 감독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CGV 127개 극장에서 <기적의 시작> 상영이 확정됐다고 한다.
영화관 측에서는 좀 더 많이 개봉하도록 권했지만 사양했다고 한다.
“흥행 목표? 여기까지 온 게 기적”
사실 <기적의 시작>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시사회를 열고 서울 시내 할리우드극장과 필름포럼에서만 개봉했다.
관객수도 입소문에 의존해 유지되었다.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어느 관객이 표 1천장을 한번에 사 가는 일도 있었지만
두 극장에서 상영된 이 영화의 누적 관객수는 4600명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건국전쟁> 열풍이 불자 이에 힘입어 대형 영화관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게 권 감독의 설명이다.
권 감독은 지금 상황을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교에서 입학하라는 연락이 온 것과 같다”며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 흥행 목표는 설정하셨나요.
“사실, 목표는 딱히 없어요. 여기까지 온 것도 저희가 계획한 게 아니니까요. 정말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에요.
독립극장 2곳에서 상영되던 저예산 영화인데, 지금 대형 극장에서 120개 넘는 상영관을 준다고 하니까요.
홍보비를 많이 쓴 것도 아니고요.
원래는 지난해 10월부터 2개 독립극장에서 개봉해 차근차근 관객수를 늘리려고 했어요.”
― <건국전쟁> 열풍의 영향도 있겠지요.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이승만 관련 콘텐츠, 부정적인 게 다수”
― 영화를 통해 무엇을 알리고 싶나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왜곡과 비난만 존재했어요.
이승만 대통령을 싫어하는 젊은 세대는 그분의 업적을 하나도 몰라요. 그걸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권 감독에 따르면 영화 제작에 소요된 기간은 20년이다.
시작은 부친 권주혁(71) 전 이건산업 사장의 권유였다.
그때부터 방대한 기록과 증언자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부친의 권유라고 해도, 영화 제작을 결심한 동기는 더 있을 것 같은데요.
“20년 전, 아버지께서 ‘이걸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거나 같이 일해본 사람들, 백선엽 장군 등을 만났을 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많이 여쭤봤어요.
그걸 기록해 뒀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영상 콘텐츠들은 죄다 나쁜 이야기만 나오지,
제대로 된 게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기적의 시작> 같은 영화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만들지 않으니까요.”
영화 ‘기적의 시작’에 감긴 백선엽 장군(1920~2020)의 생전 인터뷰 모습.
― <건국전쟁>보다 먼저 이승만 재조명을 시작했네요.
“훨씬 전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 영화엔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본 적 있거나 함께 일해본 사람들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는 거예요.”
―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느라 자료도 많이 찾아보았겠네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자료는 이미 많이 나왔어요. 책도 많이 읽었죠.
근데 골치 아픈 게 있었어요. 서로 주장이 다른 경우요. 그리고 이게 확인이 안 돼요.
예를 들어 이승만 대통령이 한성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고종 폐위 운동에 가담해서 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그게 아니라 오해를 받아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다’고 해요.
이건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고종 폐위 운동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승만 대통령은 엉터리에 저항하는 성향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그런데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록을 보면누명을 써서 한성감옥에 갔다고 돼 있어요.
그래서 관련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명쾌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헷갈리는 부분도 생겼어요.”
“<서울의 봄> 재밌더라”
― 제작비는 얼마 들었습니까.
“비밀이에요. 아주 저예산입니다.”
― 제작비 출처도 공개하기 어려울까요.
“한 수백명의 후원자들이 5000원도 내고, 만원도 내고 10만원, 30만원, 이렇게 내서 모였어요.
단체에서도 후원을 하고,
한곳에서 대부분의 제작비를 댔다기보단 개미군단이 모여 제작비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 나와요.”
― 영화 <서울의 봄> 봤나요.
“봤어요.”
― 재밌었죠.
“재밌었어요.”
― 다음 작품엔 <서울의 봄>처럼 픽션을 넣어볼 생각이 있나요.
“여건이 되면요.
지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건 예산이 없어서 그렇게 찍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저도 원래는 극영화를 했어요.
그런데 극영화는 예산을 제대로 갖추고 해야 해서 기회가 되면 하고 싶죠.”
― 다큐멘터리만 하던 게 아니군요.
“네,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제작 여건에 맞춰서 한 거죠.”
― <건국전쟁> 흥행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희에게는 도움이 많이 됐죠.
대형 영화관에서 이렇게 많은 극장을 열어주는 것도 그 작품의 영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파 영화’도 메이저 극장에서 상영되고 흥행할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 영화계는 좌파적 성향이 짙다는데, 그런가요.
“네, 맞아요.”
― 어떤 일이 있었나요.
“나라에서 알게 모르게 좌파 영화를 많이 지원해 줘요.
제가 제주4·3사건에 관한 영화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4·3사건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나요?
헌법재판소에서 이 사건은
‘1948년5월10일 제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남로당이 방해하려고 일으킨 사건’이라고 판결했거든요?
