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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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1. 개요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수도는 아스타나이며 이전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알마티이다.
러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과 육상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비록 내륙국이지만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의 항구를 통해 아제르바이잔, 이란과도 가까이 이어진다.
상하이 협력기구의 정회원국이며, 독립국가연합 및 유라시아 연합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2. 국가 상징
국조가 검독수리이다.
고대부터 검독수리는 카자흐인에게 사랑받으며 사냥과 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검독수리는 순결의 뜻도 지니고 있다.
2.1. 국호
카자흐스탄이라는 국호는 주민족인 카자흐인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더 나아가면 고대 튀르크어 qaz에서 카자흐라는 민족명이 나왔고 그것이 국가 이름이 된 것인데,
qaz에는 '방랑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생활을 했던 그들의 특성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페르시아어로 '땅·나라'를 의미하는 스탄(ستان / stân)이 붙어 카자흐스탄이 되었다.
카자흐어로는 Qazaqstan / Қазақстан이라 표기하며
카자흐어에 기반해서 한글로 옮기면 '카작스탄(또는 카자그스탄)[6]'에 좀 더 가깝다.
인접한 러시아어권에서도 1936년 이전까지는 카작스탄(Казакстан)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했다.[7]
다만 러시아어권 내에서 카자크라는 표현은 튀르크계 민족명이 아닌
슬라브계 민족명이자 군사집단인 카자크(러시아어로 카자키·Казаки)를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았으므로
이후에는 구별을 위해 카자흐스탄(Казахстан)으로 옮겨졌다.[8]
한국어 표기인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어 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유럽 로마자 문화권에서도
러시아어 표기인 카자흐스탄(Казахстан)을 옮긴 표기에 맞춰 호칭된다.
영어의 Kazakhstan이나 독일어의 Kasachstan, 스페인어의 Kazajistán 등이 있다.
카자흐인들은 독재 시절 카자흐스탄이나 카작스탄이라는 표현보다는
카자흐어로 '국가·땅'이라는 의미의 고유어인 옐(el / ел)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카자흐인의 땅'이라는 뜻을 지니는 카자크 옐리(Qazaq elı / Қазақ елі)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기각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이라는 뜻으로 카작스탄다(Qazaqstanda / Қазақстанда)보다도
카자크 옐린데(Qazaq elınde / Қазақ елінде)가 활용되기도 한다.
2.2. 국기·국장
카자흐스탄의 국기는
화가인 섀켄 니야즈베코프(Şäken Niiazbekov, 1938–2014)가 디자인한 것으로
하늘색 바탕에 황금색의 카자흐 전통 문양과 32줄기 태양 그리고 초원수리가 그려져 있다.
처음 디자인 도안은 카자흐 전통 문양 부분이 빨간색이었다.
근처에 비슷하게 국기 옆쪽에 전통 문양이 실린 국기로 벨라루스와 투르크메니스탄이 있다.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국기는 1953년 제정돼 1992년까지 사용됐는데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임시로 사용되었다.
현행 국기는 1992년 6월 4일에 채택됐다.
2.3. 국가
카자흐 SSR 시절에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를 사용했다가
소련 붕괴 이후에는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한 채 가사를 바꿔서 2006년까지 사용했다.
3. 행정 구역
카자흐스탄의 행정구역은 17개의 주(Oblys)와
3개의 직할시(Respublikalyq mañyzy bar qala, 공화국 주요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직할시 중 바이코누르 시는 러시아에 임대된 상태이다.
4. 자연환경
기후는 계절변화가 뚜렷한 대륙성 기후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우며,
특히 평원과 골짜기 지역에 그 특징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평균 강수량이 북부가 약 250㎜, 남부 산악지대가 450㎜에 이르지만 사막은 비가 훨씬 적게 내린다.
스텝과 사막이 대부분의 지역에 걸쳐 있다.
지역별로 보면 동남부의 알마티는 강수량이 600mm를 넘어 그렇게 건조한 편은 아니며,
겨울엔 영하 20도 정도까지 내려가다 여름에는 40도 가까이 치솟는다.
