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이 될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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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무력 쿠테타로 고려 왕조를 엎고 탄생했다
조선왕조는 새 관료를 뽑는 과정에서
무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인이 괄시받고, 주자성리학의 출제로 문인이 우대되었다
조선 4대 왕 세종의 "신분종모법"으로 전 백성의 40%가 노비신분이 되었다
노비에겐 권리 의무 자유/자율 책임이 없었고, 양반과 노비에겐 병역의무도 없었다
평민은 포목을 납부하면 병역이 면제되어 병역관리에 부정부패가 심해젔고,
포목을 납부할 형편이 안되면 어느 양반집에 노비로 자청했다
동거하는 노비는 의식주를 주인에게 의탁하니 다른 노비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배급제가 형성되었고
자연히 평민에게까지 4촌이 논 사면 배 아픈 평준화가 체질화되었고
지도자나 영웅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풍조가 심회되었다
더욱이 사농공상의 계급차로 세금 걷우기 쉬운 농부가 공업 상업 종사자보다 우선되었다
조선왕조와 그 관료의 안위를 위해 해외무역은 금기시되어 밀무역이 성행했다
무역은 운송을 기본으로 하는데 지방관료들은 통행세 착취가 암암리 부수입이 되었고
욱상의 보부상과 해상의 선원은 외지에서의 소식통/정보 때문에 경계 대상이 되었다
또 장남상속 제도로 차남 이하는 장남의 하인 꼴이 되어 착취의 대상이 되었고
독림생활을 위해 외지로 떠나면 인적손실로 간주되어 외지에서 유입된 인간에겐 텃세가 심했다
정경사문에 관해 '없이 사는 이'는 타인의 압박 착취를 피하기 위해 못 배워도 배운 척하다 보니
주자성리학의 한문장과 4자성어라도 읇어야 인간구실을 한다고 제사 상을 거룩히 모신다
아울러 보안을 목적으로 친척친지의 쪽수를 과시하려고 길흉사에 많은 참석인원 수를 중요시 한다
국방을 담당하는 군인이 천시되고, 국방은 중국에 의존하며 '외교' 라는 공물상납으로 대신했다
무관은 관료에 해당하니 백성은 착취의 대상이 되었고, 백성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장교, 사관은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자부심/명예심이 그 생명이다
전 백성의 40여%가 노비였어니 '가문의 영광'이라는 자부심/명예심이 이해될 리가 없다
산업화로 인해 물질적인 월수입금의 비교가 먼저이고 중요했으니
예비사관후보생이라는 ROTC가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진정한 자주국방이 될려면, '희생 봉사 용기'를 기반으로한 장교의 자부심/명예심이 먼저다
110년 이전의 조선왕조 시대의 기득권이란 '착취의 계급'이란 개념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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