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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엇갈린 두 러시아 지휘자의 길
김성현 기자 2022.03.29 03:00
러시아 음악사의 ‘산 증인’ 같은 두 극장이 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다.
볼쇼이 극장은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가 초연된 곳이다.
마찬가지로 마린스키 극장도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과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초연했다.
두 극장을 이끌어 온 러시아 명지휘자들이
볼쇼이의 투간 소키에프(44)와 마린스키의 발레리 게르기예프(68)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지휘자의 선택은 달랐다.
소키에프는 볼쇼이 극장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최근 사임 성명을 발표하면서 “어떠한 갈등에도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음악감독을 맡았던 프랑스의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에서도 함께 물러났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구사회는 러시아 예술가와 스포츠 스타들에게 푸틴 정권에 대한 贊反 의사를 묻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적잖은 러시아인들이 강한 압박을 느낀다는 사실이 소키에프의 사례에서 드러난다.
그는 “내 동료, 예술가, 배우, 성악가, 무용수들이 위협을 받거나 무례한 취급을 받는 걸 지켜보면서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침략국의 國籍을 지니고 활동하는 예술가와 스포츠 스타들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소키에프의 사임은 ‘압력의 최대치’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반대로 ‘인내의 한계치’를 시험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마린스키 극장의 게르기예프다.
그는 러시아 침공 이후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에든버러 페스티벌 명예회장, 뮌헨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등 그가 맡았던 직위들도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도 게르기예프가 묵묵부답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상 푸틴 대통령과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최근 푸틴은 볼쇼이와 마린스키의 운영을 아예 통합해서
게르기예프에게 일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둘의 ‘밀월 관계’는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외관계위원장 등을 맡으며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게르기예프 역시 러시아 작품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바탕으로 세계 음악계에서 승승장구했다.
푸틴이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황제)’라면, 게르기예프는 ‘음악황제’와도 같았다.
게르기예프가 노골적으로 푸틴의 입장을 편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2012년 푸틴의 대통령 3선 도전 때는 선거광고에 출연했고,
2014년 크림 반도 병합 당시에도 러시아를 옹호했다.
급기야 세계 음악계에서는 게르기예프 퇴출이 ‘푸틴 반대’의 동의어가 된 것이다.
게르기예프가 즐겨 연주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소련 침공으로 무려 872일간 지속됐던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기리기 위한 작품이다.
당시 러시아 주민들은 혹독한 굶주림 속에서도 도시를 지켜냈다.
이 레닌그라드가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이 교향곡이 위대한 이유는 침략자가 아니라 저항자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르기예프는 나치의 침공에 맞서 싸웠던 러시아가 지금은 침략자로 변모했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감는다.
앞으로 그가 어떤 명분으로 이 교향곡을 다시 지휘할 수 있을까.
예전 게르기예프와 전화 인터뷰를 할 때 푸틴과의 ‘밀월 관계’에 대해서 질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음악 외적인 내용보다는 음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러시아의 침공 이전에는 그의 말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다면, ‘러시아 음악황제’의 퇴출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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