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정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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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들어온 "왜정시대"란 말이
30여년 전부터 생긴 "일제강점시대"란 말보다 옳은 표현이라고 본다
조선반도는 일본에 강제점령한 것이 아닌, 조선조정이 매도했다고 본다
조선황실은 조선총독의 년봉 수100배이상을 매년 받는 것에 합의하고 일본에 합볍되었다
물론 각료급 대신들과 황실 친족들과 지방유생들까지도 그 위로금을 받았다
'위안부'란 처녀들이 왜정의 군경에 의해 집에서 길에서 강제납치된 것은 아니었다
가족, 친척, 동네사람들이 멀뚱히 처다보는 가운데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간 것이었다
'강제징용공'이라는 탄광부도 1943년까지는 선발경쟁이 치열했고, "해외취업"이었다
그 위안부와 징용공이 1945년8월 일본의 항복으로 어수선한 국가/사회 질서 중에서
징용공은 약 1개월분의 급여를 못 받았거나 위안부는 군표를 환전하지 못 했던 것이다
고려/조선이 명/청에 바치는 조공녀가 훨씬 더 많았고 병자호란 때에는 수십만명이었다
6.25사변 후에도 미군부대 국군부대 주위와 시내에도 생계수단의 위안부는 엄청 많았다
20여년 전까지는 공공연했다가 법적 금지로 일부 노래방도우미 정도로 암약하고 있다
왜정시대에 들어, 대농의 대지주급 부잣집 아들들이 대거 일본으로 유학을 갔었고
일본은 과학부에는 유학금지, 문학예술부에만 입학을 허락했다
(한편, 과학부에 해당하는 '동경상선대학', '고베상선대학' 입학은 허락했었다
의학부분은 오히려 유학파가 아닌, "세브란스의전"으로 국내에서 공부했었다)
그들이 대부분이 공산사회주의 좌익사상에 빠저들었다
왕조가 사라졌고, 우매한 백성을 지배할 새로운 사회적인 계급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북조선과 한국의 노조, 선관위, 조x이 증명하듯, 그 사회적 계급의 특징이 "세습"이다
그 계급과 세습은 일반백성이 무식하고 가난해야 가능하고 쉬운 것이었다
여자와 어린애는 '부국강병'으로 보호되는 것인데 전임 정부는 그 반대의 정책을 폈다
종북친중 세력의 이념문제의 반대 부산물이 지금의 반일반미운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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