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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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정국에 미군정이 기반조사를 하니
문자해독율은 18%, 즉 문맹율이 82%였다
공산주의를 선호가 75%, 민주주의를 선호가 15%, 나머지 10%는 모르겠다 였다
'농지를 무상몰수하여 무상배분하겠다'는 북조선노동당 선전에 속은 것이다
'누구에게?' "집단영농조합에게" 라는 6하원칙 생략의 함정에 기만당한 것이다
농민의 2/3 이상이 소작농으로, 국민의 얼반이 노비의 후손이였기 때문이였다
아울러 정치용어 사회/민주주의와 경제용어 공산/자본주의의 구별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승만은 3년치 수확량을 기준으로 지주에서 소작농에게 유상배분하는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1950년 6.25사변에 징집된 청년의 문자해독율은 42%, 즉 문맹율이 58%였다, 그만큼 무지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한달 훈련 후 소대장으로 전투일선 지휘관으로 투입하던 시절이였다
국민 얼반이 1948년 남북한 분단 후, 70여년 후의 경제상황 차이가 어떤지 보고도 모른다?
나와 너의 구분보다 "우리"로 권리책임 회피를 좋아하는 민족성에도 문제가 있다
남에게 씨도배도 구별 없이 우리엄마 우리아버지 우리집이라 소개한다
술잔마저 공동소유로, 마신 후 잔을 되돌리면서 권하는 술자리문화도 있었다
당연히 반찬은 찌게부터 같은 한 그릇으로 공동 취식이다, 지금은 앞접시가 기본이지만
공산은 공동재산인데 실은 숫가락 젓가락이 공동이 아니고 수익을 내는 밑천이 공산이다
조선왕조 시대에 전 백성의 얼반이 노비였으니 공산의 사고방식에 당연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민족"이란 일본에서 만든 신조어이며, 지금은 같은 국체 국가의 국민으로 변했다
북조선인민과 한국의 친중종북좌익은 '우리민족'이 아니다, 같은 언어만 사용할 뿐이다
북조선과 한국의 종북좌익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비하하며
지금까지 '이승만 죽이기'가 계속되어 기념관도 없고 화폐에 사진 올리는 것도 막았고
그 반대급부로 기회주의자 김구와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띄우기에 급급했고
1948년 5.10총선을 방해할 목적으로, 제주4.3을 여천군사반란을 일어켰으며,
1950년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하게 했던 UN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증오했다
정계 법조계 교육계 역사학계 예술계 노동계 언론계, 국민까지 좌익이 절반이다
무식한 국민은 역사, 사실, 선전선동을 구분 못 해 좌익의 구호에 떠밀려 다닌다
파주 효선미선 교통사고에 그랬고 광우병파동에 그랬고 세월호사고에도 그랬다
국세로 보상하자는 이태원사고 특별법에도 시비구분이 안되어 어리둥절하고 있다
세금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무관심한 근로소득세 안 내는 근로자가 35%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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