대충 지중해성 기후와 비슷하지만 겨울에 겁나게 춥다고 보면 된다.
알마티 근처를 제외하곤 대부분 지역이 강수량이 적은 사막과 스텝이다.
기온차는 그래도 지역마다 심한데 카스피 해에 접한 악타우의 경우
카자흐스탄 기준으로 겨울 평균기온이 -0.5℃로 그렇게 춥지 않지만
여름 평균기온 또한 25.5℃로 상당히 덥고 극도로 건조하다.
북부의 아스타나의 경우
겨울엔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엔 영상 40도까지 올라가는 미친 날씨를 보여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국 더위와는 달리 습기가 적어
영상 40도까지 올라가도 아주 덥다고만 느껴질 뿐, 땀은 별로 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은 북부의 아트바사르(Atbasar)에서 기록된 -57℃이고,
최고 기온은 남부의 튀르키스탄에서 기록된 49℃이다. #
소련 시절부터의 과도한 물 사용으로 말라가는 아랄해 문제와
냉전 시절 핵실험장으로 사용되었던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의 방사능 오염 문제 등이 있다.
당시의 공식적인 핵실험 장소는 세미팔라틴스크이지만,
비공식적인 핵실험 장소가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한다.
서부의 악퇴베 아틔라우 주에도 서방 세력의 눈을 피해서 비밀리에 핵실험을 한 장소들이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대 중후반에 강력한 폭발음이 밤중에 자주 들렸고,
주민들은 분명 핵실험을 했을 것이란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지하 핵실험이 끝나면, 침하된 부분을 시멘트로 덮어 방사능 누출을 막게 되는데,
1980년대 후반 소련이 안팎으로 휘청거렸던 시기에는 시멘트를 어설프게 덮어버린 바람에,
그 시멘트가 2~30년이 지나면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런 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초원지대인데,
일부 유목민의 양이나 소 등의 기형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
참고로 카스피해에 인접한 악타우의 경우
수명이 다한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폐쇄하지 않고, 해수담수화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악타우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 옆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는데,
우라늄 노천광산으로 물을 채워 방사능을 막고 있다.
그나마 아랄 해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노력 덕분에 이웃나라 우즈베키스탄보다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참고로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지만 서쪽의 일부 영토가 유럽에 속한다.
카자흐스탄 북쪽까지 내려오는 우랄 산맥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이기 때문에
우랄산맥의 서쪽에 있는 카자흐스탄 영토는 유럽에 속하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이 점을 근거로 내세워 유럽축구연맹 회원국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원국이기도 하다.
4.1. 영토
국토 면적 순위상 세계에서 9번째로 면적이 큰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국이다.
카자흐스탄이 세계적으로 열 손가락에 꼽히는 큰 나라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는 흔히 '거대한 나라'의 대명사 중 하나로 쓰이는 인도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다.
이 나라와 면적이 가장 비슷한 나라는 세계에서 8번째로 넓은 나라인 278만㎢인 아르헨티나다.
물론 약간 작다고 해도 인도(328만㎢)와 카자흐스탄 차이는
일본(37만)과 한국(10만)을 합쳐도 더 큰 57만㎢ 차이가 난다.
영토의 일부가 유럽에 걸쳐 있다.
러시아나 튀르키예와 비슷한 사례다.
그러나 러시아나 터키가 두 대륙에 걸친 나라라는 건 거의 상식 수준이지만
경도가 비교적 동쪽에 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서부도 그렇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이스탄불의 절반과 그 근교 일부만이 유럽 부분인 터키와 비교하면
유럽 땅 비율은 오히려 카자흐스탄이 더 크다.
카자흐스탄의 유럽 땅 넓이는 약 15만㎢로 카자흐스탄 국토의 5%를 넘는 수준으로(터키는 3%),
면적 자체는 그리스 전체 면적보다도 넓다.
다만 이스탄불이라는 거대 도시가 유럽 부분에 있는 튀르키예와 달리
카자흐스탄의 유럽 지역은 거의 사막이라서 존재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리고 유럽 부분에 사는 인구는 터키 쪽이 10배 이상 많기도 하다.
