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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입대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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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23-02-05 09:04 View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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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통신 ]

기이한 1차대전 입대 러시... 청년들은 왜 사지로 뛰어들었나

권석하 在英 칼럼니스트  2023.02.04 12:00


최근 친지들로부터 

“영국인과 유럽인들은 전쟁이 터지면 

참전을 피하기는커녕 되레 왜 자원입대하려고 안달을 하느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넷플릭스 개봉작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 Front)를 보고 하는 질문이다.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담은 이 영화는 

1930년, 1979년에 이어 2022년에 다시 제작돼 현재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로도 올라 있다.


사실 위의 질문은 

필자도 ‘서부전선 이상 없다’뿐만 아니라 영국과 유럽 전쟁영화들을 보면서 자주 궁금해 하던 것이다.

아직도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동족상잔 전쟁을 겪은 우리로서는 

유럽 젊은이들의 입대(入隊) 러시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전쟁에 대한 유럽인들의 이런 태도는 우리와는 다른 종족이라서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물론 서구인들은 겨울에도 반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는 등 

신체구조는 물론 사고방식도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종족이긴 하다. 

하지만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묘사한 충격적인 장면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친구들과 입대

영화 속 주인공과 동급생 친구 6명은 서로 부추기면서 신이 나서 같이 입대한다. 

청년들은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마치 모두 소풍 가는 듯한 분위기에 들떠서 자원입대한다. 

사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1928년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18세의 나이로 1차대전에 참전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려는 독일인의 反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들뜬 참전 분위기가 묘사돼 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는 객관적인 방증일 것이다.


당시 청년들의 입대 러시에 대한 이유로는 서너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당시 모든 유럽인들은 전쟁에 대해 낭만적인 환상에 젖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영국인뿐만 아니라 유럽인 모두에게 전쟁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전설에서 전해듣던 피안의 낭만이었다. 

당시 유럽에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200여년간 소규모의 국지전 말고는 거의 전쟁이 없어서 

평화와 번영을 오랫동안 누리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해 

말로만 듣던 전쟁이 비로소 터졌다는 일종의 기대감마저 있었다.


당시 유럽인들이 소설책과 역사책에서 본 전쟁은 영광스럽고 낭만적이었다. 

모두 애국심에 불타는 용감한 청년들이 모국을 위해 영광스럽게 전사한 이야기였다. 

당시만 해도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반전의 글은 존재하지 않았고 

전쟁의 참상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도 없었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본 영광스러운 승리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뿐이었다. 


해서 당시 유럽 청년들에게 

1차대전은 조국을 外敵으로부터 지키는 영광에 참여할 기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에 하루빨리 참전해 용기를 증명할 수 있는 모험의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아 안달이 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에 팽배한 국수주의도 청년들을 흥분시켰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도 

교사가 졸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국가에서 부르면 언제라도 응하라’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일은 조국을 위한 영광’이라고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교육을 너무 오랫동안 받으면서 세뇌돼 입대가 당연히 영광스러운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여겼다.


끔찍한 살상이 벌어질지 누구도 몰랐다

기본적으로 이런 분위기는 

당시 정치지도자들은 물론 유럽인 누구도 전쟁이 그렇게 오래가고 참혹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터키 등 모든 참전국들은 

당초 전쟁이 세계적 전면전으로 비화할 줄 몰랐다. 

특히 유럽인들은 전쟁은 국지전이고 반드시 단기간에 끝난다고 여겼다. 

청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입대하면서 

1914년7월에 시작된 전쟁이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에는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결국 4년4개월을 끌면서 

6800만명이 참전해 전사 990만명, 실종 776만명, 부상 2310만명의 엄청난 희생을 내고서야 끝났다. 

당시 유럽인구가 4억9800만명이었으니 거의 인구의 13.6%가 참전했고 사상자만 8%에 달했다.


참전에 들뜬 분위기는 독일뿐만이 아니었다. 

독일의 적국인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역사학자들은 1914년7월28일 1차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유럽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상상도 못했던 살상이 벌어질 전쟁을 흡사 대단한 축제가 벌어진 것처럼 흥분해서 맞았다.

각국의 동네는 각종 깃발이 장식했고 

길거리에는 입대하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가는 청년들과 이들을 환송하는 시민들로 꽉 찼다. 

밴드가 신나는 연주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쟁터로 나가는 청년들은 모험과 실전에 대한 흥분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순진한 애국심에 불타는, 일상에 싫증이 난 청년들의 모험심이 마구 불타 올랐다. 


바로 한달 전인 6월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미 유럽에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대개의 유럽인들은 

드디어 소설과 역사책에서만 보던 전쟁이 진짜 벌어진다면서 내심 기대하기까지 하던 참이었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영국에서도 1차대전이 터진 첫주에만 10만명이 자원입대를 했다. 

