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 -3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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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근현대
1893년 술탄 압뒬하미트 2세는 가자의 우물들을 복구해주었고,
같은해 가자에는 알리 칼릴 샤와 의장 하의 첫 지역 의회가 설립되었다.
1906년 그의 아들 사이드 앗 샤와는 오스만 당국에 의해 가자의 첫 근대적인 시장으로 임명되었다.
팔레스타인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가자는 경제 & 정치적으로 샤와 / 후세이니 / 수라니와 같은 몇몇 강력한 가문들의 수중에 있었다.
1903년과 1914년 도시는 파괴적인 지진을 겪었다.
1차세계대전 당시 이집트의 영국군은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기 위해 가자를 공격하였으나
2만 오스만-독일 군의 우주방어에 번번히 격퇴되었다.
1917년 봄의 1, 2차 전투 후에 가자-베르셰바 전선이 동쪽에서 뚫리며
병력이 5천으로 줄어든 오스만 군은 3차전투 중인 11월7일 가자에서 철수하였다.
이렇듯 영국군은 5천에 달하는 많은 희생을 치르며 3번의 시도 끝에야 가자를 점령하고
예루살렘 전여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의 포격으로 가자 시가지는 크게 파괴되었으며,
대사원과 전통시장 등 여러 중세 건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영국의 위임통치기에 더 많은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되며 아랍-유대 갈등이 폭발하였다.
1929년 팔레스타인 봉기 시에 가자의 유대인 구역은 파괴되었고, 50여가구의 유대인들 중 대부분이 떠나갔다.
1930년대와 40년대 가자는 리말, 제이툰 등 구역들의 신설로 확장되었고
봉기 중 파괴된 지역들이 국제단체 및 선교단의 자금지원으로 복구되었다.
가자는 1948년 제1차중동전쟁 당시 팔레스타인의 아랍계 정부인 범 팔레스타인 정부의 소재지이었다.[15]
이후 범 팔레스타인 정부는 사실상 이집트의 괴뢰국으로 전락하였다.
1959년부터는 이집트가 범 팔레스타인 정부를 해체하고 아예 직접 지배하기도 하였다.
제3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1967년부터 이스라엘이 지배하였고 봉기 끝에 1993년 자치가 승인되었다.
1980년대초 이래, 가자지구에도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되어 한때는 21개나 되었지만,
2004년에 아리엘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의 정착촌을 모두 철수시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고,
그 이듬해 유대인 정착민 8천여명을 이스라엘로 모두 철수시켰다.
그러나 지금도 이스라엘의 통제 때문에 장벽이 설치되고 바닷길이 막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가자지구에는 물과 지원을 포함한 어떠한 물자도 못들어간다.[16]
이집트 역시 테러분자 단속과 하마스 견제를 이유로 국경을 열어주지 않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17]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또한 재정난과 하마스와의 갈등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을 못하는 처지다.
이때문에 가자지구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인세지옥이라 할만큼 매우 열악해 국제기구들의 원조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특히 2010년5월 튀르키예 국적의 국제구호선이 가자 지구로 들어가려는 것을 이스라엘군이 공격했던 사건은,
이 과정에서 튀르키예인 8명과 미국인 1명이 사망하면서
튀르키예가 이스라엘과 단교하고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워낙에 튀르키예와의 관계가 이스라엘에 중요하기 때문에 사과하고 관계회복을 꾀하고 있지만,
튀르키예에서 반이스라엘 감정이 심하고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부터가 반이스라엘 성향이기 때문에
튀르키예가 이스라엘을 보는 감정은 매우 좋지 않다.
레바논이나 프랑스 등의 구호선들도 접근할 때마다
이어지는 구호선 나포와 공격, 국제인권단체 운동가 추방 등은 2010년대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UN도 예외가 아니라서 가자지구의 UN 시설을 파괴하고 구호물품 트럭들도 박살내서
UN이 가자지구 구호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UN에서 심한 비난을 받았으나 미국의 비호로 무사했다.
4. 현황
가자지구는 하마스에 대한 지지도가 높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마스가 청렴하거나 통치능력이 유능해서는 아니다.
