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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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392] 사과와 용서
백영옥 소설가 2025.02.07. 23:51
여행을 갈 때 먼저 외우는 말이 있다.
‘스미마셍’과 ‘익스큐즈 미’ 같은 단어이다.
내가 그 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라 실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사과할 일이 생기고 사과받을 일도 생긴다.
좋은 사과는 큰 일을 작은 일로 만들지만 나쁜 사과는 작은 일도 크게 만든다.
좋은 사과의 예로 보통 3A를 강조한다.
우선 상대의 감정에 동의(Agree)하고,
진심 어린 사과(Apologize) 후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동(Action)을 뜻한다.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은 사과에 대해
“우선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미안하다는 말 뒤에 ‘하지만’ 같은 단어를 절대 붙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2학년인 도모꼬가 1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서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동화 작가 권정생의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이다.
평생 시골 교회의 종지기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동화를 써서 모은 자산 10억원을 어린이들에게 남긴 선생도
끝내 사과받지 못한 어린 날의 상처는 가슴에 남았다.
사과가 어려운 이들에겐 시인 박준의 글을 전한다.
그는 “아무리 짧은 분량이라도 사과와 용서와 화해의 글이라면
내게는 모두 편지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하며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 편지라는 형식이 건네는 특유의 온도 때문이다.
이처럼 사과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
사과 다음에 놓여야 할 말은 용서다.
용서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제하지만,
꼭 사과를 받아야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용서는 상대보다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다.
설혹 상처가 잊히더라도 흉터는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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