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Clean Sea Clean World

    게시판     자유게시판
게시판

CHOKWANG SHIPPING Co., Ltd.

자유게시판

2048년에 건국100주년을

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24-07-21 04:28 View52

본문

08 2024 MAGAZINE

편집장의 편지

“대한민국은 2048년 건국 100주년을 기념할 수 있을까?”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8월은 亡國과 解放과 建國의 달입니다. 

日帝에 나라를 빼앗긴 지 35년 만에, 

先烈들의 간난신고(艱難辛苦)와 미국 등 연합국의 勝戰 덕분에 해방이 되었고, 

다시 3년여의 좌우익 투쟁 끝에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예정되어 있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해방 후의 역사는 얼마든지 다른 길로 빗나갈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해방 직후 정국의 주도권을 선점한 것은 左翼세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투쟁에서 좌익은 우익을 훨씬 압도합니다. 

좌익은 전평이니 전농이니 하는 전위(前衛) 조직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대중을 현혹하는 선전선동에도 능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여론조사는 아니겠지만, 

美軍政이 조사한 한 가두 여론조사에서는 

70~80% 이상이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물결을 거스르면서 대한민국 건국으로 가는 길을 연 가장 큰 공로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승만 박사였습니다. 

그는 ‘공산주의는 절대 안 된다’는 투철한 신념을 바탕으로 

冷戰이 시작되는 국제정치의 기미를 정확하게 읽었고, 

38선 이남에서만이라도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는 38선 이남에서 먼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이를 기지로 삼아서 한반도 전체의 자유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일성과 소련의 ‘민주기지론’에 맞서는 ‘자유기지론’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기지가 되기에 38 이남은 너무나 허약했습니다. 

남한 통치를 맡고 있던 미군정은 체계적인 정치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 군정사령관은 용감한 야전군인이었지만, ‘정무감각’은 제로(0)인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해방 후 상당 기간 동안 미군정은 좌익의 발호를 방치했습니다. 

심지어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국방경비대원 모집 시 사상 검증을 하지 않아, 

좌익세력이 군대 내로 마음대로 침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좌익이 총파업을 하고, 폭동을 일으키고, 학살을 일삼아도, 

‘친일’이라는 낙인에 주눅이 든 경찰은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건국전쟁’의 무명용사들

이때 무기력한 軍警을 대신해 건국을 위한 투쟁에 앞장선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익청년학생단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주력은 북한에서 38선을 넘어온 속칭 ‘38따라지’들이었습니다.

 

左翼史觀이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간단하게 낙인찍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비유나 修辭로서가 아니라 진짜 ‘전쟁’을 치렀던 戰士들이었습니다. 

죽창과 쇠파이프와 총탄이 난무하고 폭탄이 터지는 戰場에서 피를 흘리며 싸웠던, 

‘건국전쟁’의 無名勇士들이었습니다. 

원로 언론인 이영석 선생은 이들의 투쟁을 다룬 《건국전쟁》(조갑제닷컴 2018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민국이 20세기 마지막 50년에 이룬 현대화는 

한민족 반만년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금자탑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성취는 세계가 찬양한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선 찬양도, 기념도, 기억도 없다는 것 역시 기이한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자랑스러운 자기 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헐뜯고, 自虐하는가? 

한국 이외에 그런 나라가 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한다.

 

건국전쟁은 한국의 미래를 놓고 펼치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 좌우로 갈라진 세력의 부딪힘이다. 

청년들은 죽이고 죽임 당하는 전쟁을 했다. 

분단이, 애국심이, 신념이, 염원이, 그들의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버리게 만들었다. 

애국심, 용기, 참을성 등 그들이 보여준 어느 것 하나에도 나는 미치지 못하는 경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일본 臣民으로 태어나 천황에 충성하는 일본 국민으로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祖上의 나라가 일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상이 지켜온 가치를 이어갈 자기 나라를 그리며, 

아직은 ‘이름조차 없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에 목숨을 걸었다.