5. 정치
소련 공산당의 카자흐 SSR 지역당 서기였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1990년4월24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대통령 6선에 당선, 28년1개월간 대통령을 하였다.
사실상 독재이름이 누르(빛)술탄(군주),
따라서 빛의군주…라 내부적으로는 선거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고,
대외적으로도 비판을 종종 받고 있다.
그래도 중앙아시아 5개국 중에선 가장 정치적 안정도가 높은 나라이고
이민족의 비율이 높은 나라임에도 민족분규 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었다는 점 때문에
국민들은 그를 독재자가 아닌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다만 젊은층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2019년3월19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카자흐스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3월20일 상원의장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Qasym-Jomart Toqaev)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토카예프는 취임과 함께 수도 아스타나의 이름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으로 개칭하자고 제안했고,
의회에서 이를 가결하여 수도 명칭이 변경되었다.#(러시아어)
그리고 6월9일에 치뤄진 대선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이 재선하였다.#
이와중에 부정선거에 관련해서 시위가 일어났다.#
사퇴 이후 나자르바예프의 행보를 보면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비슷하다.
리콴유는 총리 자리에서 퇴임한 이후 선임장관 자리를 만들어서 그 자리에 올라갔다.
나자르바예프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나
안전보장회의 의장직과 여당의 당수 자리를 유지하며 여전히 대통령 위의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문제가 심한 편이다.
세관에서 입국자들의 뒷목 잡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지인과 동행하지 않을 경우 거리의 경찰이 온갖 트집을 잡으며 생떼 부리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다.
아래에 설명된 소규모 중소기업이 사업진출했다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철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의 부패인식지수는 2020년 기준 38점으로
전세계 180개국 중 94위로 중앙아시아에선 가장 낫지만
전세계적으로 중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상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청렴해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의회는 양원제 의회로 상원과 마질리스로 나뉘어 있다.
상원은 직선은 아니고 각 주와 특별시의 의회에서 2명씩 선출하는 방식으로 임명하며 전원 무소속이다.
하원인 마질리스는 107석 정원에 98석은 국민 직선으로 선출하며
9명은 소수민족을 위한 헌법기관인 카자흐스탄 민족회의의 의석으로 할당되어 있다.
하원의원 월급이 최소 50만 KZT(한화 약134만원)에서부터 최고 80만 KZT(한화 약213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지방자치제와 지자체장 직선제를 도입하고
봉쇄조항도 7%에서 5%로 내린다는 선거법 개정안을 냈다.#
5.1.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 이후
2022년1월2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前 대통령의 독재 잔재와
LPG가격 인상, 코로나19로 인한 민심 악화까지 겹쳐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지만
러시아의 개입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카자흐스탄 시위가 끝나고 누르술탄이 벨라루스로 망명한 이후
2대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는
2022년3월16일 의회 연설에서 정치 및 행정시스템 변경안을 담은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토카예프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
일명 '슈퍼대통령'이라 불리는 막강한 대통령 권한을 개헌을 통해 의회로 이양하고
헌법재판소를 신설해 향후 헌법의 유동성을 사전에 막는 정치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초법적 대통령제에서 강력한 의회를 갖춘 대통령제로의 최종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오늘 제출한 개헌안은 매우 규모가 크며,
수정안에 따라 국가의 전반적인 정치 시스템과 행정 구조를 크게 변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해당 헌법 개정안에는 30여가지의 개헌사항과 20개 이상의 법률 변경안이 포함돼 있으며
올해 말까지 (의회에서) 채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텡그리뉴스에 따르면
이번 개헌안에는 전·현직 대통령의 집권여당 당직 겸직을 금지하고,
법률 처리 권한을 하원인 마질리스로 통일해 하원의 권한을 확대하고 상원의 권한은 축소했다.
또한 선거법을 개정해 야당의 정치진입장벽을 낮춤과 동시에
시민단체의 역할 및 언론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헌법재판소 신설을 통해 시민의 인권과 기본권을 강화한다.
