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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20-11-16 13:58 View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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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 칼럼] 어떻게 해야 우리 조국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펜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다상량인문학당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2020.11.16 11:22:49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反체제 작가’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그가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나라 밖에서 소련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폭로한 거의 최초의 소설이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솔제니친은 전쟁이 끝난 후 소련군 포병장교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편지 한통을 보냈다. 
스탈린의 분별력을 의심하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가 발각돼 솔제니친은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간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보냈고, 
여기에 3년간의 추방형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이 실제 복무했던 카자흐스탄 카라간다의 수용소를 바탕으로 작품 속 수용소 정경을 묘사했다고 한다. 
솔제니친은 1970년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워 바로 이웃 나라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덕분인지 흐루쇼프 정권에서 사실상 명예회복 조치를 해줬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港에 설치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동상.

그러나 ‘러시아의 良心’으로 불린 솔제니친의 폭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3년 유형지에서의 잔학상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가 서방세계에서 다시 화제가 됐다. 
결국 그는 반역죄로 독일로 추방되었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옮겨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고 예전에 받을 수 없었던 노벨상도 받았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솔제니친은 하버드대학교에서의 한 연설에서 
“공산주의는 아직도 치료할 수 없는 최악의 미치광이 병”이라며 공산주의를 비판했다. 
그런데 그는 서방사회에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1994년에 솔제니친은 조국 러시아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군함을 타고 온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내렸다. 
20년 만에 조국 땅을 다시 밟는, 그 벅찬 감동의 순간을 동상으로 만들어, 배에서 내린 바로 그 자리에 재현해 놓았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솔제니친 동상은 부둣가 낮은 곳에, 인민복을 입고 한 발만 땅에 디딘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다. 
광장 한가운데, 높은 단(壇) 위에 서 있는 다른 동상들에 비해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이 동상에는 솔제니친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담겨 있다. 
어느 웅장한 동상보다 더 생생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그는 모스크바 태생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낙마하는 바람에 걷는 데에 불편함이 많았던 그는 병역을 면제받았다. 
대신 제1차세계대전 때 우랄지방에 소재한 화학제품 관련 군수공장으로 징집됐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닥터 지바고》를 낳게 한 것이다.

《닥터 지바고》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소설이다. 
파스테르나크가 지식인으로서 받은 핍박과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랑, 그로 인한 갈등 등이 닥터 지바고의 삶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10년에 걸쳐 《닥터 지바고》를 완성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56년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출판사는 “10월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모독했다”며 출판을 거절했다. 
그래서 소련에서 책이 나오지 못했고, 해를 넘겨 이탈리아에서 처음 번역본이 발간됐다. 
이어 세계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덕에 1958년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의 배경으로 삼았던 러시아 페름 시가지.

그러나 소련 정부는 그를 맹렬히 비판했고 작가동맹은 그를 제명했다. 
결국 노벨상 수상을 포기했지만 그를 향한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담은 책은 모두 禁書가 됐고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그를 비판한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는 궁지에 몰렸다. 
추방 여론까지 일자 파스테르나크는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던 흐루쇼프에게 
“祖國 러시아를 떠나는 것은 나에게는 죽음과 같습니다. 
러시아는 나의 출생과 삶, 일로써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니 조국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하고 호소했다. 
추방은 간신히 免했지만 그는 좋은 세상을 못 보고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1988년 소련 정부는 뒤늦게 그를 사면했다. 
소련에서 그의 작품을 출간할 수 있게 됐고 그가 못 받은 노벨문학상 메달은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 그의 아들에게 전달됐다.

이들은 노벨상을 받으러 출국하면서, 귀국은 못 해도 그저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나라에서 편히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조국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솔제니친은 미국에서 2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다면 이미 미국 사람이 다 됐을 텐데, 
그는 왜 자신을 내쫓은 러시아로 돌아왔을까? 
파스테르나크는 모진 수모를 겪으면서도 왜 조국에 있기를 고집했을까? 
대체 조국이란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에게는 조국이 어떤 존재일까? 
우리도 이 작가들과 같은 처지였다면 이들과 같이 행동했을까?

