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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물상
[만물상] 용병의 반란
김태훈 논설위원 2023.06.26. 00:18
기원전 5세기 마라톤 전투는 그리스 시민군과 페르시아 용병의 싸움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내 나라와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로 전장에 나갔다.
반면 페르시아 제국군은 언어와 인종이 제각각인 이들을 제국 전역에서 차출해 만든 오합지졸이었다.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1만명 가운데 192명이 전사했다.
페르시아군은 1만5천명 중 6400명이 전사했다.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던 게 승부를 갈랐다.
▶전쟁에 진 페르시아는 그리스인의 용맹을 탐냈다.
그리스인 용병을 고용해 자기들 왕위 다툼에 투입했다.
용병들 입장에선 누가 제위에 오르건 돈만 받으면 그뿐이었다.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 용병에게 국방을 맡겼다가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당했다.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을 받은 동로마제국도
제노바 출신 용병대장 주스티니아니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가
전투 중 다친 주스티니아니가 도주하면서 수도가 함락당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모술수만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군주가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용병을 꼽았다.
“용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는
분열되어 있고, 야심에 차 있으며, 규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충성스럽지 않다”며
“용병 덕에 적의 공격이 지연되는 것은 나라의 파멸이 지연되는 것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여 온 러시아 용병부대 바그너그룹이
지난 주말, 총을 거꾸로 들고 모스크바로 진격했다.
용병을 지휘하는 프리고진은 그간
“푸틴이 실탄 등 장비를 보급하지 않는다”며 “우리를 총알받이로 쓰려 한다”고 비난해 왔다.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도 갈등을 빚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규군이라면 쉽사리 총부리 방향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 만에 반란을 철회했지만 용병의 충성심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바그너그룹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고발도 잇따른다.
바그너그룹이란 이름은 프리고진과 함께 용병회사를 만든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장교 우트킨이
작곡가 바그너 숭배자여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생전에 反유대주의자였던 바그너는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등에서 유대인을 사악한 인물로 그렸다.
히틀러는 그런 바그너를 열렬히 숭배했다.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바그너의 반유대와 민족주의가 전쟁을 초래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나치로 인해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그런 나라가 바그너 이름을 쓰고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용병을 동원했다가
반란사태까지 겪는 걸 보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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