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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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다리 중립외교가 과연 가능한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81회>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3.07.15. 09:25
1972년2월21일, 마오쩌둥 중공 주석과 닉슨 미 대통령. 사진/공공부문
2002년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외교전략으로 제시했다.
중간자로서의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며
“중견 국가의 위상에 맞는” 적극적 역할을 발휘해 국제외교를 주도한다는 발상이었다.
반미성향의 지지자들에겐 감동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적 질서를 신뢰하는 대한민국 정통세력에겐 반미·친중 세력의 위장전술로 보였다.
20년이 지나 동북아 균형자론을 되짚어보면,
세계사적 흐름과 국제정세의 향방을 전혀 잘못 짚은 아마추어 전략가의 엉터리 외교노선이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는 한국같은 중요한 국가가
미·중 사이에서 “펜스에 앉아서”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중립외교를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 양자택1을 강요
미국이냐, 중국이냐? 세계 여러 나라는 지금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1을 강요받고 있다.
세계 많은 나라는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어느 한편에도 쏠리지 않은 채 국익만을 극대화한다는 실용적 외교노선을 추구해왔지만,
최근 격화된 미·중 갈등의 현실은 더는 애매한 중립외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트럼프 정권은 세계 주요국에 중국산 5G 화웨이와의 단절을 요구했으며,
바이든 정권은 반도체 기술력의 중국 유입을 막기 위해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에 대중국 수출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 사이 양자택1이 불가피해지자 2023년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 편에 섰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 역시 양자택1의 압박을 벗어날 수가 없다.
중국에 군사기지 건설을 허가했던 UAE는 미국의 압력을 받고 계획을 철회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 될수록 세계각국에 가해지는 양자택1의 압박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쪽으로 쏠리면 중국이 때리고,
중국의 요구에 따르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제로섬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이상은 지난 7월12일 <Foreign Affairs>지에 게재된 “중립성의 신화”에 나오는 주장이다.
이 시론의 저자는 John McCain(1936~2018)의 외교정책 고문으로 활약했던 Richard Fontaine이다.
폰테인은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도 불구하고
미국 편에 서려는 동맹국과 선린국가들에 대해서 미국은 현실적인 보상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적극적 외교·안보전략, 우호적 무역협정, 지속적 방위책무의 이행으로 동맹국을 만족시켜야만
미국 주도의 국제연대가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폰테인의 분석대로 중립외교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 주도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지는 상황이다.
지난 7월12일 NATO정상회의는 중국의 대만 침공가능성에 대한 공동의 우려를 표명했다.
이틀 앞서 <포린어페어스>지에 발표한 시론에서 Jens Stoltenberg NATO사무총장은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제질서와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며 중국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NATO가 중국을 적국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규탄하기는커녕
러시아와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중국을 정면 비판했다.
그의 문장은 신냉전의 수사로 가득 차 있다.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의 대외적 강압행태와 대내적 억압정책은 NATO의 안보, 가치, 이익을 위협한다.
베이징이 이웃들을 협박하고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의 전제적 정권들이 서로 결탁하는 이 상황에서
그는 “민주와 자유를 믿는” 전 세계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바로 그러한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NATO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정상을 초청했고,
NATO의 초빙에 흔쾌히 응함으로써 이들 4개 주요국은 NATO와의 반중연대를 과시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문제가 세계 주요국의 연대를 강화하는 형국이다.
냉전 이래 한동안 지속돼오던 세계각국의 대중국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효를 다한 닉슨 패러다임, 미·중 갈등의 기원
1972년2월21일 베이징에서 중공 주석 마오쩌둥과 만난 미국 대통령 닉슨은
향후 미국의 대중국 외교전략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전달했다.
푹신한 분홍색 의자에 편히 기댄 79세의 마오쩌둥 곁에
59세의 닉슨은 바싹 다가 앉아서 입가에 진지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정치철학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념적 차이를 넘어 중국의 대미정책만을 고려해서 새로운 외교적 관계를 맺겠다는 발언이었다.
닉슨이 말한 정치철학이란 국가의 기본가치와 근본체제를 의미한다.
당시 미국은 공산권의 독재국가들을 향해선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구미중심의 견고한 세계질서를 확장하고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소련이 이끄는 공산권과 영원히 안 끝날 듯한 냉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오쩌둥을 만나 정치철학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선언한 닉슨은
1970년대 후반부터 40여년 지속될 미-중 공조화의 청사진을 펼쳐 보인 역사적 인물이었다.
회담 후 그는
“지금껏 미·중 사이엔 큰 차이점을 보여왔고, 앞으로도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러한 차이점을 가지면서도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는 방법을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1인지배의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미국은 중국과 경제적 공생관계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한해 전인 1971년 미국은
이미 중화인민공화국을 “China”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텄지만,
국교정상화는 1979년에야 이뤄졌다.