우리 역사에는 조국을 통째로 외국에 바치려고 했던 기록이 있다. 
고려 말 원나라 간섭기 때의 일이다. 
유청신과 오잠이라는 고려대신들은, 고려에 省을 설치하고 원나라의 일개 지방으로 다스려주기를 청했다. 
이른바 ‘입성책동(立省策動)’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원나라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세조 쿠빌라이가 고려를 완전히 점령하지 않고 자신의 친딸을 고려로 보낸 것은 
‘신성한 계책’이었는데 그걸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고려는 원나라의 동쪽 울타리가 되어 원나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으니 왕조를 없앨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으로 편입하면 관리들의 봉급이나 군사 주둔비용 등을 써야 하는데 
실익 없는 일로 돈도 들이고 백성들의 원성을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 진짜 이유였다.

하긴, 실제로 자신의 조국을 다른 나라에 통째로 갖다 바친 적도 있다. 
신라 경순왕은 조국을 확실하게 고려에다가 갖다 바쳤다. 
그의 아들 마의태자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도 그것은 같은 민족 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좀 낫다. 
조선의 고종과 순종은 異민족이 조국을 취하는 것을 그저 방관하고만 있었다. 
싸우기는커녕 어떻게 선전포고 한번 안 해보고 나라를 빼앗겼을까?

통일신라 망국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경주 포석정. 
그러나 경애왕은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안전을 위해 제를 올리고 있었다고도 한다.

나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망하게 된다. 
나는 몇해 전 우리 역사 속 나라들이 어떻게 망했는지 그 이야기만을 엮어서 책으로 낸 적이 있다. 
나 나름대로 그 나라가 왜 망했는가를 연구하고 그 이유를 한 문장의 카피로 만들어 그 책에 실었다. 
내가 생각한, 우리 역사 속 나라들이 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때 대륙까지 진출했었으나 한반도 안으로 영토가 축소됐을 때 
옛땅 회복을 포기하고 안주한 백제의 망국 코드는 “이 정도면 됐겠지”였다. 
고구려의 경우는 “나 아니면 절대 안 돼”다. 
연개소문이 후계자를 제대로 키우지 않고 죽은 뒤 고구려가 바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통일신라는 “애쓴다고 되겠어? 그냥 포기할래”, 
후백제는 “반드시 원칙대로 할 필요 있나?”다. 
후백제 망국의 시작은 적장자 계승이라는 ‘원칙’을 어기면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려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하겠다. 
자신은 온갖 기행을 저지르면서 신하의 실수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공민왕 얘기다. 
사실 고려는 공민왕이 비명횡사하면서 끝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내 발등의 불만 끄면 돼”.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을 두었던 왕실과 양반계층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밖에도 元 간섭기와 임진왜란, 병자호란도 망국이나 다름없다고 보아, 여기에 포함했다. 
원 간섭기의 코드는 “내 잘못도 아닌데 나보고 어쩌라고”, 
임진왜란은 “당신이 뭐라든 난 무조건 반대야”, 
병자호란은 “네까짓 게 뭔데 감히!”이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 건국보다는 망국과정에 더 많은 교훈이 있을 것이다. 
친구도 진짜는 위기에 처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새 나라를 세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조국을 망하게 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 책에 실린 아홉가지 망국의 코드가 한꺼번에 다 닥치고 있는 것 같다.
“설마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어?”
“나랏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선 나 잘 먹고 살면 되는 거지.”
“전 정권이 부정을 저지르는 건 용서할 수 없지만 우리편이 도둑질하는 건 눈감아 줄 수 있어.”
“국민들은 몰라도 돼.”
“원칙? 그건 깨라고 있는 거 아냐?”
“네가 하는 말은 난 무조건 반대야. 설사 그것이 어제 내가 했던 말일지라도.”
“방위? 이 정도면 되었어.”

황인희 저(著) 《우리 역사 속 망국 이야기》 표지.(이미지=교보문고)

이는 21세기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들이다. 
심지어는 ‘입성책동’을 꾀하는 사람도 있어 보인다. 
국정운영의 상식이 깨지고 원칙이 무시당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거짓말이 부끄럽지 않고 물질적 이익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수군거림이나 손가락질 쯤은 눈감아버리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법도 권력을 가진 몇몇 사람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막을 길이 없다. 
아니, 그런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이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자신들도, 국민들도, 전혀 모르고 있다.

아, 어떻게 해야 우리 조국을 망국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우리 조국의 부끄럽지 않은 내일을 위해 나는 지금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대체 우리 조국이 내가, 우리가 목숨 걸고 위기에서 구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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