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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글쓰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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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23-10-19 11:12 View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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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글쓰기 

교수 이상원 ② '써야 하는 글' 대신 '쓰고 싶은 글'을...

조선일보 topclass 2023년10월호 최선희 객원기자


읽기를 강조합니다. 요즘은 글이 넘쳐나잖아요.

글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에요.

꼼꼼히 읽다 보면 글의 장점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다음에 나도 이런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가상 글쓰기 연습이 되죠.


학생들 글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정말 많아요. 제가 한 학기에 보통 서너 개 강의를 하거든요. 

한 강의실에서만 75편의 글이 나오니 한 해 동안 접하는 양이 엄청나죠. 

그만큼 간접경험을 하는 셈이라,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고 편협한 시각을 반성할 때도 있어요. 

특히 글 주제가 자유롭다 보니 연애, 가족, 저마다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해요. 

요즘 젊은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게 되고, 

오래 수업을 하다 보니 시대에 따른 변화도 느껴집니다.” 


어떤 변화가 있나요.


“지금은 에세이 1, 에세이 2로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감상 에세이, 주제 에세이로 나뉘어 있었어요. 

학생들에게 감상 에세이를 쓰게 했을 때, 저는 당연히 독서감상문이 가장 많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책을 감상 에세이 소재로 삼은 학생은 극히 적었어요. 

기성세대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나 웹툰, 일본만화 시리즈 등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으며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생들 태도는 무척 진지해요. 

‘나를 키운 건 8할이 문학이었다’는 학생도 있는 반면, 

‘나를 키운 건 온라인 게임이나 만화’라는 학생도 있어요. 

글을 매개로 보게 되는 다양성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대학에서 글쓰기는 논문 형식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생이 과제로 쓰는 글은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논리를 세워 주장을 펼치는 논문형식이 대부분이죠. 

대학의 글쓰기 과정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생들이 수행해야 하는 글쓰기를 미리 연습시키고, 

요즘 대학생에게 부족한 논리적 사고를 글쓰기를 통해 강화하자는 차원에서요. 

저보다 앞서 세 학기를 강의했던 전임 선생님의 수업도 

한 학기 동안 소논문 한 편을 완성하는 방식이었어요.”


전형적인 교수법을 벗어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논문이라는 것이 쓰고 싶은 글이라기보다 써야 하는 글로 여겨진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어요. 

학생들이 그동안 논술, 주관식 답안처럼 

‘써야 하는 글’을 끊임없이 쓰면서 글을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의무나 평가의 척도로 인식하게 될까 봐 안타깝기도 했고요. 

저는 논문형식이 대학 글쓰기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대학의 글쓰기가 모두 논문 형식으로 수렴될 필요는 없죠. 

자기가 생각하는 것,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기는 일에 재미를 붙인다면 

결국 논문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글을 잘 쓰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요.


“저는 읽기를 강조합니다. 

요즘은 글이 넘쳐나잖아요. 글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에요. 

꼼꼼히 읽다 보면 글의 장점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다음엔 나도 이런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읽으면 가상 글쓰기 연습이 되죠. 

제가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 글을 다 읽고 답글을 달게 하는 ‘고통’을 주는 건 

그게 결국 내 글을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에요.”  


좋은 글의 기준이 있다면요.


“저는 모든 글이 다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자세히 보면 글마다 좋은 구석이 있어요. 

완성도는 떨어지더라도 착상이 좋은 글, 

유머가 넘치는 즐거운 글, 

자기 경험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감동을 주는 글 등 

각 면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처럼 글도 저마다 빛나는 구석이 있어요. 

글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이상원 교수는 대학을 오래 다녔다.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 있던 러시아어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 노어노문학과로 학사 편입했다. 

졸업 후에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러시아문학이 아닌 영어권 작품을 주로 번역한다. 


그가 모교에 오게 된 것은 통번역학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다. 

우연히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좌 강의교수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을 결심했다. 