제 영화도 당연히 그 정의에 따라 만들었죠.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이 영화를 독립영화로 인정해 주지 않았어요.
저예산 영화는 독립영화 인정을 받으면 혜택을 받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인정해 주지 않더라고요.”
― 다른 부분에서 결격 사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요. 4·3사건의 정의를 자꾸 바꾸려는 시도가 있어요.
그 내용은 ‘이승만과 군경(軍警)이 무고한 제주시민을 학살한 사건’이라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만든 영화는 독립영화로 인정을 받더라고요.
제 영화는 이의 신청을 했는데도 불합격됐고요.
독립영화로 인정한다는 건,
그 영화가 저예산 영화냐 상업영화냐를 판단하는 거지 정치성향을 보고 가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만든 이승만 영화도 독립영화로 신청했는데 똑같은 결과, 불인정이 나왔어요.
영화진흥위원회는 나랏돈, 그러니까 세금으로 영화지원도 해주는 곳이거든요.”
기독교·우파적 영화 찍어
― 지금까지 몇편의 영화를 만들었나요.
“다큐멘터리를 합하면 총 15편 정도입니다.”
권순도 감독의 영화는 기독교와 우파적 사상에 기초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그의 선택>(2007), <남도의 백합화>(2009), <한걸음>(2010), <약혼> (2012), <소녀의 기도>(2013),
<독도의 영웅들>(2015), <잔혹했던 1948년 탐라의 봄>(2022), <기적의 시작>(2023) 등이 있다.
― 지금껏 <기적의 시작>만큼 흥행한 작품은 없었죠.
“네, 맞습니다.”
― 그럼 생계는 어떻게 유지합니까.
“광고영상을 병행해서 찍었어요. 그렇게 하면 생활비는 나와요.”
― 제작과정에서 어려웠던 일이 있었나요.
“역사를 다루다 보니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 달라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 그래서요
“중요한 게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대부분 후원자들인데, 이거 빠졌다, 저거 빠졌다는 식으로 한마디씩 해요.
근데 이게 공통적인 내용이면 저도 중요한 게 빠졌다고 생각할 텐데 각자 하는 얘기가 달라요.
모든 이야기를 반영하다 보면 결국 짬뽕이 돼버리니까 다 들어드리진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가 거의 감독처럼 영화를 지휘하려는 분도 계셨고, 그래서 결국 사이가 멀어진 일도 있었어요.”
‘영화의 힘’
권순도 감독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호주 그리피스대학 영화제작학과를 졸업했다.
군복무 시절이었던 2001년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됐다. 이후 배낭여행으로 73개국을 다녔다.
― 영화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진 꿈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솔로몬제도에서 살았어요.
오세아니아 쪽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데요, 제가 살 때만 해도 원시적인 모습이었어요.
사람들이 꼬마인 저를 보고 두려워하더라고요.
왜 그런가 봤더니 그곳의 극장에서 틀어주는 영화가 철 지난 동양무술 영화인 거예요.
그곳 사람들이 저를 보고 동양인은 모두 무술을 잘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몇 년 뒤에 이 사람들 반응이 달라졌어요.
한동안 할리우드에서 동양 사람들을 ‘바보’ 또는 ‘악당’으로 묘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곳 사람들도 동양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영화의 힘을 느꼈죠.”
―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나요.
“6·25를 따로 떼어 다루고 싶어요.”
― 섭외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과거 작품을 만들 때 도움 주신 분들과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임동진 배우도 있고, 권오중 배우도 있어요.
권오중 배우는 무명일 때 카메오(짧은 출연)로 큰 도움을 줬어요.”
눈시울 붉힌 예비역 장성들
영화 ‘기적의 시작’ 포스터
<기적의 시작>이 CGV에서 개봉한 이후 영화관을 찾아갔다.
지난 2월23일 오전10시 CGV 용산 아이파크몰 2관에서 <기적의 시작>이 상영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머리가 하얗게 센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수수한 맥코트 차림의 나이 지긋한 남성이 한쪽 어깨에 배낭을 걸친 채 영화관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다가가서 감상평을 물었다.
별안간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망이 있다면 우리 아들, 딸들이 우리나라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어떻게 건국이 됐는지....”
노신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는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지낸 윤의철(60) 전 육군중장이었다.
그는 다른 예비역장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
― 영화는 어땠나요.
“너무 좋은 영화고, 다시 한번 이승만 대통령과 그 뒤를 이은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였어요.
두 분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번영한 나라에서 살 수가 없었죠.”
― 젊은 사람들도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인가요.
“네, 우리 후배세대들이 사실 좌경화된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것들을 볼 기회가 차단된 거죠.”
― <건국전쟁>은 보았나요.
“<건국전쟁>은 이제 보려고 하는데, 이걸 먼저 보게 됐어요. 볼 계획이에요.”
― 이 영화는 왜 보았나요.
“다 알고 있는 거지만, 다시 마음속에 새기려고 왔어요. 다시 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일행으로 온 또 다른 예비역 장성 또한
“저도 그렇고, 우리 예비역장군들 모두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나왔어요. 다들 같은 생각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