이밖에 개헌안에는
현재 중앙집권형에서 지방분권형 체제로 국가관리체제를 변경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주지사 및 시장 선출을 현재 대통령 지명제에서 선거제로 변경하는 등
사실상 지방선거 도입 내용도 담겼다.
토카예프는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모든 것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는 이 관행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날 필요가 있으며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이 유대관계적 권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로써 카자흐스탄에도 민주주의의 물꼬가 틀것으로 보인다.#
또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제2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알마티 사람들을 축하하는 연설에서
새로운 헌정체제를 의미하는 용어인 제2공화국을 사용했는데
카자흐스탄 국무장관 예를란 카린의 말에 따르면
제2공화국은 헌법개정을 통한 전면적인 국가개조를 뜻하며,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의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더욱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제2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 제2공화국은, 이미 국가원수가 내놓은 정치개혁의 시행이 올해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상당히 가깝고 가시적인 목표고
신카자흐스탄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혁명이며, 제2공화국은 국가 체제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독일의 신문사 디 벨트는 권위주의 정권 가능성도 분석했다.#
카자흐스탄은 이후에도 민주화를 위한 급진적인 정책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4월15일 "인권 분야에서 공화국의 추가적 조치에 관한 대통령령"이 시행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음 영역을 위한 인권 및 법치 분야의 추가 조치 계획을 대내외에 선포하며 승인한다
여성차별 철폐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권리와 기회의 평등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완전보장
장애인의 복지와 인권
형사 처벌 집행 중 고문 및 비인간적 대우 방지 분야
인신매매 피해자의 구제
이민자, 무국적자, 난민의 인권
UN 및 국제사회 표준화를 위한 국제기구와의 상호작용
실행계획 및 향후 실행계획의 완전한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각 부처는 매년1월25일까지 이행 결과와 추가 조치 계획에 대한 정보를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행정부, 국제기구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교육과학부는
5월7일(공화국군 창건일)과 9일(승전기념일)을 기념하는 학교집회를 열지 않기로 하였다.
학교에서는 5월7일과 9일을 기념하는 휴일 전날에 애국교육, 참전용사에 대한 존경,
승리에 대한 역사교육, 조국에 대한 사랑, 자유·평등·평화·조화의 중요성에 대한 특별 수업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5월9일 당일에 학교에서는 행사를 열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군복과 장비를 입히고
연극을 시킬 필요를 우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교육과학부 언론실은 관련지침이 교육기관에 전달되었다고 전했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 더 이상 지나친 국가주의적 교육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6월5일에는 카자흐스탄 제2공화국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루어 진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6월5일 헌법개정 및 추가사항의 채택에 관한 공화국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법률에 서명했다.
개헌의 목적은 국가 자체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으로
수정안의 주 내용은 제왕적 대통령제 독재정부에서
영향력 있는 의회와 책임있는 정부가 있는 자유민주적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최종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개헌은 권력의 대의를 대폭 강화하고 견제와 균형의 체계를 강화하며 의회의 주체성을 높일 것이며
지방의회 창설과 하원의 지역구+비례대표제 도입은
유권자의 전체 견해와 의견을 보다 완전히 포괄할 수 있게 할 것이이다.
새 헌법에는 모든 정당과 정치단체에서 대통령의 등거리 지위를 공고히 할 계획이며
또한 대통령과 고위공무원의 가까운 친척이
(준)공공 부문에서 정치 직위와 지도자 직책을 맡는 것이 금지된다.
인권 영역에서는 헌법재판소 설치, 헌법적 차원에서 인권위원회의 지위 강화,
사형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 등
이 모든 조치는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포괄적으로 준수하기 위한 법률이 새로 만들어진다.#
6월5일 국민투표는 최종 투표율 65.04%로 종결되었는데
카자흐스탄 법률상 국민투표는 투표율이 50%를 넘을 경우 성립하기 때문에 투표성립 요건은 넘겼다.
