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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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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비4해22-06-25 14:04 View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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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1950,9,15) 

UN군

미군  

제7합동기동부대  - 지휘관: 아서 듀이 스트러블 해군중장

혼성 제10군단 - 지휘관: 에드워드 알몬드 육군소장

해병대 제1해병사단 - 지휘관: 올리버 스미스 해병대소장

육군 제7보병사단 - 지휘관: 데이비드 G. 바 육군소장

한국군

해병대 제1연대 - 지휘관: 신현준 해병대대령(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

육군 제17연대 - 지휘관: 백인엽 육군대령(미 제7보병사단에 배속)

영연방 연합군(영국군,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혼성) - 지휘관: 앤드류스 해군소장

네덜란드군


북조선 인민군

팔미도 방어진지 2개 중대와 인천 시가지 2개 대대


1592년 임진왜란의 왜군이 실패한 이유는 조선왕의 도주와 부산에서 평양까지의 긴 병참로 때문이다

1950년 6.25전쟁에서 북조선 인민군이 전쟁 초기에 부산까지 완전 점령을 실패한 이유는 

인민군의 기갑부대 소진, 38도선에서 낙동강까지의 긴 병참로, UN군의 제공권과 제해권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확율이 '1/5천'이란 것은 자화자찬을 위한 허풍허구에 가깝다

인천의 조수간만 차가 8m정도, 시간은 9시간이라 후속 병참의 단절이란 위험이 있지만

예을 들면, 부산이라 하면 기장~다대포 구역이듯이, 상륙부대를 인천 주변에 분산전개하면 된다

2차 세걔대전에서의 노르만디 상륙작전도 수십km로 분산전개했다 


맥아더 장군은 그의 명성과 직위에 비하면 태평양전쟁과 6.5전쟁에서 패장에 가깝다

충무공 이순산 장군은 부임하자 바로 군선 무기 식량피복 및 장병 확보의 전쟁준비에 착수했다

맥아더 장군은 아무 준비 없이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다가 일본군의 상륙에 호주로 도피했다

태평양전쟁 기간중 일본군 200만명과 미군 40만명이 전사했다

대부분이 50여회에 걸친 상륙작전에서 발생한 것이다

중공군이 참전할 것이라는 정보를 무시하고 후속 예비대와 보급로 확보 없이 무작정 북진을 했다가 

중공군과 만난 첫날 1만5천명이 전사했다(6.25전쟁 중 미군 전사 3만8천명 - UN군 전사 4만명) 

적진의 이동에 관한 관측정보망이 허술했고, 방어전략은 없이 공격전략만을 구사한 결과다

1905년 로일전쟁에서 일본해군은 싱가포르 필리핀 등지에서부터 러시아 함대의 이동속도를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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