그다음 주에도 다시 10만명이 자원입대했고, 

40일 만인  9월12일까지 100만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입대등록을 했다. 

그중 25만명이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등록한 18세 이하였다. 


당시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 한 청년이 종전 후 털어놓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자신이 등록 창구에 가서 16살이라고 말하자 접수원 군인이 

“자네는 지금 꺼지고 내일 19살이 되어서 다시 와!”라고 힌트를 줘 

다음날 19살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등록할 수 있었다는 일화이다. 


필자가 부산 유엔군 영국묘역에서 본 16살 소년병의 묘지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정부가 이들을 무장시킬 무기와 군복이 모자랄 정도로 자원입대가 줄을 이었고 

청년들은 수개월간 사복을 입은 채 목총을 들고 훈련을 해야 했다.


등록사무소 앞의 입대행렬은 

8월말 전쟁터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보도된 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한편 분노가 전국을 휩쓸면서 더 많은 자원자가 몰렸다. 

하루 평균 1만명이 자원했는데 

특히 9월3일은 단 하루 만에 3만3204명이 등록해서 가장 많은 입대기록을 세웠다. 

1914년 성탄절까지 수십만명이 다시 자원입대를 했고 이런 추세는 1915년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심지어 해외에 있던 영국인들이 몇달을 걸려 배를 타고 돌아와 입대를 하는 일도 있었다. 

많은 경우에 한 회사, 한 학급 전체가 같이 지원을 했다. 

공장과 직장 혹은 같은 축구클럽 등에서 한꺼번에 입대를 하는 경우도 흔했다. 

영국은 아직도 그렇지만 향토군대이기에 같은 지역 청년들이 항상 같은 단위를 이루어 군복무를 한다.

그래서 향토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친구와 동료들이 같이 입대한다고 ‘친구부대(Pals Battalions)’라는 말도 생겼다.


1차대전 당시 영국의 징병 포스터. 

영국 전쟁장관 키치너 경이 ‘조국이 당신을 필요로 한다’는 문구와 함께 등장했다. /photo 게티이미지


‘친구부대’들이 겪은 참상

독일군도 같은 양상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의 동급생 6명도 

같은 중대에 속해 함께 참호에서 싸우다가 하나둘씩 전사한다. 

영국의 경우 애크링턴 마을의 중대가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인구 1만5천명의 애크링턴 마을에서 700명이 같이 입대를 했는데, 

1차대전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전투인 프랑스 솜전투에서 

같은 부대에서 싸우던 마을 사람들 중 235명이 전사하고 35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솜전투 114일간 독일군 지역으로 고작 10㎞를 진격하기 위해  

영국군 42만명, 프랑스군 20만명, 독일군 44만명 등 도합 106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1차대전이 시작되던 때에 영국군에는 24만7천여명의 군인이 있었다. 

그중 3분의1이 인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1차대전이 끝날 때에는 영국 남자 중 4분의1이 군인이었다. 

이는 500만명이 넘는 숫자로 267만명이 자원입대를 했고 277만명이 징집되었다는 의미다. 

당시 영국에는 550만명의 장정이 군인이 될 나이에 있었다. 

매년 50만명이 18세의 나이가 되어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전쟁이 터지면 징집을 터부시하는 전통이 있었다. 

국가를 지키는 일에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자부심이 국민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전쟁(The Great War)’이라는 대의명분이 뚜렷한 1차대전에서도 

강제를 전제로 하는 징집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다. 

국가를 위한 전쟁에는 자원해야 더 명예롭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영국인들은 원한다고 모두 군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원자 중 40%가 신체가 약해서 입대를 못 했다. 

장정이 많았던 노동자 계층에서는 영양부족이 심각했는데, 

노동자 계급 15세 소년의 평균 키가 157㎝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중산층 또래는 168㎝였다. 


개전 초기 영국군은 키가 최소 165㎝ 이상은 되어야 입대 가능하다는 규정을 뒀다. 

이 때문에 개전 초기 당장 입대를 원했던 노동자 계층 중 실망해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규정은 나중에 157㎝로, 더 지나고 나서는 150㎝로 완화됐다. 

이런 현실에서 장교로 선발되는 청년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영국 명문사립학교와 대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은 앞을 다투어 참전했다. 


1915년9월에 들어서자 전쟁이 깊어지고 길어질 기세를 보였다. 

결국 영국 국방부는 징병을 꺼리던 입장에서 선회해 입대를 고무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명한 ‘조국이 당신을 필요로 한다(Your country needs you)’라는 포스터가 길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콧수염이 유난히 크고 군모를 쓴 근엄한 표정의 군인이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면서 위압적인 표정을 짓는 포스터다. 

주인공은 당시 영국 전쟁장관 키치너 경.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들은 

그 포스터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효과적인 그림이었다. 