최고투표율은 튀르키스탄 78%, 최저투표율은 알마티 30%인데
알마티는 1월 시위의 중심지기도 했고,
여전히 강경진압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기 때문에 투표율이 저조한 것으로 보인다.#
6. 경제
7. 군사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카자흐스탄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역사
9. 민족
인구가 2022년 기준 약 1,920만(세계 60위)으로
나라 크기(약 272만 5천㎢, 한반도의 12배)에 비해서 인구가 상당히 적다.
비슷한 유목민족인 옆동네 중국령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몽골보다는 훨씬 사정이 낫지만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은 이유는
카자흐스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조한 초원과 사막 지형 때문이다.
날씨가 좋고 물이 많은 환경은
알마티 시가 있는 남부 카자흐스탄이나 수도 아스타나가 있는 북 카자흐스탄,
카스피 해 근방과 알타이 산맥 뿐이다.
카자흐스탄의 중앙지역은 일교차가 심한 사막 지형이라 사람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튀르크 민족인 카자흐 인 69%, 러시아인 19%,
나머지 소수 이민족(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 타타르족, 아제르바이잔인, 위구르족,
아르메니아인, 고려인, 그리스인/흑해 그리스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22년 카자흐 인 1315만, 러시아인 363만, 우즈베크인 63만, 위구르인 29만,
우크라이나인 27만, 타타르인 21만, 독일인 19만, 고려인 10만 명이다.
러시아인 비율은 주로 러시아와 인접한 북부 지역에서 특히 높다.
또한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내 소수민족 중 9번째로 많다.
현재는 대체로 러시아인은 줄어들고 카자흐 인은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이
이렇게 아시아계와 유럽계 민족들이 혼재한 다민족 국가가 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통치를 받았던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사실 카자흐스탄의 위치가 아시아와 유럽 양쪽에 걸쳐 동서양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튀르크화 이전의 카자흐스탄 지역은 백인이 주류였고
현대 카자흐 인 중에도 캅카스 계통의 피가 흘러 유라시안의 외모를 가진 이가 있다.
'카자흐'라는 명칭은 '기승자', '자유인', '독립인'의 뜻이 있는데
이름처럼 국민 기질이 그야말로 대인배다.
'카자흐'라는 명칭이 카자크(코사크)와 비슷해 혼동되기도 하며
카자흐스탄을 코사크스탄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두 명칭의 기원은 튀르크어 단어인 카작에서 유래한다.
카자흐 인은 튀르크며
코사크인은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거주하던 슬라브계 민족이다.
코사크라는 이름은 튀르크-몽골제국인 킵차크 칸국의 통치 시기에
걸핏하면 반란을 일으키던 슬라브인에게 붙인 거다.
원래 20세기 초까진 카자흐 인이 다수나 카자흐스탄이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며
중국, 유럽, 터키 등지로 이주한 사람도 많다.
특히 소련 시기 스탈린의 농업집산화 정책 당시
카자흐스탄에 닥친 대기근으로 카자흐 인의 40% 가량이 기아로 사망하거나
기근을 피하기 위해 위구르, 이란, 몽골, 아프가니스탄, 터키 등으로 가고
카자흐 인의 비율은 60%에서 30%까지 곤두박질쳤다.
이후 인구 보충을 목적으로 러시아인, 독일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크림타타르인,
고려인, 체첸인 등 타 민족이 자발적으로나 강제적으로 많이 오고
1950년대 중후반에 걸친 처녀지 개간운동으로 카자흐스탄 북부 일대가 농경지로 개발되면서
러시아인이 40%였다.
1980년대까지는 러시아인이 더 많은 상황이 오기도 했으나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인은 러시아로 대거 빠져나가고
국외에 살던 카자흐 인도 카자흐스탄으로 귀국하면서 카자흐 내 민족의 다수를 점한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에서 카자흐스탄 국가대표 선수를 보면 러시아계가 꽤 많은데
한때는 러시아계의 인구비율이 40%일 정도로 많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로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상당수가 러시아로 이주하여
현재 인구비율은 20% 이하다.
