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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무튼, 주말
'월 매출 1억' 사장님의 꿈 품고… 꽃 피어라, 치킨!
[아무튼, 주말] 정시행 기자 2025.05.17. 13:19
이천 치킨대학 창업준비해 보니
모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이 운영하는 경기도 이천 소재 ‘치킨대학’의 조리실습실.
예비창업자들이 2주간 받는 합숙교육에 참여한 본지 정시행 기자가 160도로 끓는 기름에 치킨을 튀기고 있다.
튀김표면의 곱슬한 컬이 잘 살면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앗! 눈 깜짝할 새 닭다리 반죽과 껍질이 벗겨졌다.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튀겨지던 치킨 중 닭봉 두개를 건져내 살짝 칼집을 내는 중이었다.
속살에 분홍색 색소 단백질이 남아 덜 익은 것처럼 보이는 pinking 현상을 방지하는 작업.
그런데 다리뼈 잡은 집게를 쥔 왼손의 힘이 풀리면서, 오른손에 쥔 칼날이 헛돌며 미끄러졌다.
지켜보던 교육관계자가 말했다.
“이건 못 팔겠네요.”
“네? 요만한 흠인데… 한마리 다 버려요?”
“당연하죠. 어느 소비자가 2만원 넘게 내고 이걸 그냥 먹겠어요?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죠.”
황금빛 기름이 지글지글 끓었다.
끈적한 유증기에 눈앞이 뿌옇다.
(가상의) 주문을 받은 지 15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포장까지 마쳐 배달로 넘겼어야 하는 시간, 새 닭에 튀김옷부터 다시 입히라니. 입이 바짝 말랐다.
“이렇게 한번 실수하면 멘붕 와서 다음 주문도 제대로 처리 못 해요.
재료낭비는 그렇다 치고 악플 줄줄이 달리면 장사 끝입니다.”
다른 예비 치킨집 사장들과 함께 교육 받은 본지 정시행 기자가
반죽옷 입힌 닭을 튀김가루 트레이에 옮겨담고 있다.
튀기는 시간 10분을 포함, 주문 받은 지 15분 만에 배달로 넘겨야 한다.
위생마스크는 사진촬영 때만 잠시 벗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곳은 경기도 이천시 ‘치킨대학’의 조리실습실.
한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연수원에서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교육에 참여했다.
기름에 흠뻑 튀겨져 치킨 무와 함께 오는 닭요리에만 허락된 이름, 치킨.
“치킨집이나 할까?”처럼,
내 점포에서 월 억대 매출을 올리는 사장님의 로망.
그러나 진정한 치킨의 길은 험난했다.
“10초도 아껴야” 레시피 달달 외워
치킨대학은 봄이 가장 붐빈다.
여름 치맥 시즌과 가을 성수기를 앞두고 창업하는 이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함께 교육받은 이들은 치킨대학 824기 창업자 13명.
이미 서울 강남·목동과 경기도 안산, 세종, 강원 속초 등 전국에 점포를 마련한 예비사장들로,
올해로선 치킨창업 막차를 탄 셈이다.
이들은 5월 중순 개업을 코앞에 두고 2주간 본사 치킨대학에서 합숙하며 치킨집 운영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운다.
조리부터 물류관리, 세무·노무 지식과 식품위생법 등 관련법규, 마케팅강의와 개인지도가
아침 9시부터 밤 9~10시까지 이어진다.
치킨대학 측은 “12시간 넘게 일하는 실제 매장과 같은 시간·강도로 맞췄다”고 했다.
반죽옷 입힌 치킨을 다시 특제 튀김가루에 묻힌다. 찻잎 덖듯 가볍게 섞는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맛을 내야 하는 브랜드 음식답게 매뉴얼이 엄격히 표준화돼 있다.
생닭 핏물 빼는 시간, 밑간재료의 g단위 분량, 반죽 물온도, 튀김가루에 굴리는 횟수,
기름에 넣고 몇분 뒤 흔들어야 하는지가 다 다르다.
사장들은 50여메뉴 레시피를 달달 외워 매일 쪽지시험을 본다.
“왜 외워야 하죠? 써 붙여두면 될 텐데.”
“대선일 개표방송 때 배달주문이 몰린다고 쳐요.
1시간에 30~40마리씩 튀겨야 해요.
고개 들어 레시피 찾아보는 순간 10~20초 지나갑니다.
한마리당 그만큼씩 누적되면 뒤로 갈수록 확 밀리죠.”
기자는 대표 메뉴인 ‘황금 올리브 치킨’을 만들어봤다.
기본적인 맛의 프라이드치킨.
1kg 안팎 10호짜리 닭을 여덟 조각 내 밑간해 재운다.
반죽을 고운 체에 걸러 덩어리를 없앤다.
그걸 정확히 계량해 고기에 고무 주걱으로 섞고, 특제 튀김가루 위에 펼쳐놓고 열번쯤 찻잎 덖듯 섞는다.
그리고 예열된 기름에 닭을 ‘쭉 밀어 던지듯’ 넣는 게 포인트.
“그래야 curl(튀김표면의 미세한 곱슬)이 잘 살아요. 소위 ‘꽃이 핀다’고 하죠.”
가맹점주들은 개업하면 5평 정도의 고독한 주방에서 매일 12시간 이상 닭을 튀기게 된다.
'쭉 밀어넣듯' 던지는 게 어려워 결국 '퐁당퐁당' 담그게 됐다.
결국 이게 문제가 됐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근로자 4명 중 1명이 자영업자인 나라에서 치킨집은 생계형 창업의 대명사다.
차리기 쉽지만 망하기는 더 쉽다.