닉슨은 정치철학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지만,
반제(反帝), 반미(反美), 反자본의 정치철학을 견지하는 마오쩌둥이
미국에 대해 문호를 활짝 열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6년9월9일 마오쩌둥이 사망했고, 한달이 못 돼 4인방이 체포되면서
“10년 대동란”이라 불리는 문화혁명은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 후 2년에 걸친 정치투쟁과 노선갈등을 거쳐서 중공중앙은
덩샤오핑을 최고영도자로 추대하고 개혁개방을 새로운 국시로 채택했다.
닉슨이 제시한 바로 그 길을 따라 덩샤오핑은 문호를 열고 미국의 투자를 유치하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낙후된 경제를 성장시키는 제2의 혁명을 주도했다.
닉슨이 약속했듯 미국은 더는 중국의 정치철학을 문제 삼지 않은 채로 경제적 공생관계로 돌입했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은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공산주의를 내걸고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억지로 접붙이고,
1당독재를 인민민주주의라 선전하고,
마오쩌둥 사상을 되살려 1인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정치철학이 바뀌어야 중국이 변한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미·중 갈등은 타협 불가능한 서로 다른 정치철학에서 비롯되었다.
1979년초 덩샤오핑은
제5의 현대화 전략으로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민주장 운동의 주동자들을 긴급체포한 후,
“4항 기본원칙”을 천명했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도 중국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공산주의 노선, 인민민주독재, 중공 영도력,
마오쩌둥 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전 세계는 그러한 중국의 자기모순과 이중성을 빤히 보고 있었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공조가 불러올 경제적 실리가 컸기에 닉슨의 전략을 따라 중국의 정치철학을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는 톈안먼에서 탱크 부대가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음에도 국제사회는 중공의 통치를 그대로 인정했다.
닉슨 패러다임의 밑바탕엔
자본의 유입으로 중국의 경제적 토대가 바뀌면 정치적·제도적 상부구조도 변한다는 낙관이 깔려 있었다.
톈안먼 대학살 34주기, “국가안전”을 외치는 시진핑
닉슨의 낙관과는 달리 중국은 정치체제의 변화 없이 경제적 공룡으로 성장했다.
그 점에서 닉슨 패러다임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이제 세계는 본격적으로 중국의 정치철학을 문제 삼고 있다.
작금의 미·중 갈등 근원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라는 타협불가능한 정치철학의 대립이다.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는
인류적 보편가치를 거부하는 중공의 자기모순적인 정치철학에서 비롯됐음을
NATO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택1에서 NATO 31개 회원국과 인도-태평양의 4개 주요국도 미국을 선택했다.
그러한 결정의 밑바탕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자유, 인권, 민주, 법치 등 인류적 보편가치를 선양해온 초강대국이라는
공동인식이 깔려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국제사회의 전선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인류가 전쟁을 치르지 않고 미·중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
중공이 자체적으로 모순된 정치철학을 교정하여 인류적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길밖엔 없다.
중국이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법치국가로 진화한다면,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중국 문제”는 눈 녹듯 사라질 수 있다.
중국의 변화가 미·중 갈등 해소의 첩경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현실이 바뀌려면, 중공의 리더십이 변해야만 한다.
중공의 리더십이 변하려면 그 근본적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지식인들이
다시금 국가의 정치철학을 새로 짜는 치열한 이념논쟁, 전면적 사상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2013년4월 둥완 농민공 청년들이 거리에서 “민주, 자유, 인권, 헌정”을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당시 중국에선 민주 헌정 논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사진/rfa.org
1911년 이래 중국지식인들은 1세기 이상 헌정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대 그들은 중국의 전제적 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헌정담론을 전개했다.
2013년 중공은 강압적으로 그 논쟁을 중단시켰지만, 중국지식계의 헌정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식계의 담론이 탁상공론 같지만, 모든 정치혁명은 비판적 사유에서 시작된다.
그 점을 잘 알기에 마오쩌둥은 반우파운동(1957~1959)으로 55만의 지식인들을 오지로 보내 중노동을 시켰다.
현재 1인지배의 시진핑 정권은 개혁개방 이래 가장 강력하게 비판적 지식인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한 중국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정치는 생물이고 역사는 급변을 낳는다.
다수 중국인민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중공의 현체제는 억지와 모순으로 가득 찬 잘못된 정치철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중국이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결코 영원히 참일 수 없다.
전 세계가 중국의 정치철학을 문제 삼는 바로 지금이 중국을 바꾸는 적기일 수 있다.
<계속>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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