상기한 다민족적인 문화 때문에
카자흐스탄에는 131개 민족이 살지만
극심한 민족분쟁, 심하면 내전에 시달렸거나 시달리고 있는 많은 옛 소련 국가와 달리
심각한 민족분쟁이나 내전이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전반적으로 민족들 간에 조화와 평화를 잘 지킨다.
아스타나나 알마티를 돌아다니면 정말 다양한 인종이 얽히고 설켰다.
다만 카자흐스탄은 여권에 출생국과 민족명을 표기한다.
자민족 중심 정책과 민족 간 화합정책을 적절히 조화해 성공한 사례다.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국가 중에서 제일 살만한 나라로 꼽는 사람이 제법 있다.
이유는 제법 경제도 발전하고 인종차별이 없어서다.
또 유목민 특유의 이방인에 대한 관용 정신 덕분에
카자흐스탄으로 끌려온 고려인이 살아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이로 인해 고려인은 카자흐스탄을 '자신들을 키워준 땅'이라고 생각하며
카자흐 인에 대해 강제이주 당시
고려인에게 마지막 빵 한 조각까지 나누어준 고마운 민족이라고 감사해하며
카자흐 인 역시 고려인을 성실하고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한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 카작무스 김블라디미르 회장은 고려인 3세이다.
카자흐스탄의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 덕분에
이 곳 고려인의 대다수는 여타 중앙아시아 국가와 달리 카자흐스탄에 계속 살 생각을 갖고 있다.
간혹 한국인이 카자흐 현지인의 외모를 보고 고려인 혹은 한국의 후예라고 오인하는데
고려인은 카자흐스탄에서 극소수다.
이는 한국 매체에서 일부 러시아계(슬라브) 우즈베키스탄인을 보고
우즈베키스탄 = 중앙 아시아 = 카자흐스탄 = 백인이라는 극도로 단순히 도출된 편견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이주를 떠올리며 현지인을 고려인이라고 착각한다.
이는 상당히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카자흐스탄의 주류는 동북아계 튀르크, 카자흐 인이다.
카자흐 사람들 뿐만 아니라 원래 튀르크족의 외모가 동양적이고[22] 혼혈이 많이 돼
현재는 제각각 생김새가 약간 다르다.
또 무슬림인 카자흐 사람이 다수가 정교회를 믿는 고려인과 결혼하는 일은 흔치 않아서
고려인은 매우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된다.
보통 러시아에서는 중앙아시아인을 츄르까(Чурка), 즉 "멍청하고 가난한 아시아인"이라고 비하하는데
카자흐인은 잘 살다 보니 반대로 인식이 좋다.
러시아에 있는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타지크인은 외노자지만
카자흐인은 외노자가 아닌 러시아 국경 지대에서 원래부터 살던 사람이다.
카자흐인은 가족주의와 집단주의가 있어
외국에 체류하는 카자흐인은 십중팔구 같은 카자흐 인끼리 살거나 어울린다.
한편 카자흐인은 남의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데
개인주의 문화권 사람에게는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카자흐인의 선의의 표시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9.1. 카자흐
9.2. 러시아계 카자흐스탄인
9.3. 위구르계 카자흐스탄인
10. 문화
문화적 측면에선 10세기에 철학·과학·수학에 관한 수많은 저술을 남긴 작가 아부 나스르 알 파라비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필가로서 알려져 있으며,
현대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가로는 시인 잠불 자바예프와 극작가 묵타르 아우에조프를 꼽을 수 있다.
아직도 카자흐스탄에는 서사적인 민요시와 서정시를 낭송하는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예술·연극 학교가 있으며, 알마티에는 국립미술관이 있다.
산업은 작지만 영화가 좀 만들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빅토르 초이가 주역으로 나오는 이글라는 카자흐스탄 뉴웨이브를 상징하는 영화이며,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는 러시아를 경유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질적인 성장도 이뤄서
2010년대부터 아딜칸 에르자노프 같은 네오 리얼리즘식 게릴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라던가
다레잔 오미르바예프나 세르게이 드보르체이처럼 영화제에 초청되는 감독도 나오고 있다.
