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이 조선침략에 실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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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1592~1598년)에서 왜군이 조선침공을 실패한 이유 세가지는 ;
1. 왜군의 군수물자 수송거리가 너무 길었다
왜군(20만명)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불과 한달만에 평양성에까지 도달했다
왜군은 1592년5월23일 부산진성과 동래성 전투에선 일거에 승전했어나 그 이후에는
그 긴 군수물자(무기와 식량)의 수송경로 곳곳에서 조선 각지방의 민병대가 게릴라전을 벌여
군수물자가 유실되고 수송기간이 제 시간을 마추지 못했다
전쟁은 훈련된 장병, 전투장비, 군수 그리고 전의(戰意)로 승패를 나눈다
왜군은 오랜 국내전투로 훈련된 장병과 조총의 전투장비에서 유리했어나 군수와 전의에선 불리했다
전투장병이 수송부대로 분산 배치되어 실전 장병은 1/10에 불과했다
2. 조선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주해버렸다
일본식 지방영주 막부간의 전쟁은 성이 함락되고 성주가 체포되면 전쟁은 끝이었는데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기도 전에 조선왕은 신의주까지 도피해버려 왜군은 평양까지 진격했다
그에 따라 군수품 보급로는 길어지고 병력은 전투병과 군수송 경비병으로 분산되었다
3. 왜수군이 해전에서 조선수군에게 패전하여 제해권 확보에 실패했다;
조선 수군의 전선은
2명이 젖는 대형 소나무 노를 이용하여 쉽게 뿌러지지 않았다
선체를 무거운 소나무로 건조하였다
선저가 펑퍼짐하고 무거워 화포의 충격을 흡수했다
선저가 펑퍼짐해서 충격 전술 후 회전이 용이했다
목재를 물뿌리 나무못으로 연결하여 충격흡수로 침수 방지에 용이했다
선저가 펑퍼짐하여 선체 동요가 적어 수군의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조선 수군은 화포발사와 충격 후 회두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을 이용했다
이순신 통제사 제독은 전공을 탐하지 않고 승전할 수 있는 天地人을 찾았다
반면, 왜 수군의 전선은
1명이 젖는 소형 측백(스기)나무 노를 이용하여 쉽게 부러졌다
선체를 가벼운 측백나무로 건조했다
선저가 역감각형으로 뽀쪽하고 가벼워 회포의 충격에 견디지 못했다
선저가 뾰쪽하여 선속은 높으나 회전에 불리했다
목재를 해수에 쉽게 녹스는 쇠못으로 연결하여 충격에 쉽게 침수됐다
선저가 뾰쪽하여 선체 동요가 심해서 수군의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심했다
왜 수군은 조총 발사 후 적선에 올라 백병전을 하는 전술이 기본이였다
왜 수군은 속전속결로 전공을 탐하였고 불리하면 산개하지 않고 뭉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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