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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에서 모히토? 자본주의의 맛에 놀랐다
[아무튼, 주말] 최연진 기자 2025.04.12. 01:42
고요하고 느린 섬나라 '인도양의 보석' 몰디브
몰디브 北말레 환초에 있는 주메이라 올하할리 리조트 인근의 ‘샌드 뱅크’.
썰물 때 나타나는 인도양 한가운데 하얀 모래섬에서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요가를 체험한다.
적막도 때로는 알람이 된다. 오전 6시, 너무 조용해서 깼다.
휴대폰은 무음으로 바꿔둔 지 오래고 재잘대는 아이도 없는데
눈치 없는 눈꺼풀이 제 마음대로 하루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나치게 고요한 공간을 지나 객실 통창을 열었다.
인도양이 강렬한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잠은 그 길로 달아났다.
몸이 깨어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숙소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바다에 떠 있는 독채 형태다 보니 1~2초면 바다와 마주한다.
코앞에 펼쳐진 형형색색 산호초 사이로 흰동가리, 블루탱 같은 열대 해수어들이 헤엄치는 게 보였다.
‘내가 아직 꿈을 꾸나’ 싶다가도, ‘넌 지금 몰디브에 있어, 몰디브’라며
조용히 휘감아오는 바다에 정신이 번쩍. 그래, 진짜 기상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화관(花冠) 속으로
인도양의 보석이라 부르는 몰디브는
동서로 약 130km, 남북으로 820km에 걸쳐 1200여 산호섬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다.
몰디브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산스크리트어 ‘maladvip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꽤나 믿음직스럽다.
화관(花冠)이라는 뜻이다.
섬 대부분은 해발 1~2m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다와, 바다에 쏟아진 하늘이 손에 닿는다.
많고많은 산호섬 중 사람이 사는 섬은 약 200여곳, 그중 160여곳이 리조트 섬이다.
통상 한 섬에 한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수도 말레 인근의 벨레나 국제공항에 도착한 여행객은
각자 자기 리조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스피드보트에 올라타 50분쯤 ‘물멍’을 하며 바다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북말레 atoll(환초)에 있는 Olhahali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기다리던 리조트 직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는 길에 돌고래를 봤나요?” 첫인사에 미소가 번졌다.
고개를 젓자 “머무는 동안 볼 수 있을 테니 걱정 말라”며 위로했다.
더 먼 섬을 찾아가려면 수상비행기나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도 한단다.
리조트 직원들은
“어린아이가 있거나 대가족이라 이동 시간이 긴 게 부담스럽다면
국내선 환승이 필요한 숙소보다는 스피드보트 zone을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해변에서 어린아이와 패들보드를 타며 바다를 즐기고 있는 가족.
한 커플이 뜨거운 햇살을 피해 섬 한가운데 야자수 숲길을 걷고 있다.
◇온 가족이 즐기는 에메랄드 빛 바다
바다에서 노는 방법이 이렇게 많다니.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바다에 잠시 정신을 팔았다가 부랴부랴 남으로 북으로 몸을 움직였다.
“내가 태어난 마을에 선원 한 사람이 살았어요
그는 잠수함 속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우리에게 들려 주었어요~”로
시작하는 비틀스의 ‘옐로 서브머린’을 들으며 선착장으로 향하자 진짜 반잠수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색은 아니었지만. 반층 정도 내려가니 창밖으로 바닷속이 훤히 보인다.
딱 10분 정도 이동하자
온갖 산호초 사이로 크기 1m 넘는 바다거북이, 열대어 수백 마리가 쉴 새 없이 들락날락했다.
가오리가 반잠수정 창가를 쓸고 지나갈 땐 나도 모르게 “와~” 탄성이 나왔다.
잠수가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도 구태여 큰 용기 낼 필요 없이 바닷속을 탐험하는 방법.
몸에 물이 묻는 건 싫어하지만 물고기 구경은 좋아하는 세 살배기 아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어가야지.
몰디브 바다 속을 탐험할 수 있는 반잠수정.
4방 천지가 바다다.
스노클링을 해야지 마음만 먹으면 스노클 마스크와 오리발을 착용하고 아무 방향으로나 뛰어들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본격적인 방법도 있다.
보트를 타고 20분 정도 바다로 나가면 조그마한 백사장 섬이 하나 나온다.
썰물 때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는 ‘sand bank’다.
크기도 계절마다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고.
모래섬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바다에 몸을 맡기면 잠시 물고기가 된 것 같은 착각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스노클링이 아니더라도 샌드 뱅크를 즐기는 방법은 많다.
테이블을 펼쳐놓고 와인을 마시는 사람,
하얀 드레스를 펼치고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
인도양 한가운데 고요한 백사장에서 공부를 하든 기사를 쓰든 재미가 없을까?
몰디브 올하할리섬 인근 '샌드뱅크'에서 즐기는 식사.
몰디브는 오랜 기간 ‘신혼여행 성지’로 유명했다.
하지만 허니문 여행지로만 활용하기엔 아깝다.
리조트에서 보트를 타고 20분쯤 나가면 초등학생 몸통만 한 물고기를 낚아볼 수 있다.
카약이나 패들보드, 카이트 서핑 같은 수상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적잖다.
만사가 귀찮다면 튜브 하나로 해변을 누비며 작은 상어를 만나면 된다.
리조트 안엔 해양생물 수업을 진행하는 키즈클럽,
크로스핏처럼 단체로 운동할 수 있는 헬스클럽,
바다를 바라보며 마사지를 받는 스파센터도 있다.
커플이 아니라 혼자나 가족끼리도 좋다. 몰디브를 즐길 마음만 준비돼 있다면.
