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승산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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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경희 칼럼]
‘난방비 폭탄’이 일깨워주는 한국 경제의 숙명
강경희 논설위원 2023.02.06 03:10
작년 무역적자 472억$, 중동4국 적자만 762억$
원유·가스 비싸게 사고 중동 가서 되벌어야 하는 자원빈국의 반복되는 운명
그래도 승산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16일 UAE 아부다비 알다프라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3호기 가동기념식에 참석해
손뼉 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18/뉴스1
‘수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입은 격증(激增)을 거듭하고 있다.
올 들어 9월말 현재로
수출은 34억2600만$인데 수입은 50억7700만$에 달하여 무역적자가 16억5200만$나 된다.
이 9개월 동안 수입은 작년말에 비해 70%가 늘고
그 적자는 작년 한해 동안의 10억1500만$보다 60%나 부푼 것이다.’
숫자만 바꿔 넣으면 지금 상황인 듯한 이 글은 1974년11월1일자 조선일보 사설 내용이다.
1973년10월 제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한국경제는 백척간두에 섰다.
1973년 3억$였던 원유수입액이 이듬해 11억$가 됐다.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이며 국가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물가가 급등해 민생고가 극심했다.
정부는 위기에서 벗어날 방안을 백방으로 찾았다.
당시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이 ‘중동 진출 방안’ 보고서를 올렸다.
“중동이 넘쳐나는 oil money를 경제건설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정보를 외국 손님에게서 듣고 작성한 보고서였다.
귀담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들의 중동진출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오일 쇼크로 인한 외환위기는 오일 쇼크로 부자가 된 중동에서 처방책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1974년4월 중동에 첫번째 각료급 사절단을 파견했다.
장예준 상공부장관이 기업인들을 이끌고 2주간 중동방문에 나섰다.
대통령 요청으로 전경련 회장단 긴급회의가 열렸지만 기업들은 머뭇댔다.
해외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큰 승부사 정주영은 달랐다. 동생 정인영 부회장의 만류에도 중동 출사표를 던졌다.
1975년10월 바레인의 아스리 조선소 공사 수주에 이어,
1976년 무명의 현대건설이
세계적 건설사들을 누르고 최저가 입찰로 9억4천만$짜리 사우디의 주베일 항만공사를 따냈다.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기업이 앞장서고 정부가 밀어줘 중동 붐을 일으켰다.
비싸게 지불한 기름값을 우리 근로자들이 사막에서 피땀 흘리며 도로 벌어왔다.
그것이 한국경제 도약의 발판이 됐다.
30여년이 흘렀다.
2009년11월초,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도 UAE 왕세제는 통화를 미루고 미뤘다.
“나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UAE 원전수주의 실권을 쥐고 있는 모하메드와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UAE는 중동국가 최초로 원전을 짓기로 했다.
원전수출은 미국·프랑스·일본이 주도했다.
원전수출 경험이 없는 한국 대신 UAE는 프랑스로 기울었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중동 붐과 중동왕족의 영향력을 경험했던 이 전 대통령은
“기왕에 안 된 것, 전화한다고 해서 더 손해 볼 것도 없지 않냐”며 참모들 만류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연결된 통화에서
“짧은 기간에 발전한 한국의 경험이 어느 선진국보다 도움이 될 것”
“양국이 신뢰를 갖고 형제국가 같은 관계를 맺자”고 설득했다.
닷새 뒤 왕세제가 “한국 이야기를 들어보고 5주 후쯤 최종 결정하겠다”며 입찰연기를 알려왔다.
행운의 여신이 살짝 얼굴을 보여주려는 순간이었다.
그 일주일 뒤 한승수 전 총리를 단장으로 40여명의 대표단이 UAE로 급파됐다.
그해 12월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아부다비로 초청된 자리에서 한국의 원전수주가 최종 발표됐다.
다시 13년이 흐른 지난 1월,
UAE를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은 다르다”는 극찬과 함께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은 300억$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바라카 원전을 결정했던 그 왕세제가 이제는 UAE 대통령이 되어 내린 결정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행운은 없다.
대한민국 경제의 성공은 더더욱 그랬다.
300억$ 투자유치는 원전수출 1호를 가능케 한 2009년11월의 물밑 협상에서 출발했고,
그 역전극은 다시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동에서의 축적된 경험이 만들어주었다.
‘난방비 폭탄’에 50년 전의 Oil Shock가 떠오른다.
경제규모는 100배 넘게 커졌지만 생존전략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다는 게 명료해진다.
‘자원빈국’의 고난기가 ‘자원부국’엔 호황기다.
우리의 만성 무역적자국은 일본·독일 같은 기술선진국을 제외하면, 자원수입국으로 고착화됐다.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UAE·카타르·쿠웨이트 4국에 대한 무역적자만
1년 전보다 76% 늘어 762억$다. 전체 무역적자(472억$)보다도 많다.
Oil Money 덕에 중동경제는 끓고 있다.
그 돈을 저탄소 경제건설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싸게 사오고, 중동 가서 그 돈을 다시 벌어와야 하는 한국경제의 숙명도 반복되고 있다.
먹고살만해졌다고 펑펑 쓰고 샴페인 터뜨리며 놀 수 없는 팔자다.
바위를 끝 없이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신화 비슷하다.
그래도 50년 전보다는 낫다.
신뢰도, 기술력도 꽤 쌓여 도전해봄직한 ‘제2의 중동 붐’ 아니겠는가.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위 기사의 필자 강경희 논설설위원은
1991년 조선일보에 입사했어니 그당시 24~5세로 보고 지금의 나이로 56~7세이다
위 기사의 논조는 1974년11월1일자 논설에서 부터 50여년 전의 경제상황을 파악했다
행운은 순간적으로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닌, 역사를 거처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다
75년 전 1948년의 건국대통령 이승만부터 62년 전 1961년의 산업대통령 박정희와
제철산업 박태준, 현대그룹 정주영, 삼성그룹 이병철 등의 재계 거물급 영웅들에 의해
그 역사적인 근면 성실 인내로 오늘날 한국경제의 위상이 세계10위권으로 형성되었다
일상 대하는 지폐에 이승만 박정희 얼굴을 올려 표상으로 삼고 전진해야 후퇴도 가능하다
그 가난했던 보릿고개를 넘어 지금은 배 부르고 등 뜨시게 살면서 3D는 외면하는 시대다
푼돈 조금 있으면 아들은 목표를 못 찾아 공부 하지 않고 딸은 두려워 시집 안 가는 시대다
부족함이 있어야 필요성을 느끼고 채우려 노력하고 잃지 않으려 인내하는 것이 인생사다
원전을 발전시켜 한겨울 한여름에 전기료 걱정 없이 냉난방할 수 있어야 문화생활이 된다
무식, 야만스러워야 통치하기 쉽다는 정치 야바위꾼 모리배로부터 해방, 독립하여야 한다
생활만사에 규제 간섭 단속으로 보호 받아야 안도하는 노예의 정신세계에서 홀연히 벗어나
이젠, 사고에서 국가보상금 챙기고 대통령 사과까지 요구하는 촌스러움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