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문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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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생활상[편집]
그리스의 역사가에 따르면
스키타이에는 네가지로 구별되는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남아서 농사를 하는 농경 스키타이[27],
그에 찬동하는 상공 스키타이,
그 외의 기타 유목 스키타이,
그리고 이 중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로열 스키타이였다.
그 중 로열 스키타이를 위주로 한 집단이 승리를 거두고, 스키타이는 유목제국으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들이 남긴 자료나 물건, 외부의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스키타이인들은 금발에 튀어나온 광대뼈와 장신에 큰 체구를 지니고, 털이 많았던 편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및 마케도니아와 인접하여 그리스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무역을 하며 동쪽 알타이 지방의 황금이나 모피들을 헬레니즘 국가의 황금 세공 물건들과 교환했다.
그래서 스키타이의 황금문화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황금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유럽 흑해지방 드네르프강 유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들이 남긴 황금유물이 출토된다.
사카와 오르도스로 이어지는 황금문화의 원류격이다.
출토되는 황금 유물들의 수준이 무척 높은데,
이런 조형기술은 기원전 7세기부터 흑해에 정착한
보스포로스 왕국 같은 그리스계 국가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의 내몽골 일대 오르도스 고원에서 출토된 장신구.
기원전 3세기~기원전 1세기 사이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흉노연맹은 초창기에 스키타이계 유목민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고대 중국어로 기록된 흉노인명을 분석해본 결과
기원전 2세기까지는 흉노에서 인도-유럽어에서 기원한 이름을 즐겨 썼으며,
유전적으로도 흉노가 제국으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등의 이란계 유목민들이 내몽골 일대로 이주하여 혼혈화된 것이 확인된다.[28]
스키타이는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다소 잔인한 문화가 있었는데,
전쟁에서 잡은 포로의 가죽으로 망토 등을 만들었다.
승리자가 부자라면 포로의 두개골을 눈썹 윗쪽을 잘라내고 가공해 도금해서 술잔으로 사용했다.
헤로도토스가 스키타이를 방문하고, 이 물건들을 체험한 뒤 평가를 남겼는데
만져보면 매끈거리고 광택이 났다고 기록했다.
또한 뜻이 맞는 자들끼리 모여서 우정의 맹세를 할 때는
커다란 질그릇에 자신이 가진 무기를 집어넣고 술을 부은 뒤 거기에 서로의 피를 흘려 넣고 주문을 외우며,
그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자가 그것을 마시는 것이 의식의 절차였다고 한다.
스키타이인들 또한 제사를 지냈는데
이들은 모든 동물을 제물로 바쳤지만
오로지 돼지만은 불결한 생물이라고 터부시하여 제물로 바치지도 않았고, 돼지고기 역시 먹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후대의 유대인이나 이슬람의 관습이 생각나지만
이들과 스키타이의 문화적, 유전적 연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29]
천막 안에서 연기를 피우고 이 연기로 몸을 씻는 '연기욕'을 한다고 헤로도토스는 기록했는데
아마도 유목생활의 특성상 물이 귀했기 때문에 원시적인 사우나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헤로도토스의 증언처럼 실제 고고학적으로 연기욕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터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대마초의 잔여물이 발견되었기에
연기욕을 하는 과정에서 대마초를 넣으며 일종의 유희로도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서양 고대전쟁사 박물관》[30]의 저자인 John Warry에 따르면,
스키타이인들은 활시위를 당길 때 다른 유목민족들과 달리
중지와 검지를 이용하는 오늘날의 양궁식 사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리어 당시 그리스인들이 엄지와 검지로 활을 당겼다고 한다.
수직으로 세 손가락을 줄에 걸고 당기는 지중해 방식(Mediterranean draw),
위력이 약한 활을 쓰는 남미 원주민들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활줄을 꼬집듯이 당기는 핀치방식(Pinch draw),
그리고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쓰는 방식인 엄지에 깍지를 끼고 줄을 잡은 뒤
나머지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싸고 당기는 일명 썸 링 방식(Thumb ring) 등의 세 가지가 있다.[31]
특히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방식이 현대 올림픽의 양궁으로까지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도자기 그림이나 벽화를 보면
그리스의 활쏘기 방식은 정말로 핀치 내지는 썸 링 방식이었든 듯하다.
정작 고대 유목민인 스키타이인들은 썸 링을 안 썼다.
사족으로 이 차이점은 활의 위력과 관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활이 튼튼하지 않거나 줄 힘이 강하지 않으면 핀치 방식으로,
활을 무조건 강하게 멀리 쏴야 할 때는 썸 링으로 당긴다.
대표적으로 몽골 활은 활줄에 걸리는 무게가 무려 40kg대에 달하기 때문에,
썸 링 이외 다른 방법으로는 당기기도 힘들다.
거세마를 처음으로 만든 것도 스키타이인들이었다.
