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페이지 정보
관련링크
본문
오피니언 전문가칼럼
[2030 플라자] 은 어쩌다 '조건부 증여'가 됐을까
서아람 변호사 2025.07.23. 23:51
“다들 바쁜데 와 줘서 고마워. 축의도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친구 여럿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하트 이모티콘과 메시지가 뜬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A의 감사 인사다.
뒤늦게 인연을 만나 식을 올린 A는 단톡방의 마지막 결혼 멤버다.
아니, 마지막은 아니다. 미혼이 한 사람 남았다.
바로 그 주인공인 B는 단톡방이 아닌 개인 톡에서 따로 불만을 쏟아냈다.
“야, 내가 자선사업가냐?” 부
대학 시절부터 B는 남을 잘 챙겼다.
멤버 중 누군가 결혼한다고 하면 축의금을 두둑이 냈다.
누군가 상을 당하면 부의금 봉투를 가지고 달려와 몇시간이고 앉아있어 주곤 했다.
B와 가장 친한 사이였던 C는 브라이덜 샤워에 아기 성별 맞히기 파티,
야외 결혼식, 연년생 두 아이의 돌잔치까지 성대하게 여는 바람에 눈총을 받았지만,
B만큼은 군말 없이 모든 행사에 참석하고 봉투를 냈다.
참 사람 좋다 생각했는데, 역시 속으로는 불만이 쌓여갔던 모양이다.
“난 비혼주의잖아. 엄마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와는 완전히 절연했고.
앞으로 축의금도 부의금도 받을 일 없어.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부’만 해야 하냐고.”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부모의 지옥 같은 이혼 과정을 지켜본 B는 결혼에도 연애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여행, 운동, 독서, 와인 같은 취미를 즐기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고 했다.
B는 독거 노후를 대비해 각종 연금과 보장도 철저히 마련해 두었다.
모두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B에게 ‘축의금 면제’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비혼주의가 언젠가 결혼주의로 바뀔 수 있다는, B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100만분의 1이라는 확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쨌든 내야 하는 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모니카는 친구들과 결혼식 준비에 열성을 다한다.
그 진지함은 유엔협상 뺨치고, 그들 입에서 나오는 예산액수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그 모습을 본 예비신랑 챈들러가 ‘그냥 파티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자,
모니카는 경고한다.
결혼식을 한번만 더 ’그냥 파티‘라고 표현하면 당신은 초대받지 못할 거라고.
어느 문화권에서든 결혼식은 단순한 파티가 아니다.
일생일대 행사이고 의례이다.
우리는 가족, 친구, 지인, 사돈삼촌의 사위 동생의 결혼식에 얼굴을 비춰야 한다.
봉투를 내고 장부에 이름을 적고, 어색하게 웃으며 단체 사진도 찍어야 한다.
대신 보장받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본도 없는 놈이라고 욕먹지 않는 것,
둘은 상대방도 내게 똑같이 해주는 것.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축의금은 일종의 조건부 증여다.
묵시적으로 상호교환이 전제된 금전거래.
미리 축의금을 보냈는데 파혼하면 축의금은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축의금을 낸 상대방에게 경조사가 적거나 없으면, 그건 반환해야 하는 걸까.
우리 단톡방은 마침 내 집 마련에 성공한 B의 집들이 선물을 거하게 해주는 것으로 훈훈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앞으로도 이런 갈등은 더 흔해지겠지.
어쩌면 근본적 문제는 결혼하는 데도, 축하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호텔예식장의 꽃장식을 추가하는 데만 1000만원이 넘게 든다는 것도,
요즘 식대는 5만원을 훌쩍 넘으니 축의금은 기본 10만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인구절벽의 끄트머리에서 하등 도움 될 게 없다.
이번 달 송금할 축의금 계좌목록을 정리하며 오늘도 한숨만 길게 내쉰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