 

배고픔을, 외로움을, 죽창에 찔리는 고통을 참고 또 참는 놀라운 인내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증오만치 사랑도 알았고, 동지애도 있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들 세대가 近代 이전에 멈추었던 후진의 땅에 민주화의 탑을 세웠고, 

수천년 이어져온 가난이라는 유산을 풍요로 바꾼 세대가 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국전쟁에서 다져진 애국심이었고, 참을성이고, 부지런함이고, 간절한 소망의 獻身일 것이다.〉


여당 당권 주자들의 이전투구

‘건국전쟁’의 무명용사들이 피 흘려 세운 나라가, 

그 건국 세대의 위대한 성취가 지금 헛되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건국전쟁’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하로 잠복했던 좌익세력들은 

민주화와 進步의 탈을 쓰고 다시 세상으로 기어 나와 

어느 사이엔가 우리 사회의 主流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4·10총선 결과는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나 국민의힘의 패배가 아닙니다.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내로남불을 일삼고, 부패했던 세력을 제압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제압당해버린 것 자체가 

건국세력의 후예인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노쇠함과 무기력함과 무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더 암담한 것은 

보수정치세력이 스스로 반성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마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국민의힘 유력정치인들이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보여주고 있는 泥田鬪狗는 정말 눈뜨고 못 봐줄 정도입니다

外戰에는 약하고 內戰에는 강한 이 민족의 못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누가 지금 당내 경쟁후보를 향해 싸우는 것만큼의 투지를 갖고 좌파세력과 싸운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親尹이니 親韓이니 하며 싸우다가 총선을 철저하게 말아먹고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당은 벌써부터 法治主義 원칙과 三權分立에 반하는 입법과 

갖가지 명목의 특검법들을 쏟아내면서 ‘탄핵쿠데타’로 가는 길을 착실하게 닦고 있는데, 

여당 당권주자, 대권주자라는 사람들 중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그 어려운 사법시험에 합격한 ‘엘리트’라는 사람들, 

대한민국에서 온갖 혜택을 받으며 출세한 사람들이, 

애국심에서는 80년 전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던 ‘38따라지’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산업화–민주화–조선화

10~20년 전에는 ‘先進化’라는 담론이 유행했습니다.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이제 선진국으로 가자’는 당찬 외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朝鮮化’라는 자조가 人口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586좌파운동권세력들 때문에 나라가 다시 前近代로 후퇴하고 있다”는 탄식입니다. 

심지어는 

“6·25 때는 총을 들고 싸워보기라도 했지만, 이러다가 총 한방 못 쏘아보고 공산화되는 것 아니냐?” 

“대한민국은 살아남아서 2048년에 건국100주년을 기념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망국, 해방, 건국의 달에 다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참담하기만 합니다. 

그럴수록 ‘건국전쟁의 무명용사’들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아직은 이름조차 없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에 목숨을 걸었던 분들도 있는데, 

‘세계에 우뚝 선 나라’가 된 대한민국 덕분에 한껏 자부심을 느끼며 누릴 만큼 누리고 살아왔던 우리가 

이제 와서 이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내려놓아서야 되겠습니까? 

애국가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104.♡.203.139 작성일

1945년 2차 세계대전 후 바닥상태에서
세계경제 경쟁이 10위 이내에 오른 국가가
한국, 서독, 일본 3개국 뿐이다
그 원동력은 자유민주주의 경쟁시장경제 체재였다
쏘련 중국 북조선은 인민민주주의 통제경제 체재였다
그리고 부유국과 빈국으로 나누어 졌다
부국강병이 국태민안과 자유를 보장한다

Total 3,582 / 1 PAGE
자유게시판 LIST
NO. TITLE WRITER
3582 싸가지 새글 최고관리자
3581 응급실 진료공백 최고관리자
3580 키오스크 주문 식당 댓글1 최고관리자
3579 휴대전화 - 뇌암 댓글1 최고관리자
3578 중국 인력시장 댓글1 최고관리자
3577 페니키아 최고관리자
3576 전기차 수리비 최고관리자
3575 중국경제 댓글1 최고관리자
3574 답변글 점심식사 최고관리자
3573 K조선 댓글1 최고관리자
3572 은퇴이민 댓글1 최고관리자
3571 공동체 감각 댓글2 최고관리자
3570 반일 캠페인 댓글1 최고관리자
3569 답변글 재일교포 댓글1 최고관리자
3568 정신건강 댓글1 최고관리자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