이중 드보르체이는 2018년 카자흐스탄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으며,
주역을 맡은 사말 예슬라모바는 카자흐스탄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가져가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국제 영화제에서 존재감이 약한 편인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조명을 많이 받는 편.
우리나라에 K-POP이 있다면 이곳에는 Q-POP이 있다.
Q-POP의 창시자면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유명하고 팬덤이
큰 보이그룹 NINETY ONE부터 MAD MEN, 등의 보이그룹 및 걸그룹, 솔로가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전체적인 특징은 K-POP과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듣기 좋다는 점이다.
애초에 Q-POP 자체가 K-POP의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아 탄생한 장르이기 때문에 그렇다.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의 개최국이다.
2017 아스타나 엑스포를 개최하였다.
10.1. 언어
언어는 카자흐어가 국어, 러시아어가 공용어(민족 간 의사소통어)이다.
카자흐스탄 정부에서는 독립 이후 카자흐어 사용을 독려하고 있지만
수도인 아스타나의 경우 약 90% 이상의 시민들이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한다.
알마티의 경우 러시아어와 카자흐어가 각각 50:50 비율이며,
우즈베키스탄과 가까운 제3의 도시인 쉼켄트의 경우 85% 이상의 시민이 카자흐어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대부분 카자흐 인은 시골 출신이 아닌 이상 러시아어를 문제 없이 구사한다.
현재 정부는 카자흐어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며,
정부의 모든 문서는 카자흐어로만 작성이 되지만 러시아어는 '민족 간 소통언어'로 사용되고 있어서,
두 언어 모두가 사실상 공용어이다.
방송도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로 동시에 송출되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사용할만큼
두 언어가 거의 동등한 위치를 갖고 있다
(보통 방송은 러시아어 채널과 카자흐어 채널이 구분되어 있지만 비용 때문에
한개 채널에서만 방송되는 스포츠, 특히 축구는 두 언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해설할 정도로 대등하게 사용된다).
초등교육에서도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수준이라
사실 러시아어를 할 줄 알면 카자흐어를 전혀 못해도
외부인이 카자흐스탄 여행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 관광을 부담없이 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는 달리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특별한 억양 없이 잘 구사한다.
오히려 러시아 사람들은 카자흐어가 러시아 악센트의 우즈베크어라고 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도시지역에서 카자흐 인 여자들은 모국어인 카자흐어보다 러시아어를 선호한다.
이유는 촌스러워 보이거나 시골 출신으로 오해할까봐.
반면 카자흐 인 남성들은 이를 허세 취급한다.
러시아인이나 기타 민족의 경우는
대부분 모국어가 러시아어이며 심지어 그 중 일부는 카자흐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한다.
2022년 카자흐스탄 인구의 91%가 카자흐어를 말할 수 있고
카자흐스탄 인구의 94%가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다.
읽고 쓰는 걸 모두 따지면 러시아어는 85%, 카자흐어는 81%.
또한 대개 카자흐어는 기본적인 생활언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카자흐어화 정책을 펴면서 모든 공문서를 카자흐어로 작성하게 하도록 했는데,
기존의 러시아어로 작성된 문서를 카자흐어로 번역할 번역가를 구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이유는 거의 대부분의 기술용어가 카자흐어보다는 러시아어에 많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용어는 러시아어 단어를 차용해서 쓰고 있고,
실제 카자흐어에도 있다 해도 이를 아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또한 생활언어는 카자흐어로 할 줄 알아도 고급스러운 문법에 맞는 카자흐어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쉼켄트 같은 지방의 카자흐어 사용률이 매우 높은 도시에서도
카자흐어를 쓸 때 그 중 절반, 특히 고급단어는 러시아어 단어를 섞어서 쓴다.
자주 사용하는 생활단어, 관용어구 등은 러시아어에서 많이 차용한다.
마치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교포가 영어를 마구 섞어서 한국어를 하는 듯이 말한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모르고 카자흐어만 배운 외국인은 카자흐 인과 자유로운 대화가 쉽지 않다.
