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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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물상]
‘자유시’ 스보보드니
배성규 기자 2023.09.14. 01:22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912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면서 아무르주 내륙에 ‘알렉세옙스크’라는 도시를 세웠다.
황태자 알렉세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후 이곳을 점령한 볼셰비키는 도시 이름을 ‘스보보드니’로 바꿨다.
러시아어로 ‘자유로운’이라는 뜻이다.
우리 독립군은 이곳을 ‘자유시’라고 불렀다.
▶하지만 스보보드니의 역사는 자유와 거리가 멀었다.
1921년 이곳에서 독립군이 소련 붉은 군대(赤軍)에 집단학살되는 참변이 벌어졌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승리 후 일제의 강한 압박에 밀리던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자유시에 총집결했다.
하지만 소련은 독립군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이를 거부하자 소련은 독립군 내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함께 장갑차와 기관총을 앞세워 기습공격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최대 500명에 달했고 포로로 잡혀 붉은 군대(赤軍)에 끌려간 이도 1천명에 가까웠다.
▶스보보드니 외곽에는 2017년 시 당국과 고려공산당 후손들이 세운 추모비가 있다.
‘1921년 이 땅에서 희생된 한인들이 잠들다.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없기를.’
독립군 내부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끼리 싸운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의 연해주 철군을 바랐던 소련이 일본과 밀약해 독립군을 유인해 학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스탈린 통치 시절 스보보드니 인근엔 정치범 강제수용소인 굴라크가 들어섰다.
독립군 출신과 고려인들도 끌려갔다고 한다.
이곳에선 비인간적인 처우와 가혹행위가 난무했다.
1935년엔 수용자가 19만3천명에 달해 소련 최대 규모였다.
냉전 시대엔 스보보드니에 ‘보스토치니’라는 전략로켓군 기지가 들어섰고 핵미사일이 배치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5100m짜리 활주로도 건설됐다.
이곳은 다시 2015년 러시아의 차세대 우주기지로 개발됐다.
우리 나로우주센터 면적의 110배다.
푸틴은 보스토치니 기지건설에 한국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다.
여기서 위성을 실은 소유스 로켓을 처음 쏘아 올리고 지난달엔 무인 달 탐사선도 발사했다.
▶북한 김정은이 13일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반제 자주 전선에서 언제나 러시아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소련이 고려공산당과 손잡고 우리 독립군을 말살했던 바로 그곳에서
이번에는 조선노동당이 러시아와 협력을 선언한 것이다.
김정은은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을 얻어내 우리를 위협하려 한다.
100년 전 스보보드니의 악몽이 재연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나라 없는 독립군은
중국 국민당과 친한 '상해파'와 쏘련 적군과 친한 '연안파' 등
여러 지파로 분열돼 있었고 독립군 군자금 명목으로 수탈도 했었다
장개석의 국민당으로부터, 스탈린의 적군으로부터 군자금도 받았다
그러나 쏘련의 스탈린은 근본적으로 고려인들이 무장하는 것을 경계했었다
스탈린의 적군에 협력한 홍범도는
무장해제를 반대하는 한인 독립군을 자유시에서 싹쓰리하는데 앞장서고
적군은 시베리아와 북간도에 거주하는 고려인 지식층/지도층과 그 가족을
정치범수용소에 갇우거나 몰살시키고
지식인/지도층이 아닌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탕으로 강제이주시켰다
북만주와 북간도와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협조, 수탈, 밀고, 도피 등으로
일본군, 적군과 독립군 3각 파도속에서 파멸되다 싶이 당했다
정객은 사랑 민주 인권 자유 없는 곳에서 사랑 민주 인권 자유를 도용한다
그 비용은 무지한 국민들의 세금 벌금 기부금 찬조금 등으로 충당된다
참변 慘變 -
뜻밖에 또는 속임수에 당하는 끔찍하고 비참한 대량의 재앙이나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