이스라엘의 봉쇄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이집트와의 경제교류도 활발하지 못해서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땅굴을 통한 밀무역망과 국제원조기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비참한 현실을 묵과하지 않은 UN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45억$를 퍼붓고
카타르 단독으로 13억$가 더 원조되었다.[18]
이 돈은 가자지구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사용하는 대신
하마스 고위간부들의 비밀계좌에 사실상 전액이 빼돌려졌다.#
또한 이란이나 아프간급 수준은 아니더라도
간간히 히잡착용을 강제하려 들거나 학교내 두발단속을 하려드는 등 꼰대기질을 발휘할 때도 있기도 하고,
세금도 비교적 높다.
그래서 가자주민들 사이에서도 하마스에 대한 불만은 많아서 하마스를 무능하다며 욕하기도 하고
2023년7~8월에는 전기와 가스 공급을 제대로 못하다면서 하마스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19]
다만 파타가 무능하게 당해주는 호구 이미지가 위낙에 강하고,
하마스쪽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꾸준히 시전하곤 하기 때문에
파타보다는 하마스가 더 낫다고 생각해서 하마스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이다.[20]
즉, 가자주민 입장에서는 하마스가 예뻐서가 아니라,
어차피 총질 당하고 봉쇄 당하는 것은 똑같으니
차라리 사이다성 공격을 해주기라도 하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여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신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하며 통치력까지 행사하고 있다.[21]
사실 이렇게 된 이유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파타를 제치고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파타에서 하마스의 선거승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선거결과에 불복했고,[22]
이스라엘 역시 하마스의 선거 승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무효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파타가 서안지구를 차지하고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차지하는 이중권력 상태가 되었고,
이스라엘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아니라 파타 주도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국제적으로 인정하면서
하마스는 정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다.[23]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정착촌을 철수시키고[24]
완전한 봉쇄와 소거로 가닥을 잡으면서 이후 이스라엘과 군사적인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2008년12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1차 가자전쟁),
2012년11월 가자지구 폭격(2차 가자전쟁),
2014년7월 가자지구 분쟁(3차 가자 전쟁)이 일어났다.
지속적인 국지전과 이스라엘의 폭격과 하마스의 맞대응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가자지구엔 하마스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무장단체들이 10여개나 넘게 있다.
이 무장단체들은 하마스와 대립하고 견제하면서도
반유대주의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으로 서로 협력은 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쳐들어올 때는 같이 협력해서 싸운다.
이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항상 가자지구를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나이반도 일대의 다에쉬들이 가자지구에 확장을 시도하면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도 군사적 협력을 맺었다.[25]
다에쉬들은 하마스의 민족주의 성향을 문제 삼으며[26]
하마스 역시 전복시켜야 마땅한 사탄의 세속정부로 규정하고 있으며 하마스와 적대적인 관계이다.
UN무역개발회의가 2015년9월1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2020년에는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 물론 이게 모두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무장단체들을 말려 죽이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의도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시 수자원 고갈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하레디 인구만 폭증하는 문제로
미래가 마냥 장밋빛은 아니라서 가자지구를 함부로 할 여력은 안 되는게 함정.[27]
최근에는 이스라엘도 가자 지구와의 대립이 지겨워서
하마스가 운영하는 특정 해안지대까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갈 수 있도록 어획 구간을 확장하는 회유책을 썼다.[28]
하지만 이 회유책도 잠시에 불과하여 2016년5월에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을 깨고 다시 공습을 시작했다.
탱크와 포병을 동원한 포격도 시작되어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무장세력들이 단합해
이스라엘군과 교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2014년에 벌어진 가자전쟁과 달리 대규모 전투는 벌어지지는 않고 있다.
2017년에는 하마스 지휘관 마젠 파크하가 암살되자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며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간의 국경을 무기한 폐쇄하면서
긴장이 다시 감돌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계속된 가자지구 봉쇄로 가자 지구의 삶이 날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자치정부 역시 하마스와의 갈등으로 가자지구에 해주던 지원을 축소하겠다고 하여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은 이 상태가 지속되면 다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11월18일에 하마스 측이 자치정부에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넘겨주면서
이집트에서 그동안 해왔던 봉쇄를 해제하고 가자지구의 국경을 개방하였다.#
2019년11월에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22명을 사망하였다.#
20명은 무장된 사람이고, 2명은 시민이었다.