그는 “그동안 통·번역학을 공부하며 많은 글을 읽었고, 

번역작업을 하며 쓰기도 많이 했으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감사하게 자리를 얻은 후 충분한 자율권을 부여받아 

내가 원하는 대로 수업을 설계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글의 힘을, 읽기와 쓰기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였다. 


큰 키에 시원시원한 말투, 유쾌한 미소가 인상적인 이상원 교수는 

글을 매개로 학생들과 만나는 일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교수와 학생이 격의 없이 소통하고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경험, 

그의 수업이 인기 있는 진짜 이유다.


이상원 교수가 들려주는 ‘글쓰기 가이드’ 


1.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 

글쓰기라고 해서 엄청난 무언가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매일 글을 쓴다. 

휴대전화로 무수히 주고받는 메시지, 생일축하 카드, 온라인 공간에서 나누는 댓글 등. 

다만 나를 독자로 삼아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써온 글과는 조금 다르다. 

이렇게 쓰면 읽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을까, 

상대가 내 글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일단 내려놓아도 된다. 

나를 독자로 삼아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는 곧 자신과 나누는 대화가 된다. 

많은 경우 익숙하지 않은 대화다. 

우리는 실상 스스로를 잘 모른다. 

글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거는 작업은 지금까지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줄 것이다.  


2. 자투리 시간 활용하기 

글쓰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좋다. 

자투리 시간에는 문장을 쓰는 게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한다. 

실제로 글쓰기에는 글을 쓰는 시간보다 계획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빈 종이나 빈 모니터를 마주한 상태에서 글이 술술 풀려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3. 메모하는 습관 들이기 

자투리 시간에 생각할 때는 메모를 하는 것이 좋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식당이나 카페에서 무언가 주문하고 기다릴 때, 

하루 일정 곳곳에 끼어드는 빈 시간에 글감을 생각하고 메모하는 것이다. 

멋진 메모지도 필요 없다. 

나는 이면지 한 장을 달랑 접어 가방이나 지갑에 넣어두고 사용한다. 

종이 한 장이 꽉 차면 컴퓨터 파일로 내용을 옮겨 인쇄하고 다시 들고 다니며 메모한다. 

이렇게 사전작업이 끝나면 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에 다 끝낼 필요도 없다. 

앉아서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다시 그 글을 들고 다니며 메모하자. 

이런 과정을 거치면 글쓰기의 힘겨움이 훨씬 줄어들고 효율성은 높아진다. 


4. 내 관심사에서 시작하기 

내가 쓰려는 글이 너무 사소하고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가 아닐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너무 사소한 주제란 없다. 

‘휴일에 집에서 뭐 했냐’고 하는데 ‘쉬었다’고 하면 사소하다. 

그런데 집에서 끼니를 어떻게 준비해 무엇으로 해결했는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어떤 글과 동영상을 봤는지, 

그래서 새롭게 접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종일 머물던 내 집은 어떤 모습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와 같이 

이야기로 풀어내면 전혀 사소하지 않다.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글쓴이만의 시간과 경험이 드러나는 글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관심보다 글쓴이 자신의 관심이 훨씬 중요하다. 

글쓴이가 글의 주제에 관심이 없다면 힘겨운 쓰기 과정을 버텨내기 어렵다. 

중간에 포기할 확률도 높다. 

글쓴이가 크나큰 관심에서 출발해 애정을 갖고 써내려간 글이라면 읽는 이도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5.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기기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글쓰기를 통해 내 감정과 생각을 다시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 경험을 쓰려고 하면 그 경험의 구체적인 요소를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 

당시 감정과 함께 그 경험을 돌이켜보는 지금의 감정도 글에 담긴다. 

이렇게 해서 과거 경험이 다시금 생명을 얻는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경험을 글쓰기를 통해 되살리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도전해볼 일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특색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글로 쓰면서 생각하다 보면 

나만의 색을 드러낼 부분이 나올 테니까. 

내 삶이 누구와도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책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테니까. 


참조 : 이상원,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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