프라이빗 백사장을 품고 있는 객실. 주변은 모두 산호가 훤히 보이는 맑은 바다.
몰디브식 특제 소스를 곁들여 먹는 소고기 요리. /주메이라 몰디브 올하할리
◇지역 어부와 떠나는 미식 여행
올하할리섬은 몰디브 현지어로 ‘물고기 떼가 모이는 장소’를 뜻한다.
리조트가 생기기 전에 해 질 녘이 되면 어부들이 온종일 낚은 생선을 배에 싣고 해변으로 모였다.
야자수 아래 불을 피워 생선을 굽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런 문화는 그대로 전수돼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몰디브식 전통 배 Dhoni에 올랐다.
낚싯대 없이 낚싯줄만 이용하는 몰디브 전통방식으로 물고기를 잡아봤다.
줄 끝에 매단 납 덩어리와 고등어 미끼가 영 미덥지 않았다.
‘이러니 낚일 리가 있나’ 연장 탓을 한참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잡는 족족 월척이다.
팔뚝만 한 생선 대여섯마리를 식당에 가져가자 곧바로 손질해 식탁으로 내 왔다.
두툼한 살집에 칼집을 내 구운 건 한국식 참돔구이에 가깝고, 튀긴 건 영국식 피시 앤드 칩스를 닮았다.
몰디브는 바다에서 모든 걸 얻는 나라다.
식탁에도 바다의 인심이 넉넉하다.
하루 세끼 생선과 해산물이 빠지지 않고 오른다.
지역 어부들은 짧게는 당일, 아무리 길어도 사흘 안에 리조트로 고깃배를 몰고 와 생선을 댄다.
망망대해에서도 신선한 생선 타르타르, 바나나 잎 생선찜 같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이유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최적 여행지.
숙소 내 개인 풀에 띄워놓고 즐기는 ‘플로팅 조식’. 바다 위에서 식사하는 기분이다./최연진 기자
몰디브의 '플로팅 조식'.
◇몰디브의 보물, 참치와 코코넛
몰디브 음식은 자연과 가까운 삶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참치와 코코넛.
인도양에서 잡은 참치는 배 위에서 할랄 방식으로 손질해 각 리조트로 가져온다.
셰프들은 매일 이 참치를 삶고, 말리고, 훈제하거나 커리로 끓인다.
몰디브의 대표 아침메뉴 ‘마슈니’는 잘게 썬 참치에 코코넛, 양파, 향신료, 라임주스를 섞은 간단한 샐러드다.
짭짤한 맛에 몰디브 바다가 담겨 있는 셈이다.
코코넛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다.
나무껍질로는 지붕을 만들고 과육은 요리에 넣거나 간식으로 먹는다.
반가운 사람이 오면 코코넛 주스를 건네고, 오일은 마사지와 미용에 쓴다.
아이들은 야자수 나무를 깎고 바나나 잎으로 광을 내 자기만의 보물상자를 만들며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란다.
몰디브표 식재료는 세계 각국에서 온 셰프들의 손끝에서 다채로운 요리로 변신한다.
두바이에서 일식 마스터를 사사했다는 셰프 지얀은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요리를 선보였다.
어부들이 전날 납품한 참치로 ‘매운 참치롤’을 마는 손길이 꽤 야무졌다.
고슬고슬 지은 밥에 새콤달콤하게 간을 해야 한다며 촛물을 섞는다.
설탕 대신 온종일 끓인 몰디브 코코넛 오일로 단맛을 냈다.
“스위트 칠리를 소스로 쓰는 게 원래 조리법이지만,
취향에 따라 고추장이나 와사비를 넣어도 맛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일본손님 앞에서 요리시범 보이기가 제일 떨린다”면서, 한국인 기자를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히토 칵테일. /게티이미지뱅크
◇자발적 고립이 주는 위로
섬을 한번 선택했다면, 중간에 나가기 쉽지 않다. 일종의 ‘자발적 고립’.
어느 섬을 고를지 알려주는 전문 유튜버까지 등장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지루함을 걱정하기엔 매 순간이 별빛 같다.
수상 액티비티에 취미가 없다면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산책마저 고단하다면 해변 중간중간에 놓인 나무 벤치와 야자수 그네가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1섬 1리조트’라고 하지만, 전체를 갈아엎지는 않는다.
섬 한편에 ‘비밀의 숲’을 만들어두고, 이따금 걷기 좋아하는 여행자들에게 문을 열어준다.
무성한 야자수 사이를 걸으면 서늘할 정도다.
해변에선 만나기 어려웠던 앵무새나 도마뱀을 쫓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섬은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크다.
이동 수단이 마땅찮다. 그러나 이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이면 4~6인용 카트를 몰며 지나가던 리조트 직원들이
“어디까지 가세요? 타실래요?” 말을 걸어온다.
어느 순간부터는 카트도 타지 않고 조용히 두 발로 산책을 즐기게 된다.
늦은 오후, 바다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이어폰으로 잘만 흘러나오던 음악이 난데없이 뚝 끊겼다.
맙소사, 언젠가 저장해 둔 스파이스 걸스 노래밖에 선택지가 없다.
딱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삶의 속도가 잠시 느려졌을 뿐.
몰디브를 떠나기 전에 통과의례처럼 모히토를 한잔 마셨다.
주문하다 깜짝 놀랐다.
이슬람 국가라 주류금지고 리조트에서만 술을 팔다 보니 모든 술이 비쌌다.
모히토 한잔은 약 4만원. 맛은 어땠냐고? 자본주의의 맛이란 게 있다면 바로 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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