거세마는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으니 충동적인 성향이 덜하고,
기수의 통제가 용이하며 다른 말들이 근처에 있어도
주도권을 잡으려고 싸우거나 울지 않아서 무리를 지어 사육하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아주 먼 훗날의 스페인에서는 군마로 거세를 안 한 수말만 썼다는 것과 비교하면 대비된다.
6. 기타[편집]
야훼의 말이다. 북녘 땅 한끝에서 한 강대국이 일어나 쳐들어온다.
활과 창을 움켜잡은 잔인무도한 자들이 설레는 바다같이 고함지르며 말타고 달려온다.
수도 시온아, 너를 쳐부수려고 일제히 무장하고 나섰다.
<예레미야> 6:22-23 (《공동번역성서》)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서> 6장에는
북쪽에서 말을 탄 군대가 나타나 유다왕국을 약탈할 것이라는 내용이 써있는데,
일반적으론 당대의 패권국인 아시리아나 신바빌로니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를 스키타이로 비정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근세의 서유럽에서는
러시아를 부르는 멸칭으로 '스키타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러시아 철학가들은 이에 맞서
스키타이는 단순한 야만인이 아닌 고대부터 유서 깊은 문명을 가진 민족이라며
서구의 그리스·로마 중심 역사관에 대항하는 대안적 고대사로 내세웠다.
그리고 스키타이 특유의 강인함이 러시아 철학가들 사이에서 고평가를 받았다.
세월이 흘러 19세기에 민족주의 열풍을 탄 서양의 낭만주의 수정주의자들은
스키타이족을 잔인한 야만인에서 아리아인의 거칠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조상으로 변형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시 대영제국에서도 샤론 터너와 존 윌슨 같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스키타이족을 자신들의 민족인 앵글로색슨족의 조상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32]
대낫(큰낫)을 영어로 Scythe라고 하기 때문에
해당 단어가 스키타이와 "어원적인 유사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이도 있으나 별개의 어원이다.
scythia는 위에서 언급한 인도유럽조어 (s)kewd-에서 왔고,
scythe는 인도유럽조어 어근 sek-(자르다)에서 온 고대 영어 sīþe에서 왔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미사일 Skif가 스키타이에서 이름을 땄다.
7. 신화에서[편집]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에키드나와 헤라클레스의 자식인 스키테스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이걸 포함해서 기원에 대한 네개의 설을 소개했다.
영어 위키백과에 나온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트라키아의 왕 레소스가
주인공인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레소스》에서 레소스가 원래 예정보다 트로이 전쟁에 뒤늦게 참전했는데,
헥토르가 이를 질책하자 스키타이와의 전쟁 때문에 늦어졌다고 해명하는 대목이 있다.
8. 대중매체[편집]
만화 《히스토리에》에서는
주인공인 에우메네스의 출신으로 나오고, 스키타이의 왕인 아테아스가 잠깐 등장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의 아틸라 미션에서 스키타이 여전사(Scythian Wild Woman)들이 등장한다.
무슨 짓을 한 건지 길마다 시체들이 널려있으며, 만나면 일꾼을 달라고 한다.
일꾼을 일정수 갖다주면 일꾼은 나무하러 보내고 보수로 늑대와 자폭병을 준다.
결정판에서는 늑대와 자폭병 대신 만구다이 9개, 보강된 공성추 3개, 아나저 투석기 3개를 준다.
<로마: 토탈 워>에서
논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하며, 야만인 하위세력이다.
올팩션으로 수정해야만 플레이가 가능하다.
<토탈 워: 로마 리마스터드>에서는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바뀐다.
<토탈 워: 로마 2> 유목민 문화팩 DLC에서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토탈 워: 로마2/로얄 스키타이> 항목 참조,
<토탈워 트로이>에서 아마존 진영과 신화 모드의 아리마스포이들이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닛이다.
아마존들이 스키타이계라는 학설에 따라 스키타이식 복장을 하고 있다.
<문명 6>에서 토미리스 여왕을 지도자로 하는 스키타이 문명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에서 주인공 "앤디"가 스키타이 출신으로 나온다.
<워해머 판타지>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Warhammer)의 모티브가 되었다.
여기서는 고스포다르족과 쿠르간족의 조상격 민족으로, 오직 배경 설정에서만 등장한다.
오래 전, 한국의 토랜드에 '스키타이의 황금'이라는 텍스트 파일이 돌아다닌 일이 있었다.
아마 어느 작가가 소설을 썼다가 출판이 안 되어 그냥 웹 토랜드에 올린 모양인데,
스키타이족이 황금처럼 사용했다는 마약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다만 역사적 고증은 형편없고, 내용 자체도 그다지 좋지 못해서 출판이 안 된 이유를 짐작케 한다...
[1] 자세한 것은 사카족 참고.
[2] 저 멀리 동쪽의 중국지역에 혼자서 동떨어져 있는 것은 오르도스 문화인데,
스키타이-시베리아 양식의 예술품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의외로 스키타이의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났다.
[3] 크림 반도에 존재함
[4] 도브루자 지역에 존재함
[5] 관련 내용은 체르케스인 참조.