카자흐어는 역사적으로 보면 페르시아어, 몽골어와 아랍어, 러시아어에서 차용된 말이 많다.
아랍어는 이슬람교와 쿠란을 통해 도입되었는데 일반적으로 페르시아어를 매개로 한다.
근년에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특히 러시아어로부터의 문화어 어휘의 차용어가 많이 쓰인다.
카자흐어의 발음을 듣고싶다면 카자흐 인의 민속음악을 들어보자.(#)
학교도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터키어처럼
카자흐어 문자를 키릴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카자흐스탄 정부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들의 반발이 있다.
이미 익숙해진 문자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카자흐스탄의 공용어기도 한 러시아어가 키릴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카자흐어도 동일한 문자를 쓰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라틴 문자로 바꾸려는 공감대로 기울어지는 상황으로
2017년4월12일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카자흐어의 표기를 로마자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2025년까지는 로마자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은 2018년2월27일 이전까지는 국무회의에서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를 동시에 사용했지만,
2018년2월27일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지시로
국무회의에서 러시아어 사용이 금지되고 카자흐어로만 진행되었다.
카자흐스탄내에도 카자흐어와 러시아어외에도
다른 소수언어(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타타르어, 우즈베크어, 둥간어, 위구르어, 독일어 등)도 쓰이고 있다.
그리고 터키와의 교류와 협력을 자주 하는 영향으로 터키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최근들어서는 영어도 어느정도 배우고 있다.
10.2. 종교
종교는 카자흐계가 주로 믿는 이슬람 수니파, 러시아계가 주로 믿는 러시아 정교회가 주를 이룬다.
카자흐 인들 대다수는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클럽도 잘 다니고 술도 잘 마시는 경우가 많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 거리낌없이 클럽이나 펍 등의 유흥주점에 출입한다.
일부 교환학생이나 유학생들은 주말마다 외국인 출입이 허가된 클럽에 출석한다.
터키인보다도 더 많이, 잘 마신다.
바로 옆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의 경우에는
술과 돼지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가끔 히잡도 나오는데 비해
카자흐인들은 나 무슬림이요 하면서도
삶의 양식에 있어서는 좀 독실하다 싶은 미국인이나 한국인 크리스천들보다도 더 무종교인처럼 산다.
흔한 이슬람교의 예배 역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예배를 하긴 하지만, 가정에서는 거의 안 하며 하루에 5번씩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여성의 복장에도 딱히 제한이 없어서, 히잡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돼지고기는 잘 안 먹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돼지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
한편 무슬림이 대다수이다 보니 술을 금지할 것으로 여기겠지만
아시아에서 한국과 넘사벽인 몽골을 제외하면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이다.
사실 튀르크인은 원래부터 무슬림은 아니었고
추운 기후를 보이는 스텝을 돌아다닌지라 술을 끊는 건 불가능했다.
튀르크인은 몽골인과 함께 모든 종교에 관대했는지라 이슬람 원리주의에 경기를 일으키는 성향이 있다.
다만 정교회를 제외한 기독교(특히 개신교)는 좋아하지 않아 많이 반대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선교사들의 비자를 빡빡하게 주는 편이었는데 점점 더 심해진다.
이는 다양한 민족을 '한 국가' 통일체로 만들기 위해
이슬람을 국가정체성으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구 26%가 정교회를 믿기에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적어도 정교회를 건드리는 건 법으로 막고 있으며 법적으로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금기시하고 막는다.
이는 유라시아 이슬람 나라들이 대개 그렇다.
하지만 외부 기독교 탄압이 심한 편이라 크리스티아노포비아가 꽤 있는 나라로 들어간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아랍권에서는 카자흐스탄을 "말로만 무슬림"이라고 깐다.
물론 러시아 쪽에서도 "말로만 무슬림"이라고 까는데,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인정한다.
굳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와하비즘 국가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금요 예배를 중시하기 때문에 휴무일이 금요일이지만
카자흐스탄의 휴무일은 일요일이다.
심지어 연말에는 거리 곳곳 내지는 카자흐스탄인 집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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