11월12일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무장단체 이슬람 지하드의 고위지휘관을 공습으로 사살하자
이슬람 지하드가 보복으로 로켓포 150발을 쏘았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인 여러명이 부상당했으며 텔아비브에서는 경보 사이렌이 울려 휴교령이 내렸다.#
2020년2월1일에도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공습 위해 가자 지구를 공격했다.#
24일에는 2일 연속 충돌 중이다.#
2021년2월9일에 이집트 정부는 파타와 하마스간의 화해를 주선하기 위해 가자지구 국경을 개방했다.#
2021년5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9일에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에서 인화물질이 있는 풍선들을 보낸것에 대한 조치로
가자지구의 어업구역을 폐쇄했다.#
10일부터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해 197명이 숨지고 1,235명이 부상했다.#
2021년6월22일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산업용 원자재 반입을 금지시켰다.
다만 식량과 연료, 의약품 반입은 허용했고 가자지구에서 생산된 농산품과 섬유 등의 수출도 허용했다.
이에 하마스는 반발하며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통제를 강화하면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7월2일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이스라엘로 방화용 풍선폭탄을 보낸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의 하마스 무기제조 시설을 공습했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스라엘인들 대다수는 가자지구 주민과 하마스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하다.
가자지구 주민들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대놓고 한국사람 앞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은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얘기를 오래 해보면 은연 중에 경멸감, 공포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나온다.[29]
2022년8월5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공습해 10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3년7월14일부터 가자지구에 여행금지가 발령되었다.
2023년10월7일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생했다.
현재 북부 시가지는 대부분 이스라엘군에 의해 점령 및 초토화되었고
남부의 칸 유니스도 이스라엘군에 의해 공격당하면서 함락 직전인 상황이다.
5. 가자지구 분쟁
2012년11월 가자지구 폭격
2014년7월 가자지구 분쟁
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사건
2022년8월 가자지구 공습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6. 둘러보기
[1] 분위기는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와 비슷한데, 요르단과 비슷한 서안지구, 동예루살렘과는 대조적이다.
이 지역은 건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허구한날 폭탄이 터지기 때문이다.
[2] 북한과 중국에서는 가자지대(地帶)라고 한다.
地溝는 둘 이상의 단층 사이에 위치한 땅을 일컫는 지질학 용어다.
[3] 레반트 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보면
평균적으로 1~2% 정도, 최소 0.1% 및 최대 10%의 기독교도 비율이 나오기 마련이다.
[4] 고대 가자의 그리스 주민들은 아폴로를 도시의 주신으로 삼았다.
[5] 절망한 몇몇 주민들은
노예가 되지 않도록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약탈을 막기 위해 집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6]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사원과 마찬가지로 다신교사원, 기독교성당, 이슬람사원의 과정을 거쳤다.
[7] 이는 아직 이슬람 군대가 공성전에 미숙했던 탓도 있다
[8] 다만 그 영토들은 이스마일 수중에 있지 않았기에 명목상에 그쳤다.
[9] 600 중 400은 베두인 부대. 유수프의 군대가 승기를 잡았으나
바이바르스 휘하 70여 정예 병력이 끝까지 버티고 반격해 승리함
[10] 1360년 아미르 시하브 앗 딘 아흐마드 빈 아자피르 앗 다파르 다므르가 건설하였다.
[11] 현지 전설에 의하면
술탄이 되기 전 맘루크로써 팔레스타인을 떠돌던 바이바르스가
가자에서 현지 여성과 결혼하고 세운 신혼집이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는 1층 건물이었으나 오스만 제국기에 2층으로 증축된 것.
[12] 성벽이 없던 가자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성채라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폴레옹 요새로 불린다.
[13] 1191년 살라딘의 파괴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음
[14] 메흐메트 알리의 주요 수익원이었는데, 그해 이집트의 생산량이 적었다
[15]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전쟁 당시 요르단이 자국 영토로 합병했기 때문이다.