계속해서 전쟁터에서 들려오던 사상자 숫자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자원입대를 망설이지 않고 더욱 분개한 탓에 다시 입대사무소 앞에 긴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바로 영국청년들이 전쟁을 피하지 않고 자원입대를 하는 1차대전 전반기 스토리다.


1차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솜전투 참호전 모습과 당시 영국군 병사들의 행진 장면. /photo 위키피디


징병이 아닌 자원입대만 명예롭다

1차대전 발발 전에도 

영국에는 앞으로 닥쳐올 전쟁은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동의가 국민들 사이에 있었다. 

전쟁 발발 이전에도 만일 전쟁이 터지면 

소수의 직업군인으로는 독일을 대적할 수 없고 결국 청년들의 참전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영국에는 징집제도가 없었고 소수정예의 직업군인들로 이루어진 군대만 있었다. 

영국에서는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 이민자인 보어인과 치른 2차 보어전쟁(1899~1902년)에서 

병력 부족이 문제가 되면서 한때 징집요구가 팽배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영국사회에는 

징집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남자라면 당연히 자원입대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거기다가 마침 어스킨 칠더스라는 작가가 쓴 ‘모래톱의 수수께끼’(Riddle of the Sands·1903)라는 소설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회분위기는 자원입대를 더욱 대세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전쟁 전에도 상류층과 중산층 집안의 자제들이 

간부훈련을 받기 위해 입대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여겨지고 있었는데, 

소설과 함께 자원입대 분위기가 워낙 강해져서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영국에서는 자원입대가 시작될 정도였다. 

그래서 ‘모래톱의 수수께끼’는 ‘나라를 만든 책(The book that shaped a nation)’이라는 

영광을 얻을 정도로 당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소설 주인공은 

옥스퍼드대를 같이 나온 친구이자 외교부 직원인 동창에게 

독일 해변에서 오리 사냥을 하면서 작은 요트를 타고 휴가를 같이 보내자는 제안을 한다. 

친구는 1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와서 휴가를 즐기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독일제국의 영국 침공 비밀작전 훈련을 엿보게 된다. 

당시 독일 빌헬름 2세 카이저 황제가 직접 참여한 훈련은 

향후 10만 대군이 비밀리에 영국 동해안을 통해 습격하는 작전의 전초전이었다. 


결국 이들이 이 훈련을 저지할 뿐만 아니라 

비밀공격이 탄로나면서 독일의 기습공격 작전도 취소된다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에서 빌헬름 2세는 태연하게 영국을 방문해 당시 에드워드7세 왕과 같이 친교를 도모한다. 

두명의 청년이 뒤로 물러서지 않고 국가의 위기에 용감하게 맞서 엄청난 일을 해낸 셈이다. 

이 소설은 독일의 야욕을 들추어내면서 애국심을 자극했다. 

이 소설을 그래서 스파이 소설의 효시라고 보기도 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時도 청년들의 참전을 부추겼다. 

특히 시그프리드 서순과 루퍼트 브룩의 전쟁시는 유명하다. 

이들의 시는 청년들의 피를 끓게 만들어 참전을 독려했다. 

특히 브룩은  

‘그 안(전쟁)에 있어도 지옥이지만,  바깥에 있어도 지옥이다

(It will be Hell to be in it, and Hell to be out of it)’ 며 

군에 지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당시 사회분위기를 묘사했다. 

문학작품과 영화, 언론 등이 부추긴 사회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청년들 사이의 분위기도 대단한 압력이었다. 

친척, 친구, 친지들에 의해 등 떠밀려 자원입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애국심에 불타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입대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당시는 정말 입대하는 일보다 입대하지 않는 것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입대를 하지 않는 청년들을 남자답지(manliness) 못하다고 보는 분위기는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압박이었다. 

직장에서는 물론 펍과 식당 등에서도 노골적으로 모욕적인 눈길을 줄 정도였다. 

군복을 입지 않은 청년들이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욕설을 듣는 것은 보통이었다. 

심지어 여성들이 하얀색 깃털을 주곤 했다. 

옛날부터 영국에서 하얀색 깃털은 남자의 비겁함을 상징했다. 

중세 십자군 원정 때도 

참전을 하지 않는 청년에게 흰 깃털 혹은 양모와 함께 실패(distaff)를 주어 모독하는 풍습이 있었다. 

너는 남자가 아니고 양모와 실패로 실을 만드는 여자라는 의미였다.


참전은 일확천금 쥘 수 있는 벤처사업이었다

1차대전 중에는 길거리에서 군복을 안 입은 청년들에게 

흰 깃털을 주던 여자들로 이루어진 ‘백색의 깃털 여단(White Feather Brigade)’이라는 단체까지 생겨났다. 