물러설 수 없는 실전을 코앞에 둔 예비사장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실습장은 침묵 속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했다.
본사 임직원이 교육받는 맞은편 실습실에선 간혹 웃음소리도 흘러나왔지만, 여긴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웠다.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닭날개 끝을 똑똑 자르고, 튀김기 타이머를 곁눈질하며 양념을 준비하고,
꽃 핀 닭을 채반에 받쳐놓고 포장상자를 탁탁 접었다.
열기로 가득 찬 5평 남짓한 주방에서, 이들은 날마다 육신과 영혼을 갈아 넣을 것이다.
퇴직금 털고 가족 모아 ‘영끌 창업’
한 중년 교육생이 닭날개에 반죽옷을 입히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과 고용주 의무강화로,
신규 가맹점주들은 대개 처음부터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고 가족끼리 해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치킨 조리매뉴얼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메모하고 읽은, ‘모범생’ 티가 확 나는 중년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유명 중견기업 임원을 지내고 작년 말 희망퇴직했다는 50대 후반 김모씨 부부.
“퇴직금으로 세종시에 가맹점을 내고 5월16일 개업한다”고 했다.
남편 김씨는
“창업은 처음이지만 큰 기업 생산라인에 있었으니 이 정도 오퍼레이션(운영)은 자신 있다”고 했다.
전업주부로 살아온 아내 전모씨가 옆에서
“아유, 집에선 라면 끓이고 계란프라이나 해본 양반이에요”라며 웃었다.
“두분 다 새로운 일 하시려니 떨리겠어요” 했더니 부부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일이 서툰 개업 초반엔 아르바이트생 2명은 써야 한다지만,
이들은 인건비를 아끼려 둘이서 해나갈 요량이라고 했다.
목표치는?
“처음엔 욕심 안 부리고요,
3개월 뒤엔 하루 40마리씩 팔아 일매출 100만원, 월매출 3천만원까지 만들려고요.”
월매출 3천만원.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점포사장들에겐 최저시급(1만원)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뜻한다.
본사 가맹비에 기기구입비, 권리금 등 초기 창업비용 1억여원에
매달 들어가는 임차료와 재료비, 배달수수료와 마케팅비용 등을 제외한 순익이 매출의 15~20%면 잘된 장사라고.
업계에선 “2만원 치킨 한마리 팔아 사장 손에 떨어지는 순 마진이 통상 1천원이다.
잘하면 1500원, 삐끗하면 500원도 된다”고 한다.
대표적인 서비스 내수업종인 숙박·음식점업이 통계집계 이래 전례 없는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이래 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가 계속 감소했다.
서울 명동 식당이 폐업한 모습. /연합뉴스
교육생은 부부·모자·남매 등 가족끼리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임금인상과 근로시간축소, 고용주의 각종 의무강화로 ‘알바생에게 갑질당하느니’ 가족끼리 창업하는 게 대세다.
또 저성장 속 일자리 부족으로 MZ세대가 창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급증,
요즘 신규 가맹점주 평균연령이 30대 중반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서울 강남 가로수길에 2030 원룸족을 겨냥한 24시간 배달전문점을 내는 사장 최모(31·여)씨도
“식당주방 일을 해본 남동생과 어머니까지 셋이서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모델 에이전시에서 광고업무를 하다 일감이 줄자 생애 첫 창업전선에 나섰다.
퇴직금 털고 대출까지 받아서.
“왜 치킨집을 택했어요?”
“치킨시장이 포화상태라지만 그래도 리스크가 가장 적더라고요.
배달수수료가 걱정이지만 24시간 돌리면 월1억 매출도 가능할 거예요.”
“불황에 창업부담이 클 텐데요.”
“월급쟁이도 힘들어요. 남의 돈 벌면서 쉬운 일이 있나요?”
정시행 기자가 튀겨진 닭을 기름에서 건져내고 있다.
칼집을 잘못 내 이미 망친 치킨. 상품이 될 수 없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건 못 팝니다” 가슴이 무너졌다
평가의 시간이 왔다.
나란히 놓인 치킨 박스 14개 앞에 교육생들이 두 손 모으고 섰다.
견과 고명을 너무 많이 뿌린 양념 치킨,
대파의 잎 부분만 올려 색감이 떨어지는 치킨,
알루미늄 포일을 뒤집어 깐 치킨,
레시피를 착각해 엉뚱한 반죽 옷을 입힌 치킨….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의 직계 후손들이 차례로 욕을 보고 있었다.
기자의 황금 올리브 치킨을 2초 들여다본 강사가 말했다.
“이건 진짜 수료증 못 줍니다.”
역시 닭봉의 흠 때문?
“그것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컬이 불규칙해요.
단골이 많아 (품질 떨어지면) 바로 알아봅니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장사를 이렇게 했다간… 입이 썼다.
교육수료일에 만든 마지막 치킨에 반죽 옷을 잘못 입힌 60대 예비사장은 얼굴이 흙빛이었다.
예비가맹점주들이 만들어 평가를 받고 있는 각종 치킨.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의 직계 후손들이 차례로 욕을 보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잘 만들었든 못 만들었든 아무도 자신이 만든 치킨을 맛보려 하지 않았다.
교육생들은 입소 초기엔 메뉴를 다 먹어보지만,
살벌한 분위기 속에 매일 기름냄새 맡다 보면 치킨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고.
국민 1인당 1년에 닭을 26마리 먹는다는데, 그게 밥벌이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망친 치킨을 집에 싸 들고 와 저녁으로 내놨다.
“야, 치킨이다~!” 아이는 신나게 뜯었다.
온몸에 기름 냄새가 떠돌았다.
닭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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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행 기자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뉴욕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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