[6] 중앙아시아에 있던 사카의 일파는 남하하여 오늘날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 정착했는데
나중에 이곳에는 '사카스탄'[7]이란 이름이 붙기도 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간 사카인들, 혹은 이들과 관련된 집단이 북인도를 침략하여 인도-스키타이인이 되었다.
[7] 앞서 설명했던 '사카'와 '~의 땅'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어근 '스탄'이 붙어서 만들어진 용어로,
해석하자면 사카인들의 땅이라는 뜻이 된다.
[8] Szemerényi, 1980 & see bibliography.
[9] 영어 단어 shoot와 같은 어원이다.
[10] 기본적인 모음 교체가 이뤄지는 모음 음소 */e/와 */o/가 없어져서 만들어진 모음 교체
[11] '활을 쏘는 사람', 즉 궁수라는 뜻이다.
[12] 이 명칭은 고대 그리스어 '스쿠테스'와 '스쿠타이', 아카드어 "아스쿠자이"를 만들어냈으며,
여기서 이타과정을 한번 더 거쳐서 고대 아르메니아어 "스키우트"로 넘어갔다.
/d/에서 /l/로 바뀌는 후기 스키타이어 음성변화는 그리스어 단어 Skolotoi를 만들어냈으며,
이것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로열 스키타이인들의 자기 지칭 명칭인 스키타이어 *skula에서 온 것이다.
[13] "흑해 너머의 사는 스키타이"라는 뜻의
고대 페르시아어 Sakā tayaiy paradraya라는 용어도 있다.
[14] 엄밀히는 신아시리아 아카드어이다.
[15] 단수형
[16] 복수형
[17] 이쪽은 페르시아로부터 역수입된 경우다.
[18] 둘 다 인도유럽조어에서 '쏘다'(Shoot)를 뜻하는 어근 (s)kewd-와 관련 있으며,
이 어근에서 영어 shoot도 유래했다.
[19] 기원전 8세기에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에 겁을 먹은 메디아 왕국의 국왕이 대규모 침공을 단행했으나 격퇴당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명군인 다리우스 1세도 스키타이 정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유목민족 특유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청야전술을 펼치며 치고 빠지는 전술을 행하자,
페르시아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해야 했다.
[20] 오세트인이 스키타이의 후손인 만큼 그들의 언어인 오세트어 역시 스키타이어와 관련이 깊다는 설이 제기되었는데,
실제로 오세트어가 스키타이어의 직계 후손임이 밝혀진 바 있다.
[21] 細袴: 가는 바지
[22] 선비족 모용부가 화북에서 건국한 나라.
[23] 흉노의 멸망 이후 상당수는 서쪽으로 이주하였지만
현지에 남은 부족들은 각지에서 이주한 여러 인종들과 지속적으로 혼혈하였고,
13세기 몽골제국이 성립하면서 다시 동북아시아계 유전자들이 대거 유입되자
서유라시아인의 유전자가 대거 희석되어
지금의 동북아시아 형질이 강한 현대 몽골인 유전집단이 되었다.
[24] 내물은 미추의 조카이자 사위이다.(미추의 동생 말구의 아들)
현대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서는 내물 재위 중기(370~380년대) 이전의 연대는 전부 인상된 것이 정설이기 때문에
미추의 실제 재위기간은 4세기 중반일 가능성이 높다.
[25] 당장 신라왕조부터 기원이 다른 세 씨족(박씨, 석씨, 김씨)이 통혼을 통해 하나의 姓으로 합쳐 만든 왕조이다.
석씨, 김씨 왕조가 신라의 건국자인 혁거세 거서간을 모계조상이라는 이유로 神宮에서 건국자로 모신 것과,
氏가 달라도 부계조상이 다르면 새로 환산하는 동시대 중국과 달리 왕의 대수를 다 합쳐서 센 것이 대표적이다.
[26] 고구려 주몽계-유리명왕계와 백제 초고왕계-고이왕계는 부계조상을 공유하는 먼 친족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다 부여 解氏의 분가로 추정된다) 이 사례에 들어가지 않는다.
[27] 일설에 의하면 이 농경 스키타이 주민들이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주류민족인 슬라브족이라고 한다.
[28] 다만 흉노의 지배층은 동북아시아계가 94%이기 때문에
피지배층과 달리 문화적 영향력과 별개로 혼혈은 꺼린 듯하다.
[29] 사실 유목민들은 공통적으로 돼지를 먹지 않는 관습이 있다.
키우는 데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드는 반면,
고기를 제외하면 유용한 자원을 얻을 수도 없고
노동력이나 이동수단으로 써먹기도 힘든 가성비가 심히 떨어지는 가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을 매우 많이 먹기 때문에 사막이나 건조한 지역에서는 정주민도 선호하지 않는다.
[30] 한국어 번역본
[31] 국궁의 활쏘기 방식도 썸 링이다.
[32] 하지만 앵글로색슨족이 속한 게르만족과 스키타이족이 속한 이란족이
같은 인도유럽계 민족이라고 해도 촌수가 너무 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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