당시 요르단 국왕 압둘라 1세는 팔레스타인을 자국 영토로 보았지 독립국으로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16] 사실 그 이전에도 이스라엘에서 가자를 봉쇄했고
물자가 들어간다해도 유대인 정착촌에만 갔지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제대로 가지도 않았다.
전기만 해도 봉쇄 이전에 유대인 정착촌은 항상 전기가 들어왔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루에 8시간밖에 못쓸만큼 부족했다.
[17] 현지인에게는 40일에 3~5일 꼴로 불규칙하게 열어주며 이스라엘처럼 물자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이집트와의 무역길도 막막해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비밀 땅굴을 파서 그 통로로 밀무역을 하는 처지다.
게다가 이집트 국경 너머 시나이 반도는 IS의 활동으로 인해 이집트정부가 토벌에 나서면서
시나이 반도의 무장단체들과 이집트 군경과의 교전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어 가자지구보다 더 위험한 지역이며,
이로 인해 국경 개방일수도 줄어들고 있다.
이스라엘인을 제외한 외국인은 상시 출입이 가능하지만
이집트-팔레스타인 양측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으며
2000년 이후부터 관광목적으로는 허가가 나지 않는다.
다만 이집트는 같은 아랍권이라 이스라엘측보다는 통과가 쉽다보니 구호단체나 기자들은 이곳으로 들어간다.
[18] 얼마나 큰 돈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비교하자면
서구제 무기로 잘 무장하고 훈련도 잘 되어있다는 평가를 받는 요르단의 요르단군 한해 예산이 26억$다.
왠만한 중동 정규군의 한해 예산을 한참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지원된 것.
공평하게 다른 UN 민간원조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25만명이 아사한 2011년 동아프리카 대기근 대응에 사용된 구호비는 13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9] 이것이 2023년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기도 했다.
안 그래도 아랍권 국가 상당수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으려고 했던데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은 이어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민심 이반까지 겹치니
하마스 측 입장에서도 가자 주민들의 민심을 달래고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긴장관계를 강화해야 될 이유가 있었고, 이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전형적인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려 결속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다만 재미있게도 하마스 지도부는
민심수습용으로 전쟁을 일으키라는 생각을 했어도 작전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았고,
전투작전은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PIJ) 등의 가자지구 하부조직들이 주로 짜냈다.
굳이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외국인까지 인질로 삼고 살해하는 등
무슨 은행강도나 ISIS, 탈레반 같은 모습을 선보인것도
실전에 있어서 베테랑이라도
정무감각과 외교감각은 전무한(...) 하부조직들이 짰기 때문에 일이 터진 결과라는것이다.(...)
[20] 하마스의 부정부패가 정도가 너무 심해서
팔레스타인 대상 여론조사결과 전쟁이 벌어진 2023년에도
가자지구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전쟁이 아니라 부패로 꼽았다.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마스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21] 물론 지상만 통치력을 상실했지 하늘과 바다는 여전히 이스라엘이 지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한 원인은,
이스라엘의 적은 인구와 장기전을 할 수 없는 빈약한 경제력과 동원력,
그리고 저 위의 사진처럼 공격하는 사람 토나오게 만들 정도로 빽빽하게 건설된 시가지들 때문이다.
[22] 득표율 자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지역구 선거에서는 하마스가 대승을 거두면서 하마스가 과반을 넘는 의석을 챙겼다.
[23] 이때 이후로 팔레스타인에서 국회의원 선거는 무한 연기되었고, 지방선거만 치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24] 서안지구는 그대로 있다.
[25] 물론 IS만 해결되면 다시 총구를 겨눌 사이다.
[26] 이는 다에시가 모든 이슬람 교도를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키는 것이기에 민족주의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27] 그러다보니 가자지구 현황을 발표한 이스라엘 군정보부 대표도
가자지구가 망해도 이스라엘한테 득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얘기할 정도다.
[28] 하지만 그래봤자 6해리(약 11㎞)밖에 안될 정도로 좁다.
게다가 저 해역을 벗어나기만 하면 가차없이 총격을 가한다.
최근엔 다시 취소하고 3해리로 축소시켰다.
그러다보니 가자지구의 어부들은
이스라엘 해군의 감시를 피해서 조업을 하는 것이 흔하며 들켜서 사살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9] 다만 해외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훨씬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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