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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20-09-20 10:10 View1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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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友야담] 사랑인줄 알았건만 부정맥

[아무튼, 주말]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2020.09.19 03:00


카카오톡 사용법을 최근에야 익힌 팔순 老母로부터 메시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일본 노인요양원협회가 공모했다는 ‘하이쿠 우수작’ 꼬리표가 붙어 있더군요.


‘나는 연상이 이상형인데 더 이상 없어’ 

‘전철 개찰구 안 열려 봤더니 이건 진찰권’ 

‘LED 전구 내 남은 수명으론 쓰지도 못해’ 

‘도쿄올림픽 어디서 보려나 하늘인가 땅인가’ 

‘이 생의 미련 없다고 하지만, 지진에는 도망 가’ 

‘느낌 있는 글씨체라고 칭찬받은 수전증’ 

‘펜과 종이 찾는 도중에 쓸 문장 까먹어’ 

‘세시간 기다려 진찰받은 병명, 노환’ 

‘만보계 절반 이상이 물건 찾느라’ 

‘사랑인 줄 알았건만 부정맥’… 

일본어 17자에 담은 노년의 촌철살인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카톡을 받았을 때 이 이야기의 미국버전을 읽고 있었죠.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이었는데, 제목은 ‘6단어 회고록에 담은 감염병’. 

한 재기발랄한 작가가 코로나 시대 가장 힘들거나 즐거웠던 순간을 

6단어로 담아보자는 제안을 했더군요. 


‘Not a criminal, but running masked’(범인도 아닌데, 마스크 쓰고 달리네) 

‘I regret saying, I hate school’(학교 가기 싫다고 말했던 걸 후회합니다) 

'Hallway hike, bathtub swim, Pandora concert

(복도에서 하이킹, 욕조에서 수영, 그리고 콘서트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판도라로)… 


그중 제 마음을 크게 흔든 건 이 6단어. 

‘Avoiding death, but certainly not living’(안 죽기 위해서라지만, 이건 살아도 산 게 아니야).


글쓰기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감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치유와 화해입니다. 

점점 심해지는 ‘코로나 블루’. 어쩌면 이 짧은 글쓰기도 

‘슬기로운 코로나 생활’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마침 이번 주 복간돼 나온 ‘바쇼의 하이쿠’(민음사 刊)가 이런 생각을 부추겼는지도 모릅니다. 

영어와 일본어처럼, 최소한의 한국어와 여백으로 당신도 무한의 우주를 창조해보시기를.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일 수도 있겠지만, 부정맥인 줄 알았는데 사랑일 수도 있으니까요.


주말섹션 '아무튼, 주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웅비4해님의 댓글

웅비4해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하이쿠 はいく [俳句] 비구 ;
일본의 5·7·5의 3句 17音으로 되는 短型시(본디 連句의 첫 구절이 독립한 것).
바쇼 ばしょ [場所]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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