이런 캠페인은 중요한 업무 때문에 군대에 안 간 정부공무원들에게까지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정부에서 길거리나 술집 등에서 모욕을 안 당하게 

군대 안 간 공무원들에게 배지를 나누어 주어야만 할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해 제대한 군인들과 휴가 중인 군인들이 모욕을 받는 일이 생겨났고, 

심지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병이 

왕으로부터 영국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훈장을 받는 예식에 참여하려고 사복을 입고 가다가 

모욕을 당한 일까지 있었다. 

어쨌든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영국은 1차대전 전반기에는 징집령을 동원하지 않고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사실 영국은 역사적으로 한국과는 달리 군인이 사회지도층인 사회였다. 

귀족은 바로 장군이었고 기사는 장교였다. 

중세에는 왕으로부터 작위와 함께 봉토를 받은 귀족이 

소작농과 농노를 이용해 자작 경영하면서 왕에게 세금을 바치고 

일단 유사시에는 자신의 봉토 안 농민들로 농군을 조직해 왕을 위해 전투를 치렀다. 

평시에는 외적이나 도둑들로부터 농민을 보호하는 일을 이들 귀족과 기사들이 해왔기에 

영지 내에 있으면 안전했다. 

그래서 제복을 입은 군인, 경관, 소방관 등을 유럽인들은 역사적으로 존경하는 전통이 있고 지금도 남아 있다. 


거기다가 중세에는 전쟁에 참여한다는 일은 

승리하면 전리품으로 한몫을 잡을 수 있는 요즘의 벤처사업 같은 기회였다. 

원래 중세의 전쟁은 

농군 각자가 알아서 자신의 갑옷과 무기를 갖추어 기꺼이 출전하는 벤처사업의 성격을 띠었다. 

패전하면 목숨을 잃지만 그걸 겁내서 일확천금이 생기는 참전의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면 집에서도 죽을 것이니 운명이라도 걸어 보자는 식이다.


그러고 보면 영국인들은 요즘도 운명론자들 같다. 

암 진단을 받으면 2차 진단도 받지 않고 대체의학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주변 영국인들을 보면 병원에서 해주는 대로 따르다가 죽을 운명이 아니면 완치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긴 2차 진료를 받을 방법도 마땅치 않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피와 기질 때문인지 영국남자들은 보기보다 마초적이다. 

아파도 병원에 잘 안 가고 약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향수와 화장품을 쓰는 영국남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한 때 한국과 일본에서 유행했던 클러치 핸드백을 남자들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한국에 온 영국남자가 기겁을 하고 놀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영국인들이 아직도 전쟁 참여를 별로 피하지 않고 대의명분을 앞세워 기꺼이 입대하는 것은 

이런 기질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선의 국제군 여단에 영국인들이 가장 많고 

1936년 스페인내전 때도 영국인의 참전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15.♡.168.73 작성일

한 국가든 개인이든 짐승이든 전쟁은
승전의 자신감이 있으면 참전하고 패전의 예감이 있으면 도주/회피한다
그 자신감과 예감은 장병(+양질), 장비(+보급) 그리고 전의(+사기)를 상호비교하는 것에서 나온다
일(작업)으로 치자면, 능력과 성의(명분)이 있어야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체에서 능력과 성의가 부족하면 일하는데 걸거치는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전쟁에서 이 때, 그런 존재에게 상위 직위/직급이 주어진다면,
"적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란 말이 나온다
그래서 "사고가 터저봐야 그 존재의 가치를 안다"는 말도 있다
남자의 생존  본능은 존재감으로 이루어진 사냥/전투 본능이다
협업하는 사회적인 동물에게는 그 존재감 자체가 바로 생명이니 선택사항이 아니다

만약, 다시 우리나라에 제2의 6.25남침이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제2차세계대전(1939~1945)에서 전쟁준비를 소홀히 했던 프랑스처럼 망명정부가 생길 수도 있다
6.25전쟁에서 한국인과 한국정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미국의 정책에 따라 휴전으로 끝날 수도 있다
북조선의 핵무기 위협에 무럽 꿇고 무조건 강화조약(항복) 맺자는 좌익의 주장이 우세할 수도 있다
1989년 쏘련이 해산할 때 미국은 우크라이나 소재의 핵무기를 안전보장과 돈으로 폐기처분했으나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할 때는 미-러 사이의 확전을 염려하여 외면했었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동남부를 침공했을 때는 NATO와 공동으로 무기만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핵무기 확산방지로 미국을 버릇한 선진국들의 재제를 감수하고 핵무장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한국의 청장년들은 국토방위에 얼마나 어떻게 참전할까?
한국의 노인들과 여성들은 청장년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국방을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참전시킬 수 있을까?
국민, 국방부와 보훈처는 참전용사를 어떻게 대